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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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복지
  • 편집부
  • 승인 2012.04.26 00:00
  • 수정 2013-01-23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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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사)내일을여는멋진여성인천협회 회장

사회를 살아가는데 세 분류의 삶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 둘째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 셋째로는 사회에 정말 필요치 않은 사람.

이 말은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사회에서 위 세 가지 중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물으나 마나한 질문과 대답이지만 그 뻔한 대답 속에서도 실천에 옮겨 살아가기는 정말 어려운 현실이 우리 사회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40여년의 짧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한 제약은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갓 걸음마를 옮기던 난 열병을 앓았고, 그 당시 소아마비가 뭔지도 잘 모르던 무지한 시골 농촌의 부모님은 그저 동네의원에게 나를 맡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로 인해 난 두 다리를 가지고 있어도 걷지 못하고, 두 다리를 갖고 있어도 혼자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장애인의 현실과 복지에 관련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서 기고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아무런 거부 없이 오케이 사인을 했는데 과연 내가 생각하는 복지와 현실의 복지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분간이 잘 서질 않는다.

다만, 장애인 당사자나 장애인 가족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상담하는 가운데 가장 절실한 것은 탁상공론으로 나온 장애인 복지와 현실은 너무나 차이가 크고 또한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에 대한 혜택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그래도 정부에서 많이 도와주고 살만하지요? 하고 물을 때가 많다. 대답은 간략하게 “네~”. 많은 도움을 받고 살만하냐고 묻는다면 부정적인 대답보단 긍정적 대답이 크게 자리할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눈에 띌 만큼 달라진 건 사실이다. 거기에 사회인식이나 주변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예전에 장애인을 바라다보던 시선과 지금의 시선은 많은 차이가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난 장애인 당사자도 중요하지만 그 가족의 구성원인 부모, 형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50년 후반에서 60년대에 많이 발생했던 소아마비라는 장애는 이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현실이다. 그에 반해 요즘은 장애 정도가 예전과 달라 그 누군가가 돌보지 않음 혼자 살아갈 수 없을 정도까지 심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다. 우리 기관을 이용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삶 그 자체가 드라마인 것이다.

당사자는 어쩌면 아직도 어린아이 정도의 인지에 머물러 있고, 그 주변 형제들은 한 집안의 장애인 형, 오빠, 언니들로 인해 혼자서 뭐든 해결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양보하고 또 장애형제를 돌봐야 하는 무거운 짐까지 지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난 미처 몰랐었다. 아니 생각지도 못했다. 딸만 셋을 낳은 나는 그저 내 자식들에게 너를 낳아줬으니 감사하게 생각해라 하는 말만 했을 뿐. 내 자식들이 장애부모를 만남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고충이나 불합리를 외면했었다. 아예 생각할 마음조차도 없었다. 한번쯤 심리치료도 받게 해주고 미술치료나 멘토가 중요하다는 걸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내가 세상을 사는데 내 자식들에게 피해를 될 수 있음 안주고,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면 그것으로 끝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무실을 찾는 장애부모들과 대화하고 상담하면서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필요성이 더 강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복지를 운운하고, 복지정책을 펼칠 때 우린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장애인 가족들의 고통을 우린 지금부터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당사자 중심도 중요하고 꼭 필요하지만, 사회에서 그 장애인을 지켜가는 사람들은 그 가족 구성원들이란 걸.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걸. 장애인요양시설이 아무리 많고, 그 시설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 해도 그 가족의 손길 만큼은 아닐 거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장애로 인해 온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 분명 잘못된 복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엔 모르고 지나갔던 내 가족들을 생각해 본다. 나를 업고 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데리고 다녔던 엄마나 오빠. 책가방을 함께 들어주었던 동생이나 동네 친구…희생이었다. 가족이었기에 가능했던 희생.

난 이글을 쓰면서 어떻게 시작할까 하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이 사회가 아름답고, 또 다른 복지정책을 만들지 않아도 가슴 따뜻하고, 절로 미소가 날 수 밖에 없는 멘토가 되고, 우리 기관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을 안고 돌아가는 장애인과 그 장애인 가족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무심코 흘려버렸던 각 기관 프로그램들이 장애인들의 스펙을 쌓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그 스펙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로서 장애인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여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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