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장애인등록제도의 문제점과 장애인복지제도의 개선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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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장애인등록제도의 문제점과 장애인복지제도의 개선방향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4.02.12 09:00
  • 수정 2024-02-08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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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장애인등록제는 15개 유형의 장애범주와 장애정도(중증/경증) 기준을 충족해야만 장애인 등록이 가능하고, 이를 벗어나면 장애로 인정하지 않아 복지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장애인생활신문’은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지난해 8월 개최한 ‘장애인등록제도의 문제점과 장애인복지제도의 개선 방향’ 주제의 토론회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게재한다.

 

 

‘빈익빈-부익부’ 장애인등록제도 개선 필요

 

장애인 현황파악-효율적

예산편성 가능하지만

잠재적 수요 대응성 낮아

 

∎조윤화 장애인개발원 자립지원연구팀 부연구위원은 “장애인등록제도는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장점으로는 장애인 현황 파악이 가능한 점과 수요예측을 통한 효율적 예산 편성이 가능하다는 점이 꼽힌다.”고 설명했다.

반면 “단점으로는 장애유형 및 특성 고려 미비, 지원의 빈익빈 부익부 발생 우려, 잠재적 수요자에 대한 욕구 대응 가능성이 낮은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89년 도입된 장애인등록제도는 의사 중심 장애등급 심사체계에서 2007년 4월부터 국민연금공단의 장애정도 재심사로 변경됐으며, 2010년 1월 장애정도 심사제도가 확대 시행됐다.

장애유형은 1982년 지체부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기능장애, 정신박약/심신장애의 5개 유형에서 2000년 지체, 시각, 청각, 언어장애, 정신지체, 뇌병변장애, 발달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의 10개 유형으로 확대됐으며, 2003년 기존 10개 유형에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간질장애의 5개 유형이 추가돼 15개 장애유형에 이르렀다.

2020년 5월 정부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반영해 투렛증후군을 ‘정신장애인’으로 장애인 등록을 허용했으며, 2021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지체장애 유형에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정신장애 유형에 기질성 정신장애, 강박장애를 포함시켰고 2021년 12월 정신장애인의 복지서비스 배제 조항으로 지적돼 온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되는 등 장애 인정 질환을 확대하고 있다.

조 위원은 “소아마비 증후군 환자를 지체장애인에서 이동장애인으로 정의하는 등 장애를 전적으로 개인의 손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한 기능침해와 사회적, 환경적 장벽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다는 사회적 모델로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외국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의 경우 2011년 ‘장애인기본법’ 개정을 통해 ‘장애인을 장애 및 사회적 장벽에 의해 지속적으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한을 받는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사회적 장벽’을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장벽이 되는 사회의 사물, 제도, 관행, 관념 그 외에 일체의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13년 4월부터 ‘장애인종합지원법’의 장애인복지서비스 대상자 외에 난치병 환자를 추가하는 등 2013년 130개에서 2021년 366개로 장애 인정 구분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18년 사회법전 개정을 통해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서적, 지적 또는 감각 침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러한 침해가 인식과 환경에 의한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사회에 참여하는데 분명하게 6개월 이상 어려움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소득, 고용, 사회서비스 등을 이용할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현행 장애인복지법에선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조 위원은 장애인등록제 개편 방향으로 △장애인등록제와 장애정도 판정 기준은 유지하되 사회적 장애 정의에 의한 예외적 장애 인정 대상자 확대안 △장애인등록제는 유지하되 15개 장애유형과 장애판정 기준을 전면 개편안 △장애인등록제 자체를 폐지하고 서비스별 대상자 선정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안면장애,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제약 존재함에도

일률적 경증장애로 개정

사회보장수급권 법적성질

과소평가-행정입법 재량

과도히 인정 한계 드러내

 

∎민수지 전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장애의 의미가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상당한 제약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백반증, 더 나아가 안면장애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들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장애유형과 각 장애유형들이 갖는 특수한 어려움들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며 “장애등급제 폐지 취지에 맞춰 장애유형별 어려움들이 정책에 반영돼야” 함을 주장했다.

원고 안면장애인 A 씨는 군 제대를 앞둔 무렵 백반증 진단을 받고, 2001년경부터 꾸준히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꾸준히 악화되었고, 2004년경에는 A 씨의 전신 및 노출된 안면부의 90% 이상에 병변이 침범했다.

이에 A 씨는 2008년경 장애인 등록 신청을 하여 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이후에도 동일한 장애등급을 유지했다. 또한 ‘장애등급제도’가 폐지되고 2019년 7월 관련 법령이 개정된 이후에는 종전 장애등급 하에 장애 1급부터 4급에 해당하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한편 A 씨는 2021년 4월, 장애인연금 신청을 했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통보했다. 이는 2021년 4월경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및 장애정도 판정 기준 고시가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에 백반증이 있는 사람’은 일률적으로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개정됐기 때문.

이에 A 씨는 2021년 6월 국민연금공단을 대상으로 장애정도 결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2심은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의 지원으로 소송을 이어갔다.

2심 재판의 쟁점은 크게 원고 A 씨가 받은 장해등급 결정 처분의 근거가 된 개정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이 △평등의 원칙 △법률유보 원칙 △신뢰의 원칙 위배 여부였다.

재판부는 ‘평등의 원칙 위반’과 관련, “안면부의 백반증과 안면부 조직의 함몰이나 비후 등의 변형 장애는 장애의 유형이 다르고,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제약을 받는 정도가 같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규칙조항이 안면부 백반증이 있는 사람 중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에 백반증이 있는 사람’을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정하였다고 하여 다른 안면장애인과 자의적으로 차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률유보원칙 위배’ 여부와 관련, 법률인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의 정의에 대해 규정하고 있고, 법률상 위임에 따른 시행령, 시행규칙의 순서로 장애인연금 수급권의 대상이 되는 ‘정도가 심한 장애인’의 장애 종류와 정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뢰의 원칙 위반’ 여부와 관련해선 개정 전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서는 ‘안면부 백반증’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고, 이에 따라 관할관청이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등록제를 운용함에 있어서 A 씨와 같이 안면부 백반증이 있는 사람에 대해 안면부가 변형된 사람에 대한 장애의 등급이나 정도의 판정 기준을 적용해 장애인 등록을 하도록 했을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원고에게는 개정된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개정될 것이라는 어떠한 신뢰도 부여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민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국민연금공단의 손을 들어줬고, A 씨는 1심과 2심 모두 패소해 판결은 확정됐다. 판결은 사회보장수급권의 법적 성질을 과소평가하고 행정입법의 재량을 과도하게 인정했다는 한계를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이어 “장애의 개념 자체가 생물학적인 손상에서 사회적 제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로 장애인복지법령이 정하고 있는 장애유형과 기준 역시 변화하고 있는 점, 장애등급제를 폐지한 취지를 고려한다면 현행 장애인복지법령과 같이 복지서비스의 대상자를 칼로 가르듯이 나누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희귀질환, 복지부 고시 개정

예외적 ‘경증장애인’ 등록···

이용 가능 서비스 거의 없어

 

∎정제형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뚜렛증후군 판결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재량권을 행사해 새로운 장애유형에 대한 장애정도 심사 및 등록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구조로, 실제 관련 조항의 폐쇄성으로 인해 뚜렛증후군 사례 이후 장애정도심사위원회를 통한 예외적 장애 인정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고시 등을 개정해 희귀질환자에 대한 장애정도 기준을 마련한 후에서야 비로소 고시로 열거된 희귀질환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장애등록을 허용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개별 질환의 특성과 질환자의 일상 및 사회생활의 제약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채 유사 유형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경증) 장애인’으로 일괄 등록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경증장애인은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

정 변호사는 “장애인 등록의 취지는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통해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받기 위한 것임을 고려할 때 각 장애등록 신청자의 실질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임시방편의 예외적 장애등록제도 기준 자체가 문제가 있고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애등록 체계상 하위 규정에 장애정도 심사 기준에 대한 내용이 세부적으로 규정돼 있다 보니 사법부가 그 내용에 기속되고 의학적 장애정도 판정 기준에 비춰 신체적 감정을 요구하거나, 그에 해당하는지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사법적 쟁송을 통한 해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입법적으로는,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 및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장애유형을 구별하고 있는 체계를 수정해야 하나, 당장 개편이 어렵다면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 및 시행령에 해당하지 않은 장애인에 대해 장애등록을 신청할 수 있는 절차 및 기구를 별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는 “행정청이 열거된 장애유형에 대해서만 의학적 기준을 마련해 장애등록을 허용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지해야, 장기적 목표인 서비스별로 일상 및 사회생활 제약을 판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로 이전할 수 있을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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