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동권’에 대한 두 얼굴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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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동권’에 대한 두 얼굴의 행정
  • 임우진 국장
  • 승인 2017.04.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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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8일 KBS1 TV는 밤 9시 뉴스에서 <장애인 딸 위해…‘휠체어 환승 지도’ 만든 엄마>라는 제목의 뉴스를 방송했다. 소아암 후유증으로 어릴 적부터 다리가 불편했던 초등학교 5학년 딸을 위해 지하철역의 휠체어 환승 지도를 직접 만든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하철 5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길…걸어서 5분 거리지만 휠체어로는 20분이 걸렸습니다.” 아이를 위한 엄마의 선택은 '휠체어 환승 지도'를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와 리프트의 위치, 이동경로를 보기 쉽게 담았다. 서울의 지하철 14개 역 환승 루트다. 30개 역을 추가할 계획이다. 423명의 금전적 지원에 교수와 학생들이 7개월 넘게 도와준 결과물이다. 휠체어용 안내 표지판도 설치할 계획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알아서 해줘야 할 일을 민간 이용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씁쓰레한 이야기다.
 이 엄마가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6년 전부터였다. 막 유치원에 들어간 딸을 데리고 지하철을 탄 엄마는 고속버스터미널역의 휠체어 리프트에서 ‘수리중’이라는 표시와 함께 ‘7호선 환승은 9호선 동작역→4호선 이수역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을 보고나서였다. 바로 옆 계단을 이용하면 2~3분 걸릴 거리를 휠체어를 탄 아이를 데리고는 40분은 걸릴 거리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도움을 받기 위해 역무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는 오히려 “어디에 있느냐”고 묻었다고 한다. “위쪽에 계시면 9호선과 3호선 쪽으로 연락하시고, 아래쪽에 계시면 7호선으로 연락을 하셔야 해서요.” 노선별로 운영사업자가 다르니 문의도 관할 노선에 하라는 설명이었다. 선진 교통정책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후진적 교통문화의 단면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경북 경산시 한 서점 앞에 설치된 경사로가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됐다.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에 따르면, 서점 측이 지체장애인협회 경산시지회의 지원을 받아 경사로를 설치했는데, 경산시에서 이를 철거하라고 통보한 것.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경사로가 보행자 통행에 방해된다는 이유였다. 장애인용 경사로가 통행에 방해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설명이다. 경산시 관계자는 도로점용 허가 신청을 하지 않아 허가를 해주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도로점용 허가 신청만 하면 허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말과 달리 허가 신청에 '불허'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경사로가 정말 통행에 방해가 된다면 불허는 마땅하다. 그러나 오히려 교통약자 이동편의를 위해 설치를 지원해야 할 행정기관이 융통성 없이 법만 따지며 대책 없이 편의시설 설치를 불허하는 것도 문제이다. 
 오는 4월 20일은 제37회 장애인의 날이다. 5월 9일은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 선거일이다. 늘 장애인의 이동성을 고려하지 못한 장애인의 날 행사장이나 투표소 선정이 문제가 돼 왔다. 인천은 올해도 장애인의 날 행사를 장애인 이동이 힘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연다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장애인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투표소 이동편의를 위한 장애인콜택시와 리프트가 설치된 전용차량 지원을 늘린다고 한다. 해마다 말로는 장애인을 위한 행사라면서 정작 장애인당사자들의 이동편의를 신경 쓰지 않는 무신경은 결국 의도적 차별이나 다름없다. 선거 때마다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겠다고 입 발린 소리를 하지만 장애인당사자들은 정작 참정권 행사를 포기했다는 하소연이 지속돼 왔다. ‘법 따로 행정 따로’인 전시행정의 두 얼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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