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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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 편집부
  • 승인 2013.04.23 00:00
  • 수정 2014-04-1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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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훈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연구실장

 

우리 사회에서 낙태문제는 찬반이 날카롭게 갈리는 뜨거운 이슈이다. 한 쪽은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들어, 또 다른 쪽은 아동의 생명권을 들어 팽팽히 맞선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 이슈를 여기서 거론하는 이유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문제가 크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법 상 불법으로 처벌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낙태행위를 허용하는 예외규정이 있다. 바로 「모자보건법」 제14조이다. 본인이나 배우자에게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혹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 때 그리고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의사는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는 낙태시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그리고 친권자가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낙태시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등 의사결정 능력상의 장애가 있는 여성이 임신을 한 경우 부모나 후견인이 낙태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법 제28조(모·부성권의 차별금지)에서 ‘누구든지 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법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준되어 발효 중인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3조(가정과 가족에 대한 존중) 제1항 (c)에서도 ‘장애아동을 포함하여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임신 및 출산의 권리를 보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필자는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의 낙태를 허용하라고 주장하지도 반대로 금지하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은 낙태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왜 그 결정권을 본인과 배우자가 아닌 제3자에게 부여하는가이다. 출산에 대한 결정의 권리, 정확히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등 의사결정 능력상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최근에 생겨났다. 간단히 현재의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이들을 행위무능력자(이 차별감 충만한 용어는 사실 민법상의 법적 용어이다.)로 규정하고 자신의 삶에 관한 모든 중요한 결정들을 후견인으로 하여금 대신하도록 해왔던 이 제도는 이제 올해 7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성년후견제가 들어선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의사결정이 깡그리 무시되었던 시대에서 이제 그들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기 의사표시가 어렵다고 낙태와 같은 중요한 자기 삶의 결정을 송두리째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아이를 갖고 낳아서 키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책임과 권한은 무엇인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교육하고, 스스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이 한 걸음 진화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타인의 결정을 도울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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