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캘리그라피 작품발표회’ 참가 작가들] 들꽃처럼 굳세게, 그리고 자유롭게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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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캘리그라피 작품발표회’ 참가 작가들] 들꽃처럼 굳세게, 그리고 자유롭게 꿈꾼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3.11.17 09:00
  • 수정 2023-11-16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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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인천시 남동구청 1층 로비를 채운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함께걸음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난 2017년부터 꾸준히 개최해온 ‘장애인 캘리그라피 작품발표회’가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들꽃, 하늘을 날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발표회에는 22인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총 74점의 작품이 관객을 맞았다. 기자는 이날 두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1회 때부터 계속 참가하고 있는 베테랑 한명준 씨와 올해 처음 새내기 작가로 참가한 이승훈 씨가 주인공이다. 개개인이 가진 감성과 신체적 특수성 때문에 더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들꽃’ 같은 그들의 여정을 들여다보자.

“사람이 사는 마을에 함께 하고 싶어요”

한명준(뇌병변지체 중복, 54세)

한명준 씨에게 캘리그라피는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이자 존재이자 세상과 연결해준 ‘문’이다. 중증 뇌병변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명준 씨는 언어의 불편함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 그에게 캘리그라피는 말이 아니어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센터에서 처음 캘리그라피 수업이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 무조건 한다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배운다는 것 자체도 좋았고, 글씨를 쓰면서 마음이 힐링되고 있음을 느꼈거든요.”

그러나 한명준 씨에게 캘리그라피 도전이 결코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장애로 인해 손 움직임이 어려운 그는 붓을 쥐는 것부터가 미션이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에는 멈춤이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씩 연습에 매진한 결과, 지난해 열린 작품전시회에서 가장 많이 작품을 판매한 인기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아무래도 장애로 인해 붓을 쥔 손에 떨림이 있는데, 그 떨림 덕분에 필체가 독특하고 개성이 있다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제 장애가 작품에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죠.(웃음)”

이날 인터뷰 진행을 도와준 명준 씨의 활동보조 선생님은 캘리그라피를 배운 후 명준 씨가 부쩍 밝아지고 즐거워한다고 덧붙였다. 소통의 불편함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던 명준 씨가 캘리그라피를 배우면서 밖으로도 나오고, 또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자신감도 많이 올랐다고.

이처럼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고 소통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한명준 씨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골라 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손가락으로 가리킨 작품을 보며 기자는 웃음 뒤에 남아 있는 그의 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의 마을에서 멀리 산다’ 명준 씨는 이 글이 자신의 삶과 닮아서인지 캔버스에 첫 글자를 적을 때부터 와닿았다고 말했다.

전시회 내내 찾아준 지인들과 관객, 또 같이 연습한 동료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고 대화하는 모습 뒤에 얼마나 그가 외롭고, 그 외로움을 이기려고 부단히 노력하는지, 또 그러기 위해 세상과 연결된 문을 스스로 두드리고 있는지 그 간절함이 느껴졌다.

“캘리그라피는 물론 사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힘들지만 사진을 통해 글을 통해 내 인생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요.”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명준 씨가 ‘사람의 마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마을의 주민으로 함께 살아갈 외롭지 않은 세상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기원한다.

 


“내가 무엇을 보고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이승훈(뇌병변 지체장애, 25세)

앳된 얼굴의 이승훈 씨는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캘리그라피 작품발표회’에 참가하게 됐다. “센터를 다니던 중 캘리그라피 수업이 있다고 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보자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어요. 장애 때문에 손이 떨리는 증상이 있어서 처음에는 획을 긋는 것도 힘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삐뚫어질까, 혹시라도 결과물이 안 예쁠까 봐 걱정이 앞서서 진도가 나아가질 않았는데, 오히려 있는 그대로 떨림이 담긴 글씨가 매력적이라는 강사님과 주변분들의 말씀 때문에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장애로 발음이 조금 부정확하고 한 글자씩 천천히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승훈 씨가 선보인 많은 작품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글귀였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제가 진짜 무엇을 보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그것이 꼭 직업적인 목표도 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제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이 글을 처음 봤을 때도 읽었을 때도 와닿았고,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는 것 같아요.”

아직 명확한 꿈은 없지만, 가능한 많은 것에 도전해 보고 결국은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승훈 씨. “치료사를 꿈꿨던 적도 있어요. 저처럼 아픈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의미 있잖아요. 하지만 제 장애로는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현재는 명확한 꿈과 목표는 없지만 결국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제가 기독교인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바람을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도 하고, 또 스스로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려고요.”

이어 그는 “다음에도 캘리그라피 프로그램이 시작된다고 한다면 지체없이 당연히 참여할 거에요. 또 어떤 글귀로 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지 기대되거든요.”라고 말했다.

항상 부족한 의사소통 능력 때문에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글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캘리그라피를 만난 것은 인생의 새로운 길을 만난 것과 같다고 말하는 승훈 씨의 모습에서 기자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그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승훈 씨는 바르고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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