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따로 행동따로 보조견 출입 막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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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따로 행동따로 보조견 출입 막는 국회
  • 편집부
  • 승인 2012.01.02 00:00
  • 수정 2013-01-25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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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누가 이렇게 지하철에 큰 개를 데리고 와? 당신 미쳤어? 어머 교양 없게. 당장 그 개 치우지 못해? 내리란 말이야! 당신한텐 귀엽게 보일지 모르겠는데 난 상당히 더럽거든? 빨리 사과 못해? 그리고 빨리 저기 있는 내 신문 달란 말이야. 아니야, 됐어. 개털 닿아서 더러워서 안 본다. 너 사과 안하니? 정말 억센 여자다. 지하철 신고 전화로 신고할 거야!” 지난 7월 13일 한 젊은 여성승객이 장애인석에 앉아 있다가, 여성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 지하철에 타자 비명을 지르고 폭언을 하며 지하철을 세우는 등 소란을 피워 비난을 받았던 일명 ‘무개념녀’가 퍼부었다는 막말을 목격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그런 일이 있고 채 1주일이 안된 지난 7월 19일. 제주도에 사는 지체장애 1급 대학생이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참관행사에 참가하려고 보조견과 함께 본청에 들어가려다가 국회 직원에게 저지당했다. 청사 방호업무 담당자가 보조견 같은 동물이 본청에 들어간 선례가 없다면서 출입구 앞에 맡겨 놓고 들어갔다 오라며 출입을 막았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근육병을 앓아온 터라 매사 보조견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이 장애인은 보조견을 잠깐 맡기라는 건 손과 발을 뚝 잘랐다가 나중에 찾아가라는 것이라며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국회 본청 참관을 포기했다고 한다.

두 사건 모두 장애인의 보조견에 대한 무지와 선입견에서 빚어진 단순한 해프닝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감춰진 또 다른 속살이다. 엄연히 국회가 입법한 법률로 보장되어 있는데도 회의에 방해가 될 수 있고 노인들이 놀랄 것이 염려돼서라는 이유를 들어 보조견 출입을 제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문제다. 이 조치가 국회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한 직원의 문제로 치부된다면 일개 국회 직원이 입법부의 권한을 유린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 국회 직원이 지하철 보조견 사건은 알고 있지만 국회와 대중교통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보조견에 대한 무지와 무개념의 차원을 넘어서는 공직사회 생리의 단면을 엿보는 듯하다.

국회 직원 눈에는 응당 대중교통과 국회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가의 자가용만을 이용하는 높으신 국회의원 나리가 서민들이 애용하는 대중교통을 탈 리 만무하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개가 타든 소가 타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고매하신 의원 나리님들이 계시는 신성한 국회는 그럴 수 없다는 뉘앙스다. 그렇다고 직원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높으신 나리들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춰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어쩌면 평소 교육받고 보고 느낀 대로 ‘알아서 기는(?)’ 행동매뉴얼에 따라 실행한 것뿐일지 모른다.

장애인보조견은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동반자이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보조견을 분신이자 몸의 일부로 여긴다. 그런데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 할 때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선 안 된다’는 장애인복지법을 손수 만든 국회가 정작 법을 어기고 보조견 출입을 막았다는 사실은 국회가 스스로 입법권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아닌 중대한 사태이다. 진상조사를 통해 국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입법부가 아직도 유신시대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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