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찰 내 지적장애인 학대사건 ‘무죄 취지 파기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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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사찰 내 지적장애인 학대사건 ‘무죄 취지 파기환송’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4.02.01 09:20
  • 수정 2024-02-01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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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지적장애인의
실질적 보호자···사찰 내
종교적 사역 비장애인과
같은 지위서 참여토록한
조치 ‘장차법 위반’ 아냐”

공대위, “장애인차별금지법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

32년간 사찰에서 승려로부터 노동 착취와 폭행, 폭언을 당한 지적장애인이 가까스로 탈출해 수년간 장애인차별에 대한 법정 싸움을 벌여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으나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으로 구성된 ‘지적장애인 사찰노예사건 반인권적 대법원 판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월 31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찰 내 장애인 학대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지적장애인 피해자 A 씨는 32년간 절에서 당한 학대 사실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장애인 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오직 단순폭행죄로 약식명령 벌금 500만 원을 내렸다.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하였던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장애인단체의 노력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 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1심과 2심에서는 가해자인 B 주지스님에 대해 각각 1년과 8개월 징역형이 선고됐다. 원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한 육체노동이 ‘울력’의 정도를 넘어섰다는 사실, 즉 피해자가 무늬만 스님이었고 실질적으로는 노예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1월 4일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A 씨를 B 주지스님이 32년 동안 거주하게 하며 피해자 및 부모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스님으로 대우했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위반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이어 “B 스님이 A 씨의 실질적인 보호자로 의식주 비용은 물론 뇌 수술비, 입원비, 진료비, 치아 임플란트 비용, 보험료, 성지순례비 등을 전부 부담했다.”며 확정된 폭행 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주장한 범행 시 중 일부는 B 스님이 C 사찰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기간이어서 모순된다.며 고려에 넣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찰 내 종교적 사역에 비장애인 스님과 같은 지위에서 참여하도록 한 피고인의 조치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이라고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에 오히려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이날 공대위 기자회견에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한결 변호사는 “대법원이 가해자의 서면만 읽고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법률 해석에 관한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의 판례는 사실상 구속력이 발생하는데 이번 판결은 한 사건에 대한 단순한 오판을 넘어서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차별행위를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부당한 취급할 때만 성립된다고 본 점을 이번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이라며 구체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는 차별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법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고 장애인차별과 관련된 차별 구제조치나 손해배상,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판단 모두 이 요건을 들지 않는다.”며 근거 없이 해석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했다.

임 변호사는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인차별을 피하기 위해 비장애인도 똑같이 불리하게 대하면 된다. 장애인을 한 대 때리고, 옆에 있는 비장애인도 한 대 때리면 차별이 아닌 것이냐”며 “적어도 수익적 행위가 아닌 침익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취급했는지 여부를 따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했던 원심의 사실관계를 대체 무슨 근거로 대법관이 해석한 것이냐. 일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12차례 폭행을 행사하고,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명의 도용하여 부동산을 매입하고, 1심 선고가 나기도 전에 법인으로 사찰 소유권을 이전하여 집행을 회피한 사람에 대해 자애로운 은덕이라도 베푼 것처럼 봐준 셈”이라고 질타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백선영 활동가는 “대법원에서 생각하는 착취와 차별의 정의가 무엇이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묻고 싶다.”며 “피해자가 일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피고인 마음대로 피해자 명의를 도용하였는데 비장애인 스님이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백 활동가는 “이는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한 학대 사건이 맞고 피해자 한 사람의 개별 사안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어떤 발달장애인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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