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환희로 얼룩진 장애여성엄마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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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환희로 얼룩진 장애여성엄마들의 ‘삶’
  • 한고은 기자
  • 승인 2016.12.19 10:07
  • 수정 2016-12-19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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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여성의 삶, 어머니로서의 삶. 고된 두 삶이 만났다. 장애여성이면서 어머니로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가슴시린 눈물과 찬란한 환희로 가득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중고’인 동시에 ‘두 배의 행복’을 느끼는 장애여성엄마들이 지난 1일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로 산다는 것
 
 파란협동사무국장 김진옥 씨는 19년 전이던 40세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동네 산부인과를 찾아 의사에게 들은 첫 마디는 “낳으실 건가요?”였다. 흔한 축하의 말 한마디조차 없이. 아마도 진옥 씨가 버림받은 미혼모나 양육 능력이 전혀 없는 여성장애인으로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는 중증장애산모를 감당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큰 산부인과로 가보라고 말했고, 김진옥 씨는 남편과 함께 강남에 위치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산부인과를 찾아가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그 병원에서도 여성장애인 산모에 대한 데이터는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이나 높낮이가 조절되는 침대는 물론, 정기 검진을 받을 때도 장애인에게 맞는 기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매월 한 번씩 열 번을 병원에 가면서 김진옥 씨는 많은 불편을 감수했다. 그마저도 비장애인인 남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니, 다른 장애인산모가 힘이 약한 여성활동보조인 등과 함께였다면 진료를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옥 씨는 단순히 편의시설 미비보다도 장애산모들에 대한 데이터가 전무하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임신 초기부터 진옥 씨를 괴롭힌 것은 ‘두려움’이었다. 혹시 내 장애가 아이에게 유전이 되지는 않을까, 내 자세가 올바르지 않아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다양한 장애산모들에 대한 자료가 있었다면 본보기 삼아 공부하고 대비하며 안정된 마음으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나 그럴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남편과 둘이서 아이를 키워내야 했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학교 내에는 장애인 학부모를 배려한 시설이 전혀 없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경사로도 없었다. 장애인엄마들이 자녀를 위해 학교를 가려해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조차 없었다. 때문에 지금도 많은 장애엄마들이 학교에 가기를 두려워한다. 자신의 장애 때문에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게다가 장애부모들은 맞벌이 형태가 적어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어 자녀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해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진옥 씨는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밝혀진 최순실이 만지작거리고 장난친 예산액 중 100분의 1만 있어도, 장애인부모가 있는 가정에 산적한 모든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7개월 만에 태어난 내 아이 ‘선우’
 
 인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신지은 씨는 임신을 확인한 후 여러 병원을 전전했던 기억을 꺼냈다. 처음 찾은 병원에서는 출산에 협조를 못하겠다며 중절수술을 권했고, 또 다른 병원에서는 심장내과가 없어 위험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와중에도 아기 때문에 근육이완제를 먹을 수 없어 몸이 비틀리고 식은땀이 줄줄 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대뜸 혼이 났다. ‘왜 피임을 안 했냐’는 것이었다. 왜 장애인에게는 아기가 생기면 안 된다는 건지, 신지은 씨는 욱하는 마음에 화를 낼 뻔했지만 아기한테 좋지 않을 것 같아 참았다. 그래도, 아이를 낳아보자고 한 것은 그 병원이었다.
 청각장애인인 남편과 함께여서 소통보조가 필요해 민들레야학 대표와 동행해 여러 설명을 들었다. 결론은 신지은 씨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지은 씨는 ‘하늘의 선물이니 받아야지.’ 결심했다.
 그러나 아이는 7개월 만에 태어나 호흡기 관련 희귀난치성 판정을 받아 2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지금은 완쾌가 되었지만, 당시 아이가 호흡기를 달고 집에 왔을 때는 눈물만 났다. 
 설상가상, 아이를 낳자 산후우울증이 왔다. 사람 만나고 대화하기 좋아하는 지은 씨는 외출도 어려워졌다. 동료상담가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는 누워만 있어야 하는 지은 씨는 동료상담가의 조언을 따라 남편과 함께 합심해 처음으로 아이를 안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가 완쾌되고 제법 큰 지금은 가끔 외출도 함께 하고 나중을 위해 한글과 숫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비장애인부모도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는데, 부모 모두 중증장애인인 지은 씨 부부는 필요한 지원도 받을 수 없어 불공평함을 느꼈다.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다른 비장애인부모와 같은 수준의 지원만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육아는 활동보조인에 의지하는 상황. 지은 씨는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혹시나 갑자기 사정이 생겨 그만둔다고 하면 어쩌나, 내 활동보조인이 같은 급여를 받으면서 내 아이까지 챙겨야 하다니 얼마나 힘들까… 하는 불안함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활동보조인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조차 없다. 올해부터 최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인은 노동 강도가 더 높은 것으로 인정해 추가수당을 지급받고 있지만, 신지은 씨 부부는 인정이 되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는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아이돌보미를 신청해야 하는데, 매달 50만 원 정도의 자부담을 져야 한다. 그리고 양육수당은 포기해야 한다. 
 아이가 완쾌되기까지 지은 씨 부부는 마음의 상처도 얻었다. 아이가 8개월쯤 되던 무렵,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혼자 앉지도 못했다. 의료진이 결국 한 달을 더 지켜봐도 스스로 앉지 못한다면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유전적으로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자 이 얘기를 들은 지인이 말했다. ‘엄마 아빠가 장애인인데, 애가 못 걸으면 시설로 보내야지, 어떻게 키워.’
 지은 씨는 말문이 막혔다. 시설에서 평생을 살다가 29살에야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시설에서의 삶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한 달 뒤 스스로 앉았다. 
 그 기특했던 아이, 선우는 지금 ‘사고뭉치’가 됐다. 뭐든 건드리고 부러뜨리는 건 물론, 화장실에 물을 틀어놓으면 목욕 시간인 줄로 알고 쪼르르 미리 들어가 버린다. 목욕과 물을 좋아하는 선우가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는 지은 씨는 그저 선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과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는 선우를 보면 참 고맙지만, 동시에 아이가 혼란스러울까 봐 걱정도 되는 게 사실이다. 
 시설에서 만난 양부모님은 선우가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다. 좋은 사람이란 뭘까? 지은 씨는 오늘도 내일도 ‘아이 키우기’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정말로 소리 없는’ 육아 전쟁
 
 한국청각장애여성회 배현숙 씨는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를 가진 남편과 세 아들을 둔 엄마다. 들리지 않는 귀를 가지고 장난꾸러기 세 아들을 키우는 것은 쉽게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기 옹알이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아기울음 알림기계로 판단하면서 키워 나갔다. 엄마가 이렇게 답답한데, 아이들은 오죽 답답했을까 싶었다. 
 언어장벽으로 인한 서러움과 답답함을 뒤로한 채, 반짝이는 눈으로 서로 바라보면서 집중해 입모양을 열심히 보고 있지만, 모양만 보니 비슷한 단어가 많아 착오를 종종 겪는다. 어떤 주제를 정하지 않고 갑자기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렇다. 역사를 좋아하는 큰 아이가 ‘항우와 유방’에 대해 말하면 현숙 씨는 ‘하루와 우박’으로 들어 서로 엉뚱한 이야기를 하다가 겨우겨우 이야기를 맞춰 나간다. 다양하고 폭넓은 대화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하는 수화를 천천히 배워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현숙 씨의 가슴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지역아동센터에 보내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직면해 해결하는 힘을 기르도록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과 각각 따로 이야기할 시간은 지금보다 부족해 하교 후에 아이들과 약속을 잡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간혹 나눈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수화로 가르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 하는 노력들이다. 보석 같은 세 아들을 현숙 씨는 축복하고 또 축복한다.
 
폭풍 같았던 30년의 양육을 돌아보다
 
 문화지대장애인나설때 부대표 함순옥 씨는 큰 딸이 30살, 작은 딸이 19살이다. 그야말로 폭풍 같았던 30여년을 보냈다. 활동보조라는 제도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사춘기에 힘들어 하던 작은 딸이 중학교 2학년 때, 청소년 상담 기관에서 받던 상담을 그만 둔다고 울면서 말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상담 선생님이 장애인부모님 아래서 지내는 우리의 고충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작은 딸은 즉각 상담을 그만 뒀다. 만약 적절한 상담을 계속 받았다면 많은 것이 더 좋아졌을 것이다. 순옥 씨는 지금도 비장애인학부모의 자녀와 장애인학부모의 자녀는 상담사가 분리되어 별도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었지만 순옥 씨는 갈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교실에 올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딸은 순옥 씨가 꼭 와주었으면 했다. 교실에 들어가서 볼 수는 없어도, 엄마가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것이라는 큰딸의 말에 순옥 씨는 학교에 찾아갔다. 교문 앞에서 큰딸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서있는 순옥 씨 앞으로 나이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이 지나갔다. 교장선생님이었다. 순옥 씨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교장선생님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지나갔다. 하지만, 그 다음 참관 수업은 1층에 있는 교실에서 실시돼 순옥 씨가 아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교장선생님이 교육청에 발이 땀이 나도록 바쁘게 오고가자 아이가 6학년 때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눈물의 운동회도 잊을 수 없다. 큰딸의 운동회 날, 엄마와 함께 하는 달리기에 순옥 씨는 참여할 수 없어 큰딸은 이모와 대신 달려 1등을 했다. 그러자, 어떤 학부모가 항의를 했다. 장애인인 엄마 말고 비장애인에 처녀인 이모와 달려서 1등을 한 것이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큰딸은 등수에 못 들고 탈락해 울고 불었다. 그러나, 큰딸은 개인달리기에서 보란 듯 1등을 했다. 순옥 씨는 항의한 엄마에게 말했다. “이것 보세요. 우리 애도 할 수 있어요.”
 이런 일은 새 발의 피다. 그 모진 세월이 지나와 어느덧 아이 둘을 다 키워낸 순옥 씨는 장애엄마들의 고충이 조금 더 포괄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엄마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후배’들을 위해서 좀 더 폭 넓고 섬세한 제도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으기 위해 다함께 외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장애여성이 ‘모성’을 선택할 권리
 
 박지주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다수의 비장애인 사회에서, 장애여성, 아이를 낳은 장애엄마들은 ‘이해되지 않는 부류’로 분류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원 및 정책연구, 서비스 등 현실적인 사회보장제도나 복지실천책은 미비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활동보조인제도가 활성화 되면서 ‘홈헬퍼’, ‘가사도우미’, ‘산모도우미’를 함께 이용할 수 없게 됐다. 그 서비스들이 갖고 있는 개별성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기혼 장애여성 당사자에게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와, 양육 및 출산에 필요한 서비스는 별개의 것임에도 중증장애여성으로서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가 있고, 아이를 케어 하면서 받아야 하는 ‘양육자’로서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보조서비스가 있으므로 이 부분을 구분해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 중 임신 출산 양육 관련한 지원은 59.6%로 절실히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임신출산 및 교육 관련 정보제공, 출산 지원, 건강지원, 자녀양육 및 교육도우미 지원도 필요로 했으며, 학교 이외의 학습에 대한 지원, 심리정서 상담서비스 지원 등을 요구했다.
 또한 2012년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에 관한 전국실태조사결과 분석 및 정책대안을 위한 심포지엄에 따르면, 몸의 조건으로 인한 과로, 질병에 시달리는 장애여성의 모성보호를 위한 아동의 병간호, 장애엄마의 휴식을 지원하는 긴급서비스 체계가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장려금뿐 아니라 장애유형에 맞는 육아도우미와 성장단계별 자녀양육 지원책 등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장애모성권 확립을 위한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애여성에게 낙태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모자보건법’이 가진 우생학적 관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제14조 1항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한 5항에서도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에 장애가 될 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장애여성에게 ‘독소’가 된다. 모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차원을 넘어 모성을 지키려는 장애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한 의료지원체계, 양육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쪽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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