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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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이야기
  • 편집부
  • 승인 2011.06.13 00:00
  • 수정 2013-01-25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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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나사렛대학교 재활자립학과 교수

내 친구는 6.25 한국전쟁 직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모두가 그랬지만 극심한 가난 탓에 영양실조로 눈에 병이 생겼지만 가족들의 무관심으로 조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4~5세가 되면서 흐려지기 시작한 시력은 1년도 못되어서 완전 실명이 되었다.

당시 장애인에 대한 교육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전무하던 때라 친구도 취학연령이 훌쩍 지난 즈음에 대구에 시각장애인학교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가족들이 늦게 학교에 입학시켰다.

나와 친구의 만남은 1967년 늦가을에 특수학교 교정에서였다. 넓은 운동장을 더듬어 기숙사를 찾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나도 목발을 짚은 형편이었지만 길을 안내한 것이 인연이 되어 친하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장애로 인해 동년배들이 6학년일 때 우리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 학교 시작이 많이 늦었다. 단지 늦게 공부한다는 공통점이 장애를 넘어 친하게 되었다.

보행이 불편했지만 나는 친구를 안내하여 식당이며 문방구에 함께 갔고 때론 튼튼한 다리를 가진 친구가 나를 업으면 나는 입으로 방향을 지시해서 목적지까지 함께 가곤했다. 청각과 촉각이 뛰어난 친구는 음악에 천재적 소질이 있어 한번 들은 노래는 그대로 연주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고 시각장애임에도 방향감각도 뛰어나 한번 간 길은 잊지 않아 나를 경탄케 했다.

집이 가난한 친구는 학비가 항상 부족했고 급기야 신문배달을 하기로 결심했다. 신문사 지국의 총무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배달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대했지만 막무가내로 일을 달라고 조르는 친구의 간청에 일단 일을 맡기기도 했다. 일단 50군데만 시험적으로 해본다는 조건으로. 다음날 총무의 손에 이끌리어 신문 돌릴 집을 확인하고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비결은 지국에서 첫 번째 배달 장소까지?무슨 방향, 몇 발자국을 가야 하는지를 파악해 배달 장소를 모두 외웠다고 했다.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 아닌가?

그뿐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해서 자전거를 빌려주었더니 타는 이론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이론은 별것 아니고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균형을 잡는다고 했더니 몇 번 넘어지는가 했더니 넓은 학교 운동장을?비틀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먼저 언급했지만 뛰어난 음악성으로 기타, 드럼, 피아노 연주는 과히 수준급이고 특히 프라우드 메리 연주는?많은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 나와는 미묘한 라이벌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 내 친구는 목사가 되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교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국으로 중국으로 유럽으로 운동장이 좁아라 자전거로 누비던 그가 지금은 세계가 좁아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늦은 나이에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친구는 장애인을 위해 더 많은 활동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직도 차가운 봄이지만 친구가 생각나 몇 자 적었다. 친구를 바라 볼 때마다 우리가 가진 장애인에 대한 생각은 온통 편견 투성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장애인을 잘 안다고 하는 나도 고정관념이라는 편견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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