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험난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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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험난한 여정
  • 편집부
  • 승인 2012.11.13 00:00
  • 수정 2013-01-21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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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표/인천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몸담으면서 일여년 동안 장애인성폭력피해 현실을 접하면서 현실의 거대한 산을 만났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장애여성이 성폭력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험난한 여정을 감당해야만 한다.

인천장애인성폭력상담소(2011.7~2012.9) 장애여성성폭력피해사례 38명 중 여성장애인 성폭력피해자는 대부분(98%) 지적장애여성이다. 성폭력 사건의 특징은 피해자가 의심을 받는 범죄라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나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가 쟁점화되면 우리 사회가 분노에 휩싸이고 국민적 공분을 느끼며 분노를 토로한다. 그러나 막상 법정에서 어떤 ‘성교’ 행위가 정말로 성폭력이었는가를 판단하여야 할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강간신화’ 때문이다. 강간신화의 정점에는 ‘성폭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형법상 강간죄의 해석은 강간신화로부터 시작된다. 피해자의 저항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을 사용한 간음이라야 강간죄로 처벌한다는 ‘폭행협박설’은 폭행이나 협박이 약하여 피해자가 저항을 할 여지가 있었다면 강간으로 볼 수 없음의 다른 표현이다.

저항할 여지가 없었음에도 처벌하는 예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장애인 준강간이다. 강간죄가 가해자의 폭행, 협박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는 경우의 간음을 처벌한다면 장애인 준강간죄는 가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도 장애로 인하여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었다면 성립된다. 그래서 법원은 피해자에게 저항 가능성이 있었는지 여부를 더 엄밀하게 살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지적장애여학생을 평소의 친밀감으로 유인, 간음을 한 교사에게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였다(인천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례). “선생님 하지 마세요, 안돼요”를 두고 ‘거부의사를 표현하였으므로 항거불능이 아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으며, 임신, 피임, 낙태 등의 의미를 알고 성경험이 있고 혼자서 버스를 타는 등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며,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녔었고 거부의사를 표현하였던 요소들이 모두 항거불능이 아닌 이유로 법원은 이해되었던 것이다. 영화 ‘도가니’ 이후로 일명 도가니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양형기준이 강화되어 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법원의 판단은 아직도 장애인에 대하여 지독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도가니법 이후로 지적장애인 성폭력피해자들은 피해자로 인정받기가 더 험난해진 것이다. 법원은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위력을 이용한 간음을 처벌하는 심신미약자 간음죄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므로 장애인 준강간죄의 인정은 엄격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상생활조차 어렵고 성관계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중증장애만을 ‘항거불능’으로 보고자 하였다.

성폭력 재판에서 종국적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가해자의 성적 폭력이지 항거불능이라는 피해자의 상태가 아닌 것이다. 개정된 도가니법은 모두 가중처벌로 구성되었으며,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는 데 더 많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처벌 강화’가 범죄의 발생을 줄인다고 생각하지만, 급등한 형량은 처벌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구성요건에 대한 더욱 엄격한 해석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도가니법은 강력한 처벌 아니면 전면 무죄라는 극단적 양극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앞으로 장애인 대상 성폭력 가해자가 법의 적용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행위수단이 얼마나 극악했는지 혹은 극악한 상황에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입증해야 하거나, 장애로 인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음을 장애인 피해자가 입증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장애인 성폭력피해자들은 또 다시 시혜적이며 동정적인 법 적용 및 해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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