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 판정제도에 대한 단상
상태바
장애등급 판정제도에 대한 단상
  • 편집부
  • 승인 2012.01.02 00:00
  • 수정 2013-01-25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호 책임준수를 기반으로 한 신뢰사회 구축을 기대하며

 

김동기/목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장애계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장애재판정제도이다. 그런데 현실은 참 안타깝다. 왜냐하면 정부가 장애재판정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목적 및 취지가 장애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장애인들은 그 제도를 불신한 채 그 제도로 인해 입게 될 피해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재판정제도는 그 목적과 취지가 명확하다. 즉, 제한된 장애인복지예산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다 욕구가 긴박하며 많은 장애인에게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그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재판정제도가 도입된 데는 장애인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일례로 몇 년 전 국정감사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한 1급 시각장애인이 큰 이슈로 다루어진 적이 있다. 필자는 제한된 장애인복지예산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와 같은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에게 보다 많은 급여를 주는 것이 ‘정의(justice)’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장애재판정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한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에서 약 100명의 지역사회 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살펴보면, 직접적으로 재판정제도로 인해 장애등급이 하락된 경우가 대상자의 약 10%로 나타났다. 그리고 장애인 입장에서 봤을 때 자신은 활동보조서비스 및 장애인연금의 대상자이지만 현재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약 30%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장애등급 하향의 우려 때문이 약 45%, 장애재판정 비용의 자부담이 부담스러워서가 약 20%로 나타났다.

필자는 이 결과와 관련해서 두 가지를 논하고 싶다. 첫째, 먼저 약 10% 대상자의 장애등급이 하락했다는 것 자체를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논하고 싶다. 즉, 10%든 또는 50%든 위에서 얘기한 도덕적 해이의 대상자들이라면 당연히 장애등급이 하락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장애등급 하락이 도덕적 해이와는 무관하게 단순히 공급자 입장에서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공급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우려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장애재판정제도와 관련하여 장애인 당사자의 책임은 도덕적 해이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반면 정부의 책임은 1급을 판정받을 객관적인 자격이 있는 장애인 당사자에게 자신들의 자의적인 해석기준을 내세우지 말고 정확하게 1급을 판정해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의적인 해석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어느 정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 작업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것 또한 정부의 책임임에 틀림없다.

둘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약 20%가 판정비용의 자부담 때문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기존에도 장애판정을 위한 검사비용을 장애인 당사자만 부담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장애는 선택이 아니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비장애인도 언제나 미래에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잠재적(latent) 장애인’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따라서 장애판정을 위한 검사비용은 정부 또한 부담하는 것이 맞다. 물론 장애판정 비용을 모두 정부가 부담한다면 이 과정에서 또한 일정 부분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소지가 많기에 판정비용을 분담한다면 정부의 책임도 완수하면서 장애인의 도덕적 해이 또한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재판정제도는 이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재판정 자체가 장애인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필요에 의해서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정과 관련된 비용은 장애인과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맞으며 그것이 책임감 있는 정부의 모습이다.

현재 재판정과 관련하여 장애인은 정부를, 정부는 장애인을 불신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신, 즉 상호간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자신의 책임을, 정부는 정부의 책임을 다할 때 상호 신뢰가 형성될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재판정제도가 지닌 목적과 취지를 십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재판정제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이 훨씬 강하다. 따라서 먼저 정부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먼저 정부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일 때 장애인 또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일 것이며 이러한 양자간의 관계가 형성될 때 우리나라 장애인정책은 한층 성숙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궁극적으로 장애인 사자의 사회통합을 비롯한 삶의 질 또한 한층 성장 및 구현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