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나를 위한 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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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나를 위한 정찬
  • 편집부
  • 승인 2023.12.14 10:08
  • 수정 2023-12-14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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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영/밀알사회복지재단 국제사회복지사

알리오올리오에는 마늘을 듬뿍 넣고, 새우 파스타에는 비싼 새우를 잔뜩 넣었다. 각종 채소와 과일을 가득 올려 싼 월남쌈에는 역시 피시소스. 연어 스테이크는 겉은 짭조름하고 속은 심심하게 하고, 크루아상 샌드위치 속에는 햄과 치즈를 끼워 넣어야 맛이 난다. 지난 한 달간 간간이 해 먹은 음식이다. 혼자 먹기 아까워 사진과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한 번 더 맛있게 먹는다. “Yummy!!” 케냐의 동쪽 바닷가 몸바사에 사는 친구가 반응을 올린다. 우와! 역시. 또 맛있는 것 먹고, 올리고, 나누어야지. 먹는 거에 진심이 덜 하고, 배만 부르면 되었던 식생활 습관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 이전과 달리 부엌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있다. 왜 그러지? 하고 내게 물었다. 재료를 사고, 요리하고, 정리하는 것 등을 따져보면 시간 아깝잖아. 살아갈수록 시간의 효용가치를 따져 살아야지. 음식 준비하는데, 시간을 쓰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하고 나에게 따진다. 할 일도 많잖아? 하고 핀잔도 준다. 이래저래 잘 먹고 맛있는 것 먹고 잘 살자는데, 자신이 제일 먼저 자신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타박하고 있다.

“아, 한번 생각해 봐. 이렇게 좋은 재료 사서 제대로 요리해서 제대로 먹은 적 있냐고?” “뭐, 나를 위해서는 그렇게 한 적이 많진 않네. 전혀 없는 건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그래도, 아프리카 살잖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서 그렇게 좋은 음식 먹어도 되는 거야?” “응. 되지. 왜 안 되는 거야? 이건 좋은 음식이 아니라 건강한 음식이라고.” “그래. 그래도 부자들이 먹는 음식이잖아.” “나처럼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 이러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거야?” “아니, 안 된다는 건 아닌 데….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국제사회복지사로 한국과 외국을 오가면서 일하고 있다. 내년이면 35년 차가 된다. 우연히 자원봉사자로 왔다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일하고 있다. 현장 경력 3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알리오올리오하고 연어 스테이크 해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습관이 무서워서, 나를 위한 무엇인가를 시도하면 항상 내 안에 있는 내가 먼저 발목 잡고 투덜거린다. 나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데자뷔다. 이러한 대화가 일상에서 사람들과 많이 오갔음을 깨닫는다.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서 하지 못한 많은 일이 마음속에, 감정 속에, 영혼 속에 가라앉아서 웅크리고 있다.

한국에선 4명의 유명 가수로 구성된 골든걸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과 평가에 주눅이 드는 마음을 이기고 대중 앞에서 자기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노련한 대 가수라고 해도, 처음 시도하는 일은 두렵기도 하다. 그 어려운 것을 이기고 대중 앞에 선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특히, 신효범 가수는 아프리카로 떠나오기 전 한강 유람선 선상 식당에 갔다가, 그녀의 노래를 직접 들은 기억이 있다. 아니, 그녀도 벌써 30여 년이 훨씬 넘은 대 가수가 되었네. 내가 외국에서 헤쳐나온 삶과 그녀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여 골든걸스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타인의 시선을 넘어선 사람들이 하는 노래를.

여름으로 들어가는 케냐에서 연말을 지나면서 반성도 하고, 새해맞이를 위한 마음 준비도 하고 있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 해보고 싶어도 사람 눈과 입이 무서워 못 했던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내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는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오늘 점심식사는 새우구이하고 배추전이다. 나이로비에서 새우는 조금 비싸고, 배추는 저렴하다. 나를 위한 정찬이 곧 세상을 위한 만찬이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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