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형 성범죄예방시스템 성과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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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형 성범죄예방시스템 성과에 주목하자
  • 편집부
  • 승인 2012.11.13 00:00
  • 수정 2013-01-2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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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훈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연재기획칼럼②

 

 

 

최근 자고나면 들려오는 잔혹한 성범죄 소식에 국민들의 범죄에 대한 불안과 공분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더불어 성범죄자에 대한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사실상 폐지되었던 사형집행을 요구하는 여론 또한 힘을 얻고 있다.

사실 정부가 성범죄에 대해 처벌위주의 정책을 추진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전자발찌제도 도입,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성범죄자 신상정보공개, 성충동약물치료제도 시행, 아동성범죄 형량 강화 등 일련의 처벌강화 대책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성범죄 증가추세는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해결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처벌 중심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처벌위주의 성범죄대책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

 

처벌위주의 성범죄대책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첫째, 이러한 정책들이 성범죄자의 특징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묘사되는 성범죄자들, 특히 아동성범죄자들은 흔히 소아기호증을 앓고 있으며 성범죄에 대한 강한 동기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각종 치료와 재활프로그램이 전혀 통하지 않는 높은 재범 가능성의 낯선 남자어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극히 일부 성범죄자들만이 소아기호증 환자로 분류되며 피해자의 가족이나 청소년들에 의한 범죄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처벌의 억제효과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다. 현행 성범죄대책이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상습적 성범죄자들은 처벌의 경중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부류가 아니다. 엄한 형벌은 잠재적 범죄자들이 이를 주관적으로 인식해야 비로소 억제효과가 나타나는데 강렬한 성적충동에 의해 유발된 범죄욕구는 이러한 인식과정을 방해한다. 또한 범죄자들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은 처벌의 엄격성이 아니라 확실성인데, 성범죄 신고율이 10% 미만이라는 현실은 처벌의 확실성을 낮추기 때문에 형량을 높이는 것으로 억제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성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놓는 방법만으로는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무기징역이 아닌 이상 성범죄자들은 결국 사회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전과자라는 낙인, 교도소의 범죄 학습효과, 그리고 장기간의 사회격리로 인한 성범죄자들의 부적응과 재범죄화는 궁극적으로 사회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된다.

 

시카고 시민참여형 치안에서 나타난 성범죄 예방 효과

 

처벌위주의 성범죄정책의 문제점과 한계를 인식한 선진국에서는 예전부터 지역사회 참여형 성범죄예방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범죄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하에 정부기관, 민간기관,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범죄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주민참여형 치안의 모범사례로 평가되는 미국 시카고시의 ‘지역사회경찰 프로그램’(Chicago Alternative Policing Strategy)은 종전에 치안서비스의 고객에 머물렀던 주민들을 경찰과 함께 직접 치안서비스 생산과정에 참여하도록 하여 범죄발생률을 절반 이상 감소시켰다. 적극적인 홍보 전략과 언론의 지원으로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였고 경찰과 주민의 만남을 상설화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참여형 치안정책의 핵심은 주민들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치안서비스가 무엇인지 결정하고 정부가 이를 제공하는 데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정책을 통해 지역주민들 간에 공동체의식과 유대감이 형성되고 범죄문제에 대한 공동대응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캐나다 전역에서 실시중인 ‘지원과 책임 집단’(Circles of Support and Accountability) 프로그램은 참여형 치안정책이 성범죄에 적용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범죄자가 출소하여 지역사회로 들어오면 지역에서 선발된 4-7명가량의 민간인 자원봉사자들이 배정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성범죄전과자가 재범을 저지르지 않고 지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 사회복지사, 전과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자원봉사자들의 외곽에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성범죄자의 지역사회 복귀를 돕는 역할과 함께 이들을 감시하는 기능도 한다. 성범죄자는 자원봉사들과 교류하면서 지역사회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여러 평가연구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이 비참여집단과 비교해 무려 70-80%가량 감소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다수가 소수 감시하는 시민참여형 ‘통제시스템’ 강구해야

 

기존에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성범죄정책은 사법기관이 불특정다수의 성범죄자들을 통제하는, 즉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판옵틱 통제’(panoptic control)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재범위험에 있어서 성범죄자들 간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앞으로는 다수가 소수를 감시하는 ‘시놉틱 통제’(synoptic control)로의 전환이 모색되어야 한다. 즉 재범의 위험이 높은 소수의 고위험군을 다수가 집중적으로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성범죄자 통제방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첫째 누굴 감시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성범죄자들의 재범위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예측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 피보험자의 발병위험성, 사고위험성이 보험정책의 기준이 되듯이 성범죄정책도 고위험군을 정확히 판별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둘째, 참여형 치안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카고경찰의 사례에서 보듯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홍보와 세심하게 준비된 전략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또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지역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형성시키는 전략도 필요하다.

디즈니영화사가 만든 애니메이션영화 ‘벅스라이프’에서 수적으로 열세인 메뚜기들이 개미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공포심이었다. 성범죄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도 두려움에 빠진 시민들, 타인의 피해에 대한 외면, 무관심, 그리고 낮은 신고율일 것이다. 반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 태도이다. 범행 이후 막연히 예상되는 엄한 처벌보다는 당장 이웃들이 보내는 감시의 눈길과 범죄행위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성범죄자에게는 더욱 부담스럽다. 정부는 사법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성범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시민참여형 성범죄 예방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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