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마을」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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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마을」斷想
  • 편집부
  • 승인 2013.04.08 00:00
  • 수정 2014-04-1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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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여성긴급전화 1366인천센터 센터장

지난 1일, 어스름한 저녁 거리를 달려 인천터미널에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쉰 살 나이가 참말인가 싶게 여리고 고운, 대전에 살고 있는 친구와 ‘혼불문학관’에 가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 것이 지난해 늦은 겨울이었다.
그 이후,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나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았다. 마치 무엇엔가 빚진 자처럼 ‘혼불문학관’에 생각이 미치면 괜스레 마음이 허둥대었다.
어둠이 깊었을 때에야 대전터미널에 내려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낯선 것들뿐이었다. 그런데 내 안에서 스물거리며 올라오는 이 안도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친구를 만나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간 숙소에서 우리는 새벽녘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한 쪽 모서리가 풀어진 보따리 같았다.
다음 날, 대전, 익산, 남원을 거쳐 舊서도역에 도착했다. 안내표지에 “서도역은 「혼불」의 중요한 문학적 공간이며 혼불문학마을의 도입부이다. 매안마을 끝 아랫몰에 이르러, 치마폭을 펼쳐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점잖은 밥 한 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시간이면 닿는 정거장, 서도역은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니면서 이용하던 장소이기도 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효원! 강모!
혼불문학관에 다다르기도 전에 내 마음을 짓누르던 ‘빚진 자’의 무거움의 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내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 - 아버지와 어머니 -에 대한 그리움을 좇아 길을 나선 것이었다.
혼불의 주인공 ‘강모’와 ‘효원’이처럼, 부부이면서도 어긋난 삶으로 서로 외로우셨던 부모님. 평생 아버지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는 마치 ‘인월댁’처럼 처절한 외로움을 씨줄 삼고 가난을 날줄 삼아 인생의 베틀을 돌리신 분이었다.
1366인천센터에서 근무해온 지난 두 달간, 나는 내담자들과 입소자들의 삶 속에서 내 아버지를 만났고 어머니를 만났으며 오래전, 최명희님의 「魂불」을 읽으며 작품 속에서 만났던 청암부인과 율촌댁, 강실이를 만났다. 1366인천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소통이 아닌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관계에서의 아픔과 상처, 좌절과 분노를 폭력의 형태로 나타내는 가족들은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랄 것 없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불에 등장하는 많은 여인네들처럼 강인한 의지로, 때로는 한없이 여린 모습으로, 상처를 감당하며 가정과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머니들의 눈물은 우리 상담원들에게 사회복지사로서의 열정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더하여 내담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한다.
지난해까지 석남동에 위치하였던 여성긴급전화 1366인천센터는, 3년간의 위탁기간이 끝나고 올해 다시 인천생명의전화에 재위탁되면서 舊 법원 근처, 인성빌딩 5층으로 지난 1월 3일에 이전하였다.
이곳으로 이전한 후, 지난 2월 말까지, 한때는 유아들을 포함하여 입소인원이 10여 명에 이를 정도로 1366현장에 비쳐진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은 여전히 심각하였다. 여성긴급전화 1366의 주요임무는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하여 긴급상담을 하고 관련기관과 시설과의 연계, 피해자에 대한 긴급한 구조의 지원 등으로서 One-Stop 서비스 제공의 허브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상담원들은 피해자들의 위기에 신속하게 개입, 내담자들이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가정폭력, 성폭력 등 인권침해의 굴레에서 벗어나, 용기를 얻고 삶의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네트워크기관과 연대한 통합적 지원을 통해 이뤄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성긴급전화 1366인천센터의 상담원들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내담자들의 목소리에 마음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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