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맞춤형 복지일자리 ‘아우름인형극단’_“인형극을 하면서 자립의 꿈을 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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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 맞춤형 복지일자리 ‘아우름인형극단’_“인형극을 하면서 자립의 꿈을 키워요”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12.01 09:00
  • 수정 2023-12-0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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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펄펄 내리는 날, 인천시 서구 백석동에 있는 서구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았다. 아우름인형극단의 존재는 복지관 SNS를 통해 알았다. 창단 8개월 차, 그것도 중증장애인들로만 구성된 인형극단이 공연을 했단다. 8개월 만에 인형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 첫 번째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인형극단이 중증장애인 맞춤형 복지일자리로 창단됐다는 것 또한 궁금증을 더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증장애인 맞춤형 복지일자리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는. 복지관에서 만난 다섯 명의 아름다운 청년들은 그들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었다.
▲ 연습실에서 자신이 맡은 인형을 들고 활짝 웃으며 한 장!! 가운데 있는 이가 지도교사 김주희 복지사다.

“자…이제 시작해볼까?” 음원이 재생되기 시작하고 연습실 한쪽에서 바퀴의자에 앉은 연기자들이 음악에 맞춰 무대로 들어온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무대 앞이 아니라 무대 뒤, 그리고 손을 높이 들어 자신들의 분신이랄 수 있는 인형을 무대의 암막 위로 치켜든다.

“세연아, 조금 더! 조금 더 높이 들어야지.” 지도교사인 김주희 사회복지사의 소리에 안간힘을 쓰면서 인형을 들어 올리는 세연. 그 옆에서 다른 이들도 인형의 높이를 유지한 채 연기를 하기 위해 애를 쓴다.

 

“공연하고 나니 팔 아픈 것도 다 나았어요”

내년 인형극 강좌 운영 통해 단원 육성도

 

아우름인형극단은 올 3월 창단된 중증장애인 인형극단이다. 인천시 서구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맞춤형 복지일자리다. 단원은 모두 다섯 명, 두 명의 자폐장애인과 세 명의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다.

중증장애인 맞춤형 복지일자리(이하 복지일자리)는 심한 장애로 기존 공공일자리에 근무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사회활동을 위한 맞춤형 복지일자리다. 주로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활동, 권익옹호활동 직무가 배정된다. 복지관에서는 작년에 창단된 플루트 앙상블인 ‘네잎클로버 앙상블’과 ‘아우름인형극단’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 극단을 만들었을 때는 주변에서 ‘인형극을 정말 할 수 있겠어?’ 하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어요. 단원 중에는 아직도 글씨를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도 있고, 인형의 무게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팔 힘이 없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우리 단원들이 잘 해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담당 지도교사인 김주희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김주희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의 또 다른 복지일자리인 ‘네잎클로버 앙상블’을 창단해 안착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경험을 통해 문화예술활동이 중증장애인들의 장애행동 개선과 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좀 느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얼마나 해내는지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 10월 19일 두 번째 인형극 공연 중 무대 뒤 풍경

아우름인형극단의 첫 공연은 7월 말이었다. 첫 연습인 대본 읽기가 4월에 시작되었으니 시범공연이긴 하지만 단 3개월 만에 작품을 소화해 무대에 올린 것이다. 비장애인 극단과 견줘도 놀라울 만큼 짧은 기간일 수밖에 없다.

“사실 첫 공연은 ‘우리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어요’ 하고 복지관 이용인들과 우리 자신에게 보여주자는 의도의 공연이었어요. 단원들이 연습이 길어지면서 자꾸 자신감도 떨어지고 처지는 느낌도 들어서요.”

첫 공연의 효과는 대단했다. “첫 공연을 하고 나니까 나름대로 보람 같은 게 있었어요.”(황지민)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면서 박수를 크게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팔 아픈 것도 다 낫더라고요. 좋았어요.”(임세연)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짜릿한 경험을 한 뒤 단원들은 연습을 더욱 열심히 했다. 잘 외워지지 않는 대본 때문에, 무거운 인형을 23분(작품의 러닝타임) 동안이나 들어야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못 하겠다’고 떼를 쓰던 일은 언제 적이었냐는 듯, 이제는 내년에 예산 배정을 못 받아 극단을 계속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걱정하고 있다.

아우름인형극단이 현재 무대에 올리고 있는 작품은 <친구야 내 손 잡아>다. 동물을 의인화한 인형극으로, 한쪽 다리를 저는 양순이와 한쪽 팔이 없는 엄마를 둔 구동이를 놀리고 따돌리던 동물 친구들이 늑대의 공격에서 양순의 도움을 받으면서 화해하고 서로 도우면서 살게 되는 장애인식 개선 과정을 담았다. 7월 말 첫 시범공연을 시작으로 10월과 11월 각각 복지관에서 공연을 가졌다. 특히 11월 23일 공연은 서구 불로동에 있는 나나어린이집 원생들을 초청해서 하는 공연으로 장애인식 교육의 일환이었다.

아우름인형극단의 1년 차 활동은 12월 31일 막을 내린다. 단원들의 특성상 연습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으면 다음 활동이 어려워지는데, 문제는 복지일자리 사업의 확정 시기다. 올해의 경우, 3월에 단원을 모집하게 된 것 역시 사업 확정이 늦어져서다. 따라서 2년 차 사업 역시 확정 시기가 늦어지면 단원들의 연습(이들에겐 연습과 공연시간이 곧 근로시간이다.)이 일시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김주희 사회복지사와 단원들은 조기 사업 확정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아울러 극단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내년에는 복지관 프로그램으로 인형극 강좌(초급반)도 운영할 예정이다. 플루트 강좌를 통해 교육생 중 잘 하는 사람을 네잎클로버 앙상블 단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인형극 강좌를 통해 단원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연습실로 올라가는 다섯 명의 단원들의 발길은 가볍다. 11월 23일 공연을 며칠 앞둔 시기여서인지 그들의 발길에 첫눈 같은 설렘이 묻어 있었다.


  [아우름인형극단의 배우 5인방을 소개합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마마무’ 팬 구동이 배수빈

인터뷰 내내 웃기만 하고 있는 배수빈 씨를 보면서 어디서 봤더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배수빈은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쓴 자기소개서 첫 문장을 보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큰 입, 선한 눈매, 그리고 노래까지! 딱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정미조였다. 정미조를 닮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마마무. 가창력과 퍼포먼스로 인기를 얻고 있는 4인조 걸그룹이다. 옆에 앉았던 이들이 증언한다. “수빈이도 노래 잘해요. 전에 여름캠프 갔을 때 버스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불렀는데 정말 잘 불렀어요.” 이쯤이면 아우름의 정미조 아닐까. 그러나 수빈 씨는 극구 아니라고 부인한다.

“인형극이요, 재밌다고 해서 들어왔습니다.” 인형극을 하게 된 동기는 심플했다. 마찬가지로 인형극을 하면서 좋았던 점도 심플하다. “월급을 받아서…” 첫 월급을 받아서 어디다 썼냐고 묻자 또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통장에 그냥 두었어요.”한다. 언젠가 부모님 슬하를 떠나게 되면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둔 돈은 곧 자립자금이 될 것이다. 구동이 역을 맡고 있다.

 

아직은 팔이 아픈, 그러나 멋진 연기자가 되고픈 이예림

스물아홉, 인형극단 아우름의 맏언니다. 하지만 아직도 인형을 들고 있는 게 힘에 부쳐 가끔은 도망가고 싶기도 한 이가 양순이 역을 맡은 이예림 씨다.

“처음에 친언니가 이거 너가 하면 딱 맞을 것 같아.”하면서 추천해줘서 인형극단을 신청했다. 근데 처음부터 고난이었다.

“바퀴의자를 타는데 쿵 하고 넘어져 버렸어요. 아프고 창피했습니다.” 평소 말수가 적은 예림 씨지만 처음 인형극단에 들어와서 바퀴의자를 타지 못해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니 저절로 말이 나오는 듯했다. 자신의 신체 특성상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친구들 보기에 민망했다. 그래도 9개월 전인 3월 시작할 때와 비교해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이 예림 씨다.

“인형 드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다른 친구들만큼 높이 못 들어서…. 그래서 선생님이랑 맨날 연습해서 고치고 있어요.”

이젠 도망갈 생각은 없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멋인 인형극 연기자가 될 수 있을 자신이 있어서다. “착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예림 씨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한다.

 

‘행복한 청소부’ 아니 ‘행복한 인형극 배우’ 임세연

“매일매일 집에서 가서 악력기를 해요. 인형을 들려면 손에 힘이 세야 하거든요.”

2001년생, 제일 막내이지만 제일 의젓해 보이는 임세연 씨는 이곳이 처음 직장은 아니다. 서희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청소 일을 2년 정도 했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청소 일을 그만두었을 때 마침 복지관에 복지일자리 공고가 붙었다. 인형극?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원하고 면접 보고 단원이 됐다.

“처음엔 인형 드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김주희 복지사는 처음에 인형 드는 높이가 가장 낮은 사람이 세연 씨였었고 귀뜸했다.) 그래도 청소하는 것보다 재미있어서 좋아요. 힘도 세지고요.” 세연 씨는 인형극을 위해 따로 수영을 다니기도 하고, 악력기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덕분에 지금은 구동이엄마와 원숭이의 두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인형극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 많이많이 친해진 거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친구와 함께해서 행복한 인형극 배우다.

 

신하균보다 더 잘생긴, 흥부자 주효준

“제 이름은 주효준입니다. 27살입니다. 저는 신나는 사람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가장 먼저 큰 소리로 자기를 소개한 사람은 주효준 씨다. 무슨 질문을 하든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이야기하는 사람, 얼굴 가득한 미소와 커다란 몸짓은 그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흥부자, 그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작품에서 토끼와 늑대의 상반된 역을 하고 있는 효준 씨는 인형극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냐고 묻자 “없어요. 그런 거. 아!! 인형이 좀 무거운 거만 빼면….”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요,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그래서 인형극도 좋고요.”라고 인형극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말한다. 효준 씨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신하균이 나온 <도굴>. 신하균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다. 그런데 신하균보다야 주효준의 더 잘 생기지 않았나?(모두 웃음)

인형극을 하면서 대본을 읽는 게 제일 좋았다는 효준 씨는 아직도 체력이 많이 달리기는 하지만 절대 인형극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한다. 왜냐구? 주효준 씨의 좌우명이 “포기하지 말자!”이기 때문이다.

 

성우가 꿈이었던 카리스마 캡짱 황지민

“극단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항상 드러나는 문제점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거예요. 누구는 인형을 너무 낮게 들고, 어떤 사람은 좀 늦게 나오고, 또 어떤 인형은 다른 데를 보고 있고…. 이게 매일 연습할 때마다 지적받는데, 안 고쳐지는 게 힘들어요.”

단호한 표정에 엄격한 목소리, 와, 카리스마 끝장인데! 황지민 씨의 첫인상이다. “혹시 아우름 반장이세요?” 하고 묻자 “뽑아준다면이야…”라고 대답하는 지민 씨는 극단에 대해 늘 진지하다. 자기소개서에도 “저는 인형극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인형극단이 잘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고 있습니다.”라고 적을 정도로.

복지관 작업지원팀 복지사의 추천으로 인형극을 시작하게 된 지민 씨는 “사실 몸이 힘들었던 때도 많아요, 하지만 하루하루 발전하면서 실력이 느는 걸 보면 뿌듯하죠.”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양순이엄마와 늑대 역할을 맡고 있는 그는 한때 성우를 꿈꾸었던 만큼 인형극이 딱 자기 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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