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넘어 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시니어들…더화랑 박상만·다봄 김명희 대표
상태바
장애-비장애 넘어 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시니어들…더화랑 박상만·다봄 김명희 대표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4.02.08 09:59
  • 수정 2024-02-08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더화랑’의 박상만 대표와 ‘다봄’의 김명희 대표는 사실 각각의 다른 이유로 인터뷰이로 선정됐다. 한 사람은 시각장애를 위한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에 배리어프리 앨범을 만들어 선사했다는 이유로, 다른 한 사람은 출판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장애인식 개선 관련 그림책을, 그것도 시리즈로 펴냈다는 이유로 인터뷰이가 됐다. 그런데 각기 다른 시각, 다른 장소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 다 이제는 ‘시니어’라고 부를 만한 나이에 접어들었고, 창업 역시 이순에 가깝거나 이순을 지난 나이에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 아이템 역시 자신이 그동안 해오던 일을 기반으로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운 것을 택했다는 점. 그래서 이번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시니어들’이다.

“시각장애인들도 좀 더 효과적인 그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인천혜광학교에 배리어프리 앨범 선사한 ‘더화랑’ 박상만 대표

지난 1월 15일 인천혜광학교, 2024년도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27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내 얼굴이네요. 이건 ○○○ 얼굴이고…. 너무 좋아요. 졸업하면 잘 만나지도 못할 텐데, 이렇게 친구들 얼굴을 집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졸업앨범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받은 졸업앨범은 작은 플라스틱 박스에 들어 있다. 졸업생 1명당 1페이지씩 종이와 P.E.T. 재질의 입체 액자로 이루어져 있다. 저마다의 얼굴이 입체 부조로 제작되어 손으로 만져보면 각자의 생김새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의 졸업생들에게 촉각을 통해 볼 수 있는 졸업앨범을 선물한 이는 지난 2022년 12월 창업한 예비 사회적기업인 ‘더화랑’의 박상만 대표다.

“앨범 장수냐고요? 하하하, 아니에요. 더화랑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 교구를 만드는 회사예요. 궁극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좀 더 효과적인 그림 교육을 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그 그림을 소재로 한 굿즈도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꿈이 크다. 시각장애인 예술가들을 묶어내는 플랫폼이라니! 그런데 느닷없이 튀어나온 이 앨범은 무엇인가. “나는 그림은 배워야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명화전시회라고 해서 가봤는데, 그림을 손으로 만져서 보게 한다는 콘셉트였어요. 그 자리에서 첫 느낌이 뭐였냐 하면 ‘비현실적이다’라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이십 년을 넘게 미술을 배워도 피카소 그림을 모르는데,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손으로 만져본다고 그 그림을 알 수 있을까요?”

여기서 박상만 대표의 궁리는 시작됐다.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면 어떨까. 미술을 전공하고 방송국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30년을 일해온 그의 견해로 ‘미술은 암기과목’이다. 미술사나 화가의 이름을 암기해야 해서가 아니라 사과, 사람 얼굴 등 대상을 경험을 통해 머릿속에 저장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대상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림을 아무리 만져봐야 감상이 될 리 없다는 게 박상만 대표의 생각이다.

궁리 끝에 나온 게 이달 말 출시될 시각장애인을 위한 감성 미술 교구 ‘아트버스’다. 그림, 사물의 형상을 입체 형상과 양각 모양으로 만들어 촉각으로 인지하고, 음각 모양의 홈을 따라 반복적으로 그리도록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그림이 외워지고, 그림 공간을 인지하게 한다. 모양새는 언뜻 어린아이들이 한글을 배우는 그림카드 같지만 그 위에 합성수지 재질의 입체 카드를 덧씌워 따라 그릴 수 있게 했다. 옆에는 한글도 병기해, 한글도 배우게 했다.

▲ 더화랑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교구 ‘아트버스’. 투명한 합성 수지 위에 요철의 선을 따라 그리다보면 사 물의 형상을 익히게 된다. 한글은 덤이다.

아이디어의 제품화 과정에서 인천혜광학교를 알게 됐고, 그 학생들과 자신이 만든 미술 교구로 그림을 그려보면서 문득 ‘이 친구들이 졸업 후에도 친구들의 얼굴을 잊지 않도록 앨범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카카오 같이가치’를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작년 6월 26일 ‘카카오 같이가치’ 캠페인 페이지가 열렸다. 캠페인의 제목은 ‘손끝으로 추억을 볼 수 있습니다’. 목표 금액은 300만 원. 두 달 정도 진행하려고 했는데 단 5일 만에 목표가 달성됐다. 학생들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합성수지로 입체 틀을 만들고, 하나하나 액자로 조립하고…. 그 모든 과정을 박상만 대표는 하나하나 손수 했다.

“제2의 인생이라고 하나요? 흔히 시니어 창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나누는 미술 교구였고,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배리어프리 앨범이었던 것이죠. 해마다 더 많은 시각장애 특수학교 학생들이 이 앨범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입니다. 물론 미술 교구 사업도 안정화돼야겠지요. 누구나 그림을 즐기고 추억을 가슴에 되새길 수 있는 세상이 되는 데 제가 작은 보탬이라도 되면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창업을 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배리어프리 앨범을 만들면서 박상만 대표는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다고 한다. 자신의 노력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더 아름다운 세상을 선사하는 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장애명, 숨길 필요 있나요? 각자의 강점을 보면 함께 살아갈 수 있어요”

‘열려라! 다양성 교실’ 시리즈 펴낸 출판사 다봄 김명희 대표 

 

지난 1월 중순 서점가에 일제히 깔린 그림책 시리즈가 있다. 시리즈 명은 ‘열려라! 다양성 교실’. 『좋아하면 박사가 돼요』 『친구의 기분을 잘 알아요』 『생각이 반짝반짝해요』 『공간을 잘 기억해요』의 네 권으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책에는 ‘자폐스펙트럼’ ‘불안장애’ ‘ADHD’ ‘난독증’이란 장애명이 부제로 붙어 있다. 출판사인 ‘다봄’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열려라! 다양성 교실’은 무엇보다 나와 다른 사람, 특별히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각각의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이 일반적 특성과 그들이 갖고 있는 강점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아이들의 시선에서 재밌게 그려내고 있다.

출시를 앞두고 가장 고민한 것은 장애명을 다느냐 마느냐였다.

“가제본을 들고 인터넷 서점 MD들을 찾아가서 시장 반응에 대해 물어봤죠. 그랬더니 아무래도 표지의 장애명은 빼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서점 MD들은 인터넷상에 나도는 혐오 댓글이나 장애어린이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장애인 것이 이 책을 구매함으로써 밝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겠냐는 우려를 표했다. 과연 그럴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명의 발달장애아 부모들과 특수교사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장애명’을 넣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다. 이유는 “장애명이 들어가지 않으면 기존의 흔한 다양성 그림책들과 혼용되어 원작의 의도가 빛을 발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장애어린이들이 이미 학교에서 특수교육 대상자로 질병이나 장애명으로 분리와 비난을 받고 있는데, ‘다양성’만으로는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표현할 수도 이해나 납득, 수용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명희 대표는 “그래, 맞아!” 하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자신이 처음 이 시리즈를 발견했을 때 했던 생각, “더 이상 장애를 감춰서는 안 된다. 통합교육에서 특정 장애가 갖는 강점과 단점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앞으로 장애-비장애가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옳았다는 지지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 권도 아니고 네 권짜리 장애 관련 그림책을 일반 ‘상업’ 출판사에서 펴내는 일은 아주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출판사 ‘다봄’의 정체성에서 찾을 수 있다. ‘다봄’의 시작은 사회과학출판사 ‘풀빛’의 실용서 브랜드다. ‘풀빛’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김명희 대표가 퇴사를 하면서 ‘다봄’도 출판사로서 독립했다.

“(19)80년대와 90년대 민주와 정의, 평등 등 사회문제를 고민했던 정체성이 나이가 들어서도 이어졌고, 곧 출판사의 정체성으로 이어진 것이죠. 독립하면서 실용서는 버리고 교육과 아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첫발을 내딛는 아동출판사들이 그렇듯, 외서로 도서 목록을 채워갔다. 그런데 그 도서 목록이 다른 출판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대표적인 것 몇 개만 들어보자. 난민 소년이 전학을 오면서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갈등과 우정을 그린 『교실 뒤의 소년』, 장난감 하나를 두고 싸우는 아이 둘의 이야기를 통해 비폭력 대화법을 배울 수 있는 『내가 말할 차례야』, 아동학대에 대한 어른의 역할과 책임을 일깨우는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환경오염, 디지털 폭력, 문화 다양성을 방해하는 혐오와 차별, 기후위기 등을 다루는 ‘행동하는 어린이 시민’ 시리즈 등등, 외면할 수 없으나 어린이 세계에선 종종 외면당하던 이슈들을 드러내는 책들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이번 ‘열려라! 다양성 교실’도 기획되었다.

“돈보다는 가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 시니어의 사명 아닐까요? 지식 콘텐츠를 생산하는 출판사가 지향해야 할 곳 또한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돈이 안 될 것 같은’ 도서 목록에 대한 김명희 대표의 변이다.

“‘열려라! 다양성 교실’ 시리즈를 만들면서 우리 이은희 편집장이 고생을 많이 했죠. 다른 책들과는 달리 단어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어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그래서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부모님들이나 전문가 자문도 많이 받았죠. 이제 시장에 내놨으니 이 책들이 우리 어린이들이 장애가 있는 친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당사자와 부모들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고요. 그래서 교육 현장에서 더 많이 보시길 원해요.”

길지 않은 인터뷰 말미, 김명희 대표는 이 책을 필요로 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하게 가 닿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유였다.

‘열려라! 다양성 교실’ 이런 책이에요.

트레이시 패키암 앨로웨이 글 | 아나 산펠리포 그림 | 문송이 옮김 |다봄 펴냄

 

『생각이 반짝반짝해요-ADHD』

이지는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키우는 토끼의 사료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자 도둑을 찾아 나섭니다. 평소 호기심과 창의적인 생각이 많은 이지가 명탐정처럼 도둑을 찾아낼까요?

 

『좋아하면 박사가 돼요–자폐스펙트럼』

찰리는 친구들과의 소통이 어렵고 시끄러운 곳에서 힘들어하지만, 친구들과 과학 박람회에 참여합니다. 찰리네 모둠은 기차모형을 만들고 찰리에게 발표를 맡기죠. 기차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기차 박사가 바로 찰리거든요. 찰리는 준비한 발표를 잘 해낼 수 있을까요?

 

『공간을 잘 기억해요-난독증』

스카우트 캠프 첫째 날, 새미는 레드 팀의 길 안내를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새미는 지도를 보면 글자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여요. 친구들은 서로 나서다가 길도 잃고 지도도 잃어버립니다. 바로 이때, 새미가 길잡이로 나서는데요, 새미가 친구들을 무사히 캠프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친구의 기분을 잘 알아요-불안장애』

좋아하는 물건을 가져와서 발표하는 날. 말을 더듬으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말 대신 트림이 나오면? 루비의 머릿속은 온갖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점심시간에 혼자 있는 조이를 보고서 다가가 말을 건네요. 루비는 조이의 기분을 어떻게 알고 도와줄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