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의료화’에 따르는 득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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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의료화’에 따르는 득과 실
  • 편집부
  • 승인 2011.07.08 00:00
  • 수정 2013-01-25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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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얼마 전 들은 20대 여성 이야기다. 취직시험에 합격해 신체검사를 앞두고 있던 이 여성은 혹시 문제가 있지 않나 걱정돼 미리 종합병원 건강검진을 받았고 갑상선에 2~3mm의 결절이 발견됐다. 의사는 여성에게 ‘특별한 이상은 없고 갑상선 결절은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소견을 냈다. 여성은 회사 신체검사 사전기록지에 별 생각 없이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고 적었다.

난처한 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채용신체검사 결과를 판정하는 의사가 갑상선 결절에 대해 자세히 물었고 그 여성은 취업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직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가 의사로부터 “조직검사 기록을 내일까지 제출하라”는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건강검진이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순기능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위의 경우처럼 불필요한 시간과 돈을 쓰고 안 해도 될 마음고생까지 하게 되는 예가 드물지 않다. 갑상선 초음파를 찍어보면 13~67%에서 결절이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다. 갑상선 결절의 대부분은 양성 혹이기 때문에 경과만 관찰해도 큰 문제가 없다. 갑상선 초음파로 암을 발견하는 경우가 현저히 증가했지만 갑상선암으로 사망하는 환자수에는 변함이 없음이 관찰되고 있다. 이는 갑상선 초음파검사가 널리 보급되는 것이, 모르고 지내도 평생 문제가 없을 갑상선암을 필요 이상으로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의학의 발전으로 영상검사나 혈액검사를 통해 미세한 변화까지도 발견하는 시대가 되면서, 검사로 발견된 병변의 의학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의료진도 검사와 치료를 어디까지 하는 것이 적절한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국민의 건강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 아니고 과거에 비해 의료문제로 인지되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이해된다.

생로병사로 대표되는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이 불과 50~100년 전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집에서 주변 가족이나 산파의 도움으로 출산하고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그러나 사회의 의료화(medicalization)로 병원에서 출산을 하고, 병이 발생하면 당연히 병원에 가고, 노화현상으로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 간병이 어려운 경우에도 요양병원에 의존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도 전체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병원에서 맞이하고 있으며, 자연적인 현상인 노화도 일종의 질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라도 일단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원인을 밝히고 생명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하여 의료진은 수많은 검사와 치료를 하게 된다. 이중 의미 있는 의료행위도 있겠지만, 임종과정의 환자에게 불필요하게 고통만 가중시키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의 시술들이 적지 않게 의료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정에서 임종했더라면 가족들과 지금까지 맺혔던 마음의 매듭을 풀고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를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연명하다가 가족과는 격리된 채 쓸쓸히 임종을 맞는 모습은 이 같은 ‘사회의 의료화’가 우리에게 주는 득과 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의학의 발전이 과거에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많은 질병들을 정복하여 수명연장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를 신체의 물리적 특성만을 부각시켜 의료 문제화함으로써 개인적으로는 삶의 질이 저하되고 사회적으로는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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