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점]“‘나’만의 ‘오티즘’을 그리며 하루하루 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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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점]“‘나’만의 ‘오티즘’을 그리며 하루하루 성장해요”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12.20 10:48
  • 수정 2023-12-20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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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오티즘’ 전의 어린 화가 이희랑·최민서
▲ '내가 그린 오티즘' 전시회장에서 만난 최민서(사진 왼쪽), 이희랑(사진 오른쪽) 작가. 그들 뒤로 이희랑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열두 살, 열네 살. 두 살 터울의 오누이 같은 이들은 오랫동안 한 작업실에서 함께 그림을 그려온 ‘작가’다. 둘 다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장애아’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만은 저마다의 꿈을 꾸는 ‘화가’다.

전시회 마지막 날인 12월 12일 신촌역 인근 아트레온 갤러리에서 ‘내가 그린 오티즘’ 전의 메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이희랑(14), 최민서(12) 작가를 만났다. 다섯 번째 열리는 ‘내가 그린 오티즘’ 전을 이끌어온, 어느덧 ‘작가’란 명칭이 입에 착 붙는 두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이희랑 작가님. 저랑 잠깐 얘기좀 할까요?” 기자의 인사에 희랑 작가는 “저, 내일 이사 갈 거에요. 동탄 투(신도시)로 이사 갈 거예요.”라는 답을 돌려주었다. 기자가 알기로는 이희랑 작가의 집은 인천 영종도다. 정말 이사를 가는 걸까? 답은 아니다다.

“스무 살, 독립하는 게 꿈이에요. 근데, 스무 살 싫어요. 열다섯 살에 가고 싶어요. 동탄 투로 가서 혼자 살 거예요.”이희랑 작가는 엄마의 품을 떠나 혼자 사는 게 꿈이다. 엄마인 윤정은 씨와는 스무 살에 독립하는 걸로 약속했지만 이렇게 호시탐탐한 독립할 시기를 노리고 있다.

“그림, 그려야 해요. 그림 팔아서 돈 모으면 혼자 살 거예요.” 돈이 있어야 독립을 하는 것도 알고, 엄마의 참견이 싫은 열네 살, 사춘기의 질풍노도 감정이 충만한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 전시회장에서. 이렇게 함께 인터뷰를 해본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처음이라는 두 작가와 그들의 엄마. 왼쪽부터 최민서 작가의 엄마 김희진 씨, 이희랑 작가, 최민서 작가, 이 전시의 기획자인자 이희랑 작가의 엄마인 윤정은 씨. 

“희랑이오빠, 이사 간대요. 희랑이오빤 자꾸 이사 가고 싶대요.”

‘이사’ 노래를 부르는 이희랑 작가 옆에 다소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최민서 작가는 그런 희랑 작가가 재밌는 듯했다. ‘이사’에 꽂혀 버린 이희랑 작가를 대신해 최민서 작가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민서 작가는 몇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8살 때, 복지관에서 미술 프로그램을 했어요.” 기대를 넘는 또박또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몇 번째 전시냐는 질문에도 “다섯 번째”라고 한 번에 정답을 말해버린다. 민서 작가는 열세 살 소녀답게 동물, 그중에서도 토끼에 관심이 많다. 전시된 작품도 토끼, 북극여우, 북극곰 등을 그린 것들이다.

그럼 ‘이사’에 꽂혀 그림 얘기에는 관심도 없는 이희랑 작가는? 공룡이다. 갖가지 종류의 공룡을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단순화시켜 표현하는 데 재능이 있다.

이들이 작가로 참여한 ‘내가 그린 오티즘’ 전은 장애예술교육 매개자이자, 이희랑 작가의 엄마인 윤정은 씨가 주도해 꾸려온 그림 작업실에서 시작한 전시회다. 저마다의 꿈을 꾸는 발달장애 어린이들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다섯 번째 '내가 그린 오티즘' 전은 아래위 층으로 니뉘어 열렸다. 사진은 이제 막 그림그리기를 통한 장애예술교육을 시작한 후배들의 작품이 전시된 아래층 전시장의 모습이다. 

다섯 번째를 맞는 전시회는 위, 아래층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아래층은 이제 막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위층에는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리고 성장을 해온 선배들의 그림을 걸었다. ‘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작가들’이란 의미를 담는다.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자’는 뜻도.

“희랑 작가나 민서 작가나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나름 용기를 내서 인터뷰에 응한 것은 전시에 참여한 모든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란 교육을 통해 관계를 배우고 친구를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윤정은 씨의 말대로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은 능수능란한, 프로의 그림이 아니다. 민서는 민서의 오티즘을, 희랑이는 희랑의 오티즘을 그린, 하루하루 다르게 성장하는 그림들이다. 희랑 작가가 오늘 ‘이사(독립)’를 하고 싶어 열심히 그림을 그리듯, 이들은 모두 꿈을 꾸며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배운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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