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전문기자의 정신장애 이해와 치료효과 높이기 시리즈] 낯선 나, 여럿인 나 다루기(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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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전문기자의 정신장애 이해와 치료효과 높이기 시리즈] 낯선 나, 여럿인 나 다루기(1부)
  • 이창선 기자
  • 승인 2024.02.11 09:00
  • 수정 2024-02-12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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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걸릴 수 있고, 치료해 갈 수 있는 정신장애. 제대로 앎이 대처에 필요하다.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 모두 걸릴 수 있는 다양한 정신장애들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 및 주로 적용되는 치료 전략 개관 시리즈를 총 16가지 주제로 연재한다. 본 시리즈 기획특집 기사를 집필하는 이창선 전문기자는 심리학과 치료약학 전공자로서 이상·임상심리학, 정신의학 문헌 분석, DSM-5와 ICD-10, 정신장애 학술자료 분석을 기반으로 기사 내용을 제시한다. _편집국

고통을 지우려다 더 큰 고통으로 가는 ‘해리’

재해를 겪거나 충격적인 나쁜 소식을 받으면 갑자기 멍청해지거나, 일시적으로 주위가 낯설어지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이는 가벼운 ‘해리’의 예이다. 지각이나 기억·정체성·의식 등의 여러 측면이 통합되지 못하고 단절된 상태를 ‘해리’라고 한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것들은 서로 통합되며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마음에 큰 고통을 남겨주는 사건, 즉 ‘외상성(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할 때는 ‘마음에 있는 것들이 의식에서 사라지는’ 해리가 일어나, 다친 마음을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정신의학에서는 해리가 방어기제로서 고통스런 경험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문제는 고통을 지우려다 ‘마음이 조각나는’ 더 큰 고통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해리장애의 치료는 조각난 마음을 통합시킴을 지향한다. 해리장애는 다양한데, 이 기사에서는 대표적인 ‘해리성 정체성 장애’(1부)와 ‘이인성 및 비현실감 장애’(2부)를 집중 소개한다.

 

내가 왜 여럿이야?

나에게 두 가지 이상의 서로 완전히 다른 인격이 있어서, 어느 한 인격이 나의 행동을 조절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인격이 나타나 모습과 행동이 확연히 바뀌어 버린다면?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이 분열하며 바뀌는 극적인 경험을 고통스럽게 반복한다면 ‘해리성 정체성 장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뀐 인격에서 원래 인격으로 되돌아가면, 이전의 인격으로 했던 행동이나 경험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다.

# 30대 여성 마가렛은 가벼운 자동차 접촉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여, 다리가 굳어지는 증상과 피로감과 두통, 요통을 호소했다. 과거력을 살피는 중에, ‘뭔가를 얘기하고 뭔가를 하라는 목소리’를 종종 들은 것으로 밝혀졌다. 마가렛의 말에 의하면 ‘끔찍하고 무서운 목소리’였고, 때로는 ‘떠맡으라’고 떠미는 위협적인 것이었다. 마침내 ‘떠맡으라’는 목소리로 지각되었을 때, 그녀는 눈을 감고 주먹을 불끈 쥐고 얼굴을 찌푸렸다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다른 사람 앞에 서서 자기 이름은 ‘해리앳’이라고 말했다. 해리앳은 마가렛의 삶을 비꼬듯이 말했다. 마치 악동처럼 말하길 “나는 그녀를 불쌍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녀가 원치 않는 뭔가를 이야기하게끔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의사가 본 해리앳의 모습은 다리가 아픈 마가렛과 달리 건강해 보였고, 단숨에 방안을 걸어 들어갔다. 해리앳이 ‘마가렛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에 대해 주저하면서 동의한 후에, 더 많이 얼굴을 찌푸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마가렛은 다시 다리의 굳어짐 증상과 두통, 요통 증상을 보였고, 해리앳이 되어 말했던 기억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 사례는 하버드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The new Harvard guide to psychiatry>라는 정신의학 저서에 실린 것이다.

# 이 장애를 치료한 의사들의 경험을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분신’(또는 ‘부분’)이라고 부르는 다른 인격 상태의 수는 8가지 이상인 경우가 흔했다. 가장 많이 보인 분신은 ‘화나고 공격적인 분신’, ‘피해의식이 있는 분신’, ‘자살 충동을 느끼는 분신’, ‘어린아이 분신’ 등이다. 이외에 속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차분하고 건설적인 분신도 있고, 학대했던 부모의 모습인 분신, 자신을 사랑하는 이상형의 부모를 보여주는 분신도 많았다.

이 장애를 치료한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만성적이고 심각한 외상을 받은 아동기’에서 증상들이 나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치료의 기본 원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해리가 감당 못 할 기억과 감정을 묻어두는 역할을 하여, 외상에 압도당하지 않으려고 방어하다가 생긴 장애이기에, 외상 기억과 정서에 대한 ‘회피’를 둘러싸고 증상이 생겼음을 이 장애를 가진 이가 알게 함이 치료 과정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이 되어 주세요

어린 시절에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외상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한 콜크(Kolk)는 자기 스스로 안정시키는 능력이 불충분할 때, 외상의 영향을 극복함에 단연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조건 신뢰할 수 있으며, 안정시켜주고 돌보아 주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 전문가인 클러프트(Kluft)는 아이의 심리적 상처를 위로하고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해리성 정체성 장애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을 제시했다.

 

감추어진 아픔을 발견해 주세요

수년 동안 정신건강기관들을 다니더라도 ‘해리성 정체성 장애’ 진단을 받기는 쉽지 않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여러 연구들은 진단까지 7년 정도 걸린다는 결과를 보였다.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경계성 인격장애와 공통되는 증상이 있어 오진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장애를 가진 이들이 대부분 우울이나 불안, 자살충동 등을 호소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학대와 해리 증상, 환청 등의 경험에 대해서는 미쳤다고 여겨질까 두려워 감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가렛의 사례에서처럼 환청은 다른 인격 상태가 의식 속에 침범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며, 이 장애를 가진 다수가 흔히 경험한다.

 

정신과에서 권하는 치료 전략은?

통찰정신치료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치료 면담’이 치료의 중요한 방법이다. 맥키넌과 미첼, 버클리가 저술한 정신과 면담방법 자료에서는 이 장애의 진단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초기면담에서의 주의점과, 진단이 분명해져 ‘분신’이 존재함에 대한 표현을 공유하는 후기 면담의 진행에 대해 대화의 예를 들어 상세히 언급한다. 이 과정들을 보면, 치료의 중요 방법은 ‘부분’(분신)에 치료자가 접근하여, 이 장애를 가진 이가 자신의 부분(분신)을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무언가로 치부하지 않고, 그 부분들과 연결점을 맺도록 도와서 분열을 줄여감에 있다. 따라서 치료사는 이들이 내적 통합과 부분(분신)들 간의 상호소통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노력해야 함을 명확히 해주면서 돕는 역할을 한다.

각 ‘분신’들은 분리된 인간들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부분들’일 뿐이다. 치료를 통해 좋아지는 길은 각 부분들이 점차 덜 분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치료사는 부분들끼리 서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협력해서 기억상실과 혼란을 줄이고 기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해 주어야 한다. 치료사의 역할은 마치 바퀴의 축 같다. 분열된 인격 상태(분신)들이 치료사를 중심으로 점차 서로와 접촉해 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분신들은 내적 경계를 허물고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궁극적인 치료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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