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지원이와 수정이를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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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지원이와 수정이를 위해서는
  • 편집부
  • 승인 2024.01.25 10:58
  • 수정 2024-01-25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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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화/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 정책실장

일반 초등학교 특수학급에 재학 중인 지원(가명)이와 수정(가명)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지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특수학급으로 등교한다. 통합학급에서 듣는 교과의 1교시 수업이 사회인 둘은 통합학급으로 올라가야 한다.

지원이는 특수교육실무사님의 손을 잡고 올라간다. 교실 위치는 조금 헷갈리지만, 든든한 실무사님께서 잘 데려가 주신다. 지원이가 실내화 주머니를 들기 귀찮아하는 기색이 있어 실무사님께서 대신 들어주신다. 교실 앞에 올라가 실내화를 갈아신으려는데, 실내화가 주머니 속에서 잘 안 나오자 다정한 실무사님이 마저 꺼내고 정리도 도와주신다.

수정이는 스스로 통합학급 교실이 어디인지 생각하며 교내를 이동한다. 길이 생각이 안 나면 뒤를 돌아본다. 특수학급 선생님께서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야속하게도 길이 어딘지 선뜻 가르쳐 주시지는 않는다. 대신 수정이가 영 엉뚱한 길로 들어서면 아니라고 알려주신다. 교실에 도착한 수정이는 실내화를 꺼내 갈아신는다. 실내화 주머니 속에서 실내화를 아무렇게나 잡아당기니 잘 안 꺼내지는데, 선생님을 쳐다봐도 선생님께서 그걸 꺼내 주시지는 않는다. 대신 실내화 주머니 입구를 더 벌리고 신발 뒤축을 가지런히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지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랑과 관심 속에서 통합학급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둘이 겪은 경험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통합학급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통합학급 1교시 수업은 사회다. 우리 고장의 특징에 대해 배우는 차시로, 주로 글과 영상 자료로 이루어진 PPT를 활용해 수업이 진행되는 이론 시간이다. 지원이는 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보다가, 실무사님이 꺼내주신 교과서를 넘겨보다가, 연필과 지우개를 만지작거리며 장난치다가, 교과서를 마구 넘기려 해 실무사님이 부드럽게 안 된다고 일러주셨다. 다시 잘 참아보다가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려 해 실무사님이 다시 한번 달래 주셨다. 수업 중 활동지를 받자 실무사님이 연필을 쥐어주시며 이름 쓰는 칸을 짚어주셨다. 이름을 쓰고 나서는 아래의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이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다가와 지원이가 어려우면 칠판에 있는 낱말을 보고 쓰라고 알려 주셨다. 열심히 쓰고 나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은 아직 문장을 쓰고 있다. 지원이는 조금 심심했지만, 옆에서 실무사님이 지원이를 달래 주셨다. 40분 수업시간 동안 지원이는 그렇게 자리에 잘 앉아 있었다.

수정이는 자리에 앉아 특수학급 선생님이 내민 카드를 보았다. 수업 시작 전에 꺼내야 할 세 가지가 써 있는 카드였다. 필통, 교과서, 배움공책 세 가지를 스스로 잘 꺼낸 수정이는 특수학급 선생님이 내민 종이를 받았다. 우리 고장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내가 사는 지역의 이름과 특징을 쉽게 설명한 활동지다. 반 전체가 같이 보는 PPT에서 핵심 낱말이 나올 때마다 특수학급 선생님이 그 낱말의 뜻을 활동지에서 짚어 알려주시고, 수정이가 활동지 빈칸을 채울 수 있도록 안내하신다. PPT에는 어려운 말이 대부분인데 특수학급 선생님이 주신 활동지는 쉬운 말로 되어 있어 수정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40분 수업시간 동안 수정이는 그렇게 열심히 배움에 참여했다.

지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좋은 어른이 옆에 있어 무사히 수업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시간의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 중 하나는 자립적인 생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학령기 이후에 성인으로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이라도 더 많도록 길러내는 것은 모든 장애학생 보호자의 바람일 것이다.

지원이와 수정이 중 어느 쪽이 자립생활 능력 향상에 더 도움을 받고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이것은 둘 중 어느 한 성인의 사랑이나 관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직무 자체의 차이점에서 기인하는 다름이다. 특수교육 지원인력은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하여 보조 역할을 담당(특수교육법 시행규칙 제5조 제1항)’하며, 그 자격조건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 또는 이와 같은 수준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으로, 주로 특수교육실무사와 사회복무요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원이의 예시는 사실 가장 모범적이고 훌륭한 이상적 지원인력을 만난 경우로, 주로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으로 이루어진 사회복무요원은 장애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 곤란해하는 일도 다반사다.

지원이가 받는 도움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원이는 사랑과 정성을 담은 보살핌을 받고 있고, 보호자로서는 분명히 안심이 될 일이다. 단순히 ‘안전한 돌봄’이 목표인 경우라면 지원이는 어른의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인 돌봄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기관이고, 돌봄과 교육은 그 목표 자체가 달라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돌봄’이 목표인 환경에서 학생은, 물고기를 대신 잡아 굽고 가시를 발라 입에 넣어주는 성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편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목표인 환경에서 학생은 낚싯대를 잡는 방법부터 젓가락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모두 직접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세분화하고 학생의 특성을 반영하여 더 쉽고 흥미롭게 수정해 가르치는 것이 특수교사의 전문성이다.

최근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그래서 ‘특수학급 교과전담교사’ 배치를 원하는 특수교사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수학급 담임교사와 별개로 교과전담교사를 추가로 배치하여, 수정이의 경우와 같이 통합학급에서 특수교사가 직접 학생을 가르치며 전문성을 담아 교수적 수정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교사 법정 충원율조차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낚싯대와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칠 날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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