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만드는 범죄
상태바
사회가 만드는 범죄
  • 편집부
  • 승인 2012.06.11 00:00
  • 수정 2013-01-23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준민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내가 일하고 있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라고 하는 장애인권 상담을 주로 하며 차별문제를 해결하는 단체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다.

장애인의 인권과 관련해 서로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며 가장 좋은 방법을 서로 의논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2011년 4월, 이 장추련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의 어느 00마트에 불을 낸 여성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신체장애와 정신장애를 갖고 있어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한데, 아무런 지원 없이 조사를 받는 바람에 그녀가 다른 방화사건의 범인으로 가중처벌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이미 자백을 했다는 진술서가 확보된 상황에서 당연히 구치소로 이송되었고 그녀를 아는 한 지인이 “아마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제보한 것이다.

장추련 활동가들이 상황을 살펴보니 그녀가 지적장애인임을 알면서도 ‘신뢰관계에 있는 동석자 배치’를 하지 않았으며, 부모에게 통보를 하지도 않은 채 조사를 하였고 검찰로 그녀를 송치한 것이다.

그 후 재판과정에서 장추련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사법․행정절차에서의 서비스권리’에 관한 정당한 편의, ‘의사소통에서의 조력인 배치’를 제안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재판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권리가 있고 ▲재판과정에서 검사와 재판장이 묻는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그녀에게 쉬운 말로 설명하여 그녀가 그 내용을 이해할 권리가 있으며 ▲그녀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일들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그 모든 상황에 대한 알 권리와 정보접근의 권리, 의사소통에서의 서비스 등의 정당한 편의는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피의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의사소통에서의 조력인 배치’를 받아들였고, 장추련은 1차 공판부터 재판구형을 받는 7차 공판까지 ‘의사소통에서의 조력인’의 역할을 지원했다.

그런데 지난 11월 1심 판결이 나왔다.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진술은 진술거부권의 실질적 고지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가족과 사회가 그녀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녀가 분노 조절훈련이 되지 않아 분노를 불로 내는 극단적 방법을 표출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들어 ▲그녀의 행위가 개인적 책임만이 아니라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했다.

그런데, 이 판결에 대해 검사가 항소를 제기했다. 우리 역시 검사의 항소제기의 목적과는 다른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다. ▲우리는, 1심에서 재판부가 내린 치료보호소에서의 분노조절 훈련이 대안이 될 수 없고 ▲치료보호감호소라는 곳이 그녀에게 필요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 4월 17일, 드디어 2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검사가 항소를 제기한 한 건의 방화혐의에 대한 무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반면에 1심에서 내린 치료감호에 대한 판결은 기각했다. 재판부 역시 ▲치료보호감호소가 그녀에게 필요한 개별맞춤서비스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며 ▲그녀가 노숙생활에서 벗어나서 지역사회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통한 훈련과 자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판부가 중요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알 권리, 정보접근의 권리, 의사소통에서의 권리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권리가 법전에 머물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와 실질적인 권리옹호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다. 앞으로 3심이 남아 있지만 이번 판결이 향후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서비스 권리를 체계적으로 갖추는 권리옹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판례로 남겨지고, 함부로 이용당하지 않을 지적, 정신장애인들의 권리가 확보되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