<현장 취재>“풍요는 ‘가족’이에요…제가 ‘김풍요’라고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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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풍요는 ‘가족’이에요…제가 ‘김풍요’라고 불러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19.04.08 09:57
  • 수정 2019-04-08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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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 씨와 안내견 ‘풍요’
▲ 김경식씨와 그의 안내견 '풍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김경식 씨의 안내견 ‘풍요’는 아빠의 무릎 위에 얼굴을 올리고 그곳이 원래 자기의 자리인 양 얌전히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해 보였다.

인천안마수련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김경식 씨는 안내견 ‘풍요’와 항상 출퇴근을 함께 하고 있다.

사실 김경식 씨에게 풍요는 두 번째 안내견이다. 지난 2005년 처음으로 ‘슬기’를 집으로 데리고 오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13살 때 시력을 잃었는데, 그 전까지는 동물들을 참 좋아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으니 동물들에게 공포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던 중 TV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관한 프로그램을 봤는데, ‘용기를 내보자’라는 결심이 섰고, 삼성화재안내견훈련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된 거죠. 처음 슬기를 마주했을 때 남아 있던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는데, 그놈이 먼저 다가와서 코를 킁킁거리며 앞발을 내밀어 정감을 표하더라고요. 그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렸던 것 같아요.”

슬기와 경식 씨는 그 순간부터 부녀 사이가 됐다고 한다. 함께 산책도 나가고, 시 쓰기와 사진 찍기가 취미인 경식 씨의 특성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았지만 슬기는 그때마다 항상 경식 씨 곁을 지켰다.

슬기는 그렇게 경식 씨와 9년의 시간을 함께 한 후 은퇴 견으로 돌아갔으며,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첫 안내견이자 첫 정을 줬던 슬기였기에 다시 훈련소로 보낸 후 공허했는데, 그때 다시 경식 씨의 마음을 두드린 것이 지금의 ‘풍요’다.

“풍요는 슬기와는 달리 애교가 많아요. 집에서는 배를 뒤집기도 하고, 앞발로 저를 툭툭 치면서 장난도 걸고, 정말 막내딸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제가 김풍요~라고 불러요. 김경식 딸이니까요(웃음)”

풍요에 대해 소개하면서도 경식 씨는 연신 풍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자는 풍요와 김경식 씨의 퇴근길을 동행해 보기로 했다. 온순해 보이기만 하는 풍요가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경식 씨는 인천안마수련원이 위치한 인천지하철 2호선 모래내시장역에서 집이 있는 인천지하철 1호선 부평구청역까지 풍요와 함께 동행한다.

사무실이 있는 3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풍요는 계단이 시작되는 점과 끝나는 점에서 몇 초간 서서 다음 동작을 경식 씨가 예견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었다.

1층 출입구를 나와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은 성인 세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인도였으며, 골목으로 들어서는 좁은 교차로가 몇 개 있었다.

▲ 교차로를 건널때 풍요는 우선 교차로 시작점에서 잠시 멈춰 기다리다가 횡단보도에 걸쳐져 있는 차를 피해 경식씨를 인도로 안내했다.

경식 씨의 왼쪽으로 걷는 풍요는 특히 차가 오가는 작은 교차로가 나올 때마다 멈춰 서서 신중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관공서 주차장으로 들어서던 차가 앞 차 때문에 길을 1/3쯤 막고 있자, 잠시 서서 경식 씨를 안정시킨 풍요는 그 차를 빙 돌아가며 그를 인도로 이끌었다.

지하철역사로 들어서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풍요는 능숙하게 앞발을 내딛었다. 오히려 주춤거리거나 하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식 씨에게는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능숙하게 움직였다.

개찰구를 빠져나갈 때도 경식 씨가 교통카드를 정확히 접촉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발이 움직이자 다시 보폭을 맞췄다.

그렇게 능숙하게 움직이던 풍요에게도 고난의 순간은 있었다. 비교적 사람이 적던 인천지하철 2호선에서 내려 인천시청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할 때가 그때였다.

스크린도어 앞을 걸으며, 경식 씨는 본인이 타야 하는 열차차량 출입구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점자로 표시되어 있는 차량번호 안내판은 스크린도어의 오른쪽에만 부착되어 있었다. 왼쪽에 손을 뻗었다가 없는 것을 확인하면 몇 걸음 더 가서 오른쪽 문을 더듬어야 했다. 그 와중에 풍요까지 함께 이동하다 보니 이미 줄을 서 있는 사람들과 부딪힘 때문에 경식 씨도 풍요, 그리고 시민들까지 당황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 출퇴근길 지하철을 함께 이용하는 경식씨와 풍요.

왼쪽 문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사이 스크린도어에 거의 붙어서 이동하는 그였기에 혹시라도 열차가 도착해 문이 열리기라도 한다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탈 곳을 찾은 경식 씨와 풍요에게 두 번째로 닥친 어려운 순간은 ‘많은 사람’이었다. 퇴근시간이기도 했고 인천시청역은 환승구간이기도 해 전철 문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 다리 높이에 풍요는 경식 씨보다 편히 전철 안으로 발을 뻗을 수 있었지만 경식 씨는 사람들과의 마찰 때문에 쉽게 올라타지 못했다. 전철 안으로 올라타서도 풍요와 자신이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좌석 끝 공간을 찾아야 했다. 풍요를 안쪽으로 편하게 자리를 잡게 해준 뒤에야 경식 씨는 손잡이를 잡고 한숨 돌리는 모습이었다.

전철 안에서도 풍요에게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퇴근길 전 기자와 인터뷰에서 풍요를 만지거나 음식을 주는 등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고 얘기를 들었던지라 기자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풍요와 주변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걱정하던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한 고등학생 무리는 풍요를 보며 귀엽다고 말하면서도 또 다른 친구에게 “근데 쟤 만지면 안 돼, 그럼 위험하대”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 역이 ‘부평구청역’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며, 경식 씨와 풍요의 퇴근길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김경식 씨는 풍요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소리를 내거나 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주는 것이 안쓰럽고 고맙다고 했다.

“사람들은 풍요가 가는 대로 제가 끌려간다고 하지만 사실 우린 함께 걷는 거예요. 저도 끊임없이 풍요에게 천천히, 이리와, 오른쪽, 왼쪽이라고 말을 걸고, 풍요 역시 안전한 곳으로 저를 이끌고 있는 거고요. 순수한 보행만을 위한 거라면 지팡이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 아이는 가족이잖아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껴요. 내가 혼자 걷고 있지 않다라는 안도감도 주고요.”

▲ 만원지하철은 경식씨에게도 풍요에게도 매번 맞닥뜨리면서도 항상 힘든상황이다. 하지만 풍요가 먼저 지하철을 올라타면 경식씨 역시 풍요를 믿고 발을 내 딛는다.

사실 풍요도 경식 씨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3년 경식 씨와 처음 만나게 된 풍요도 곧 은퇴의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항상 정을 붙이고 뗀다는 건 힘들어요. 그래도 안내견으로 묵묵히만 살았다가 은퇴 후 강아지의 본성을 마음껏 느끼며 지낼 풍요를 생각하면 위로가 되죠.”

마지막으로 경식 씨는 풍요뿐 아니라 모든 안내견이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보행이 힘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더 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인도를 걷다 보면 입간판이다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 때문에 차도로 내려서 걸어야 하는 일이 적지 않아요. 저는 앞이 안 보이다 보니 풍요가 갑자기 찻길 쪽으로 내려가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풍요를 다그치기도 해요. 그런데 풍요 입장에선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거죠. 또 아까 기자님도 보셨겠지만 스크린도어에 점자 표시도 한쪽에만 있어요. 눈이 보이면야 표시판으로 다가가 확인하면 되지만 우리는 일일이 손으로 만져서 찾아야 하는데, 작은 배려만으로도 조금은 저희의 고충을 덜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배려가 누군가에겐 큰 희망이 될 수도 있어요.”

기자를 뒤로하고 풍요와 김경식 씨는 전철역 밖으로 발을 옮겼다. 경식 씨가 있기에 풍요는 험난한 그 길이 항상 즐겁고, 풍요가 있기에 그 역시 발걸음을 앞으로 나아가는 데 두려움보단 희망이 있을 것이다.

김경식 씨와 풍요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닿는 길 끝에는 따뜻함과 희망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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