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내가 녹음기를 보내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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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내가 녹음기를 보내지 않은 이유
  • 편집부
  • 승인 2024.02.22 09:22
  • 수정 2024-02-22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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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준/통합교육모임 와이낫 회원

학교를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녹음기에 담긴 내용을 확인할 때의 놀라움이나 분노, 사실을 확인한 후 공동체와 갈등을 빚게 되는 과정이 두려워서였다. 비겁함이라고 비난받는다면 할 말이 없고, 모른 척하기에 가까웠다. 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면 없는 일이니까….

아이가 자폐여서 초등학교 때부터 방과 후 허락을 받기 위해 수업에 들어가기도 하고, 아버지회를 하면서 학교 행사를 돕기 위해 적극 참여하고, 나중에 운영위원, 운영위원장을 하면서 학교를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그러기에 일상에 학생들이나 교원들의 입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 차별적인 언어들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움을 시작하면 온 공동체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내 아이가 이런 환경 속에 있었던 것을 용인한 것 같다.

내가 알던 지인이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본인의 아이가 현지 초등학교에서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고 출석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아이에게 학교를 나가 달라고 한 이유는 동급생인 발달장애 아이에게 거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사정을 해서 겨우겨우 학업을 이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녹음기도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녹음으로 아동학대가 드러나면 그 처벌이 상상을 초월한다.

녹음기를 보낼 용기가 없어 직접 장애 이해 교육에 참여해 아이의 증상을 설명하고, 대응에 대해 설명과 이해를 부탁하기도 하고, 느린 학습자의 도서관 이용에 대한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나름 노력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자라서 초등을 지나 중등을 거쳐 고등으로 가고 통합수업은 점점 어려워졌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주변의 환경은 더욱 거칠게 아이를 조여오고, 그것에 반응하는 상동행동이나 돌발행동의 크기는 커지는데, 이걸 함께 논의하고 중재하고 노력할 시스템은 없다. 이건 특수교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노력을 하여 환경을 바꾸기도 어려운데, 여러 상황이 우리의 사이를 점점 벌어지게 하고 있다.

재판의 판결에 대한 분노가 아이의 부모에게 쏠리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이것은 녹음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고, 녹음의 내용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것에 대해 이의를 갖는다면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아동학대와 장애 차별의 기준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사노조에서는 1심 판결이 부당하다는 자신들의 입장, 즉 ‘불법 녹취로 인해 얻은 아동학대 증거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항소를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정해놓은 ‘아동보호법’을 부정하는 행위일 수 있고, 검찰 또한 그런 의미에서 항소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교사들이 녹취의 불법 여부를 갖고 계속 항의한다면 이번 녹취에 나온 정도의 행위를 앞으로도 특수교육대상 아이들에게 계속하겠다는 식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교사들은 녹음기를 보내는 일이 일반화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검찰을 통해 법원에서 인정된 녹취로 인해 학부모가 사회적으로 매장에 가깝게 공격당한 것을 봤는데, 어떤 부모가 감히 녹음기를 보낼 엄두가 나겠는가?

내가 녹음기를 채워 보내지 않는 이유는 녹취가 불법이어서가 아니다. 녹음기에 담겨올 내용이 두려워서이다. 왜 이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환경개선에 관한 논의는 없고 오로지 녹취의 불법 여부에 대한 이야기만 오가는가? 한국의 학교는 녹취에 대해 자유로울 만큼의 장애아동에 대한 환경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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