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도 못한 ‘도가니’는 어쩔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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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도 못한 ‘도가니’는 어쩔 셈인가
  • 편집부
  • 승인 2012.01.05 00:00
  • 수정 2013-01-25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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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에 전국이 분노의 도가니다. 청각장애특수학교인 광주 인화학교 상습 성폭행 사건을 다룬 사회고발 영화 ‘도가니’ 얘기다.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6년에 걸쳐 교장과 교직원들이 수년간 청각장애학생 제자들을 성폭행한 실제 사건을 다뤘다. 수년이 지난 지금 ‘도가니’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접한 국민이 공분과 절망감을 느끼는 이유는 인륜을 저버린 범법자들과 족벌재단에게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했음에도 적법성 운운하며 면죄부를 부여한 사법당국과 행정당국의 처사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딸이었어도 이러했을까. 여론이 들끓자 정부가 인화학교를 폐교하고 인화학교를 운영하는 법인 우석의 설립허가를 취소하기로 하는가 하면 정치권이 ‘도가니 방지법’을 만들겠다며 법석을 떨고 있다. 피해학생들 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처절한 절규에도 끄떡하지 않던 공권력이 수년이 지나 분노한 여론에 밀려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가해자 6명, 피해자 9명으로 인정했던 것과 달리 가해자는 교장 등 10명, 피해자는 12명이라고 한다. 이중 인권위가 당시 고발한 가해자는 6명이었다. 그러나 징역형을 산 건 2명뿐, 나머지 2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나고 피해자 부모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지 않았다. 심지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가해교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반면, 족벌재단은 성폭행 사건을 고발한 교사를 해고하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여전히 국고 지원을 받아왔다. 현행 법률상 재단에 대해서는 어찌 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관리감독기관은 그동안 수수방관해왔다. 한 마디로 ‘도가니’는 우리 사회의 ‘강자독식’에 대한 구조적 치부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사법기관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과거 판결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2008년 청주지법은 지적장애 10대 소녀를 7년간 상습 성폭행한 조부ㆍ백부ㆍ숙부에게 “양육하고 돌봐왔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해 장애계의 분노를 샀었다. 입법기관이라고 다를 게 없다. 국회는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켜 제식구 감싸기의 진가를 보여줬다. 우리 사회의 소위 ‘강자’들의 의식이 이러니 성범죄가 줄어들 리 만무하다.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은 1425건이나 된다. 올 1월부터 8월까지 발생건수만 385건으로 지난해 1년간 발생건보다도 많다. 개봉도 못한 ‘도가니’는 헤아릴 수 없다.

한나라당이 일명 ‘도가니 방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도가니’가 파장을 일으키자 노무현 정부시절 ‘사회주의적’이란 이유로 반대했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카드를 다시 빼든 것이다. 복지시설의 폐쇄적 운영을 감시·견제할 장치가 전무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나 아동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장애인 대상 성범죄 친고죄 폐지, 성범죄 처벌기준 강화 등 손봐야 할 것도 많다. 그러나 여론에 떠밀려 ‘조자룡 헌칼쓰듯’ 하는 대책발표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추진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강자들의 양심회복과 의식개혁이 없는 한 법과 제도는 무용지물이다. ‘도가니’의 원작자 공지영은 소설구상 동기를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라고 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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