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보조기기, ‘신체 일부’ 견해차로 법정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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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보조기기, ‘신체 일부’ 견해차로 법정 다툼
  • 차미경 기자
  • 승인 2013.04.08 00:00
  • 수정 2014-07-15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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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공단, 절단장애인 노동자 의족 손상에 “신체 아냐” 산재 불승인
공단 상대 1-2심서 패소…전문가들 “장애인에게 보조기기는 신체 일부”

지난 3월 27일 이룸센터에서는 ‘장애인보조기 신체의 일부 될 수 없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이번 주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대변하기 위해 실제 사례자인 양태범(68, 지체3급)씨가 참가해 우리나라의 장애인보조기기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례>

양태범(68, 지체3급)씨는 지난 1995년 김포공항에서 근무할 당시 퇴근길 교통사고로 우측무릎 위를 절단해야 했다.
중도장애인 누구나 그렇듯이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던 양씨에게 2009년 희망이 찾아왔다.
평소에 양씨의 성실함을 지켜보던 한 아파트 동대표가 양씨를 아파트 경비원으로 추천했기 때문이다.
양씨는 장애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릇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추천해준 동대표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휴식시간도 마다하고 2년간 근면성실하게 일해 왔다.
하지만 그랬던 양씨에게 또 한 번 불운이 찾아왔다. 2010년 12월 60년 만에 찾아왔다던 폭설이 양씨의 희망을 빼앗아간 것이다.
그날도 예외 없이 아파트 주민들과 서까래를 사용해 눈을 치우던 양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양쪽 무릎에 부상을 입었고 그의 우측 의족이 망가지게 된 것이다.
부상을 당했지만 양씨는 아파트 경비일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망가진 의족을 수리하는 1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목발 등 최대한의 모든 사용 기구를 동원해 근무를 해냈다.
그러던 중 입사부터 그를 챙겨준 아파트 동대표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료를 내고 있으니 보험금을 신청하라는 귀띔을 해줬고 양씨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불승인’ 통보였다.
공단 측은 대퇴부 상처는 승인을 해주지만 파손된 우측 의족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어서’ 보상 승인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공단 측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던 양씨는 공단과의 길고 긴 법정 싸움을 시작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보상을 할 수 없는 이유로 ▲의족은 신체가 아니므로 부상의 범위에 포함이 안 됨 ▲탈부착이 비교적 쉬움 ▲신체의 기능을 보조하는 데 그침 등을 들며, ‘의족을 신체로 인정하지 못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2심에서도 패소한 양씨는 지난해 “약 15년 전 교통사고로 우측 다리를 절단한 이래, 의족을 실제 다리와 똑같이 사용하고 있고 의족 덕분에 직장생활도 가능했기 때문에 근무 중 의족이 파손된 것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 민원에 대해 권익위는 “의족이 신청인의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할 수 없으며, 신체의 일부로서 신체의 필수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점을 종합해 볼 때 산재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공단에 권고를 내렸지만 강제성을 지니지는 못했다.

지난 3월 27일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인보조기기 신체의 일부 될 수 없는가?’란 양씨의 사례가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지만 비단 양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이 사건은 넓게는 보조기기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 속 인식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장애인에게 의족은 비장애인의 신체와 다름없어

이날 토론회에서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남세현 조교수는 “국제표준기구에 넓적다리의지 등 의족, 의수 등의 보조기구들은 비록 물적 요소이기는 하지만 신체 일부를 대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근로 및 일상생활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신체 일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 의족은 목발 등 장애인보조기구와는 달리 민감한 신체 손상 부위에 직접 접촉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의족이 단순히 소지 또는 휴대하며 활용할 수 있는 보조기구와는 성질 자체가 다르다.”고 말하며, “의지 활용을 위해서는 의사와 의지보조기기사와 같이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 개입이 요구되는 등 사용상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실정이다. 목발 등과 견줘 신체 외적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의수족의 신체성에 대한 검토에서 적절치 못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특히 사례자 양 씨처럼 경비원과 같은 특정 직업의 수행에서 의족은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신체 부위로 판단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공단은 적극적인 관점에서 장애인 보조기구의 손상을 부상의 일환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학교 재활의학과 김윤태 교수 역시 “의족과 같은 의지는 휠체어 같은 보행기구와 명확한 차이가 있다. 의지는 신체적인 결손을 대상으로 하는 인공대치물인 신체의 일부로서 없으면 도저히 기능을 못하는 부분을 보조하는 역할”이라며, “인공심장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신체의 일부라는 의견에 의심할 의학자는 없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양씨의 소송을 돕는 법무법인 태평양 조원희 변호사도 참석했다. 조 변호사는 평등성 위반, 생물학적 관점에 치중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신체성을 부정하는 판결이라며, 법적으로 의족을 신체적 범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인근로자와 비장애인근로자 간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근로자에게 신체의 일부로서 역할을 하는 의족이 손상이 됐을 때 미치는 영향과 비장애인 신체가 다쳤을 때 처우가 달라져선 안 된다.”며, “현재 양씨가 겪고 있는 사항은 엄연한 평등성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조 변호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사회보장의 원리에 따라 특수하게 입법됐으므로 동법상 신체, 부상의 해석은 입법 취지에 맞게 해야 한다. 근로자의 근로능력, 근로자의 근로의 권리 등이 법률해석의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며, “이 사건에서 의족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신체임이 분명하다. 의족이 없었다면 직장에서 근로할 수 없었다. 살과 뼈로 된 다리와 전혀 다름없는 완전한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디선가 외로운 싸움을 할 또 다른 양씨

양태범 씨는 이날 토론회에서 “의족이 없이는 걷지도 일할 수도 없는 내게 의족이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양 씨는 “경비원은 아파트 내 도난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주간, 야간에 2시간마다 한 번씩 아파트 건물을 도는 업무를 수행한다. 우측 대퇴부가 절단된 내 경우, 의족을 착용하지 않고는 업무를 수행하기 불가능하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의족은 지팡이나 목발 등 다른 보장구와는 달리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족이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고 판단된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고를 당하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멀쩡한 다리가 다치면 산재가 되고, 다리 역할을 하는 다리가 다치면 산재가 안 된다는 현실은 너무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의족이 없으면 걷지도 일할 수도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번 사건이 꼭 양태범 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들 모두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장애인의 보조기기에 대한 명확한 의미부여와 인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양태범 씨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도움을 받아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로 앞으로 최소 6개월 이상의 기나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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