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23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주목할 판결]“장애인차별, 계속 부딪혀서 좋은 판례 많이 만들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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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23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주목할 판결]“장애인차별, 계속 부딪혀서 좋은 판례 많이 만들어내야”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3.11.16 15:00
  • 수정 2023-11-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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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022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선고된 장애 관련 판결 총 5천여 건 가운데 디딤돌 판결 4건, 걸림돌 판결 6건, 주목할 판결 4건 총 14개의 판결을 선정해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2023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보고회’를 열었다. ‘장애인생활신문’은 한정된 지면 관계로 올해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주목할 판결 중 일부를 소개한다.
▲지난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2023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보고회’(사진=(재)동천)

 

디딤돌 판결: “장기요양급여 받던 65세 미만 장애인, 활동지원 거부는 차별”

이소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변호사는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된 노인성 질병이 있어 장기요양급여를 받던 65세 미만 장애인이 ‘장애인활동지원법’상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한 경우 그에 대한 거부는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은 조항에 근거한 위법한 처분임을 확인한 광주지방법원의 판결을 소개했다.

원고인 노인성 질병을 가진 65세 미만 뇌병변장애인 A 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주 5일, 하루 3시간의 방문요양을 받았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서비스는 하루 최대 16시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2021년 6월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했다.

A 씨는 헌법재판소가 2020년 12월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을 제한하는 현행법’에 대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에,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피고인 광주광역시 북구청은 헌법재판소의 잠정적용을 이유로 신청자격이 없다고 하며 변경신청을 거부했고 A 씨는 거부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20년 12월 “65세 미만의 나이인 경우 자립 욕구나 자립지원의 필요성이 높아 장기요양의 욕구‧필요성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 활동지원급여와 장기요양급여는 급여량 편차가 매우 크고 사회활동 지원 여부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면서 “65세 미만의 장애인 가운데 일정한 노인성 질병이 있는 사람을 일률적으로 활동지원급여 신청자격을 제한한 것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A 씨 사건을 맡은 광주지방법원은 헌법재판소가 장애인활동지원법 제5조 제2호 심판대상 부분을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2022년 말까지 개정하라고 잠정 적용한 이유는 △중복급여 문제 △장애인활동지원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급여 구분 체계에 대한 법적 공백 발생 △수급자 선정 등과 관련된 입법형성권의 존중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광주 북구청의 처분이 ‘적용 중지된 법률에 근거한 위법’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소아 변호사는 “장애인활동지원과 노인장기요양은 큰 차이가 있다.”며 “행정청은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나 장애인권 보장을 고려하지 않고, 형식적·기계적 논리에 따른 처분 하자를 지적했다.”고 평가했다.

장애인활동지원은 하루 최대 24시간(월 한도 최고 648만 원)인 반면, 노인장기요양은 하루 최대 4시간(월 한도 최고 149만 원)으로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장애인활동지원을 받아야 하는 중증장애인에게 노인장기요양만을 이용하게 못박은 것은 장애인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장애계로부터 받았다.

이 변호사는 “재판을 통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 냈음에도 여전히 장애인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급효가 없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행정당국의 소극행정으로 인하여 해당 판결이 당사자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하며 사회보장 관련 의무이행 소송의 도입을 촉구했다.

‘의무이행소송’이란 당사자의 특정한 행정처분의 신청에 대하여 행정청이 그 처분을 거부하거나 부작위로 대응하는 경우에 적극적으로 법원의 판결에 의해 행정청으로 하여금 신청에 따른 행정처분을 하도록 명하는 것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이밖에도 올해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는 △극히 일부의 편의점에만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적용되도록 한 현행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의 위헌성을 인정하고,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있는 편의점의 범위를 확대한 사례 △피성년후견인이 된 검찰공무원의 명예퇴직 부적격 판정과 관련해 피성년후견인을 당연퇴직 사유로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은 위헌이라고 본 결정 △혼자서 운전할 수 없으리라는 이유로 전동휠체어 교부를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사례 등 4건이 선정됐다.

 

걸림돌 판결: 휠체어 이용 장애인 시외이동권 

적극적 조치 명령한 서울고법 판결을 원심파기한 대법원 판결

윤정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장애인 인권 걸림돌 판결로 선정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버스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휠체어 탑승설비와 저상버스 도입을 청구했으나 차별에 대한 판단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한 대법원 판결을 소개했다.

원고인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2명, 계단 이용이 불편한 장애인 1명,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유아차 이용자 1명, 64세의 노인 1명 등 교통약자들은 2014년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가 설치된 버스나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교통약자들의 시외 이동권이 막대하게 침해받고 있다며, 대한민국과 서울시, 경기도 및 버스회사 2곳을 상대로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법원은 8년만인 2022년 2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지만, ‘즉시’ ‘모든’ 버스에 제공하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소극적 판결’을 내리면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고, 서울시와 경기도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선고했다.

그러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제3조는 이동권을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하면서, 제4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의 이용편의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는 의무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법적 근거에도 대법원은 원심인 서울고법에서 피고인 버스회사들이 운행하는 노선 중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인 개연성이 있는 노선과 재정상태,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운임과 요금 인상의 필요성과 그 실현 가능성 등을 심리한 다음, 이후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대상 버스와 그 의무 이행기 등을 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윤정노 변호사는 “서울고법의 즉시 모든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를 설치하라는 원심 판결에 대해 ‘법원의 적극적 조치 판결에 관한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과도한 것’이라며 원심을 파기 환송한 대법원 판결은 법률에 명시된 규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 책임을 부정한 불합리한 판결”임을 밝혔다.

이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 시외이동권 소송은 현재 파기 환송된 2심 판결이 진행 중”이라며 “대법원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청구 인용 부분을 파기하면서도 장애인차별구제청구권에 대해 ‘법원은 구체적인 사안별로 여러 사정을 종합해 위와 같은 분쟁이 존재하는지를 판단하되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는 판시를 하기도 했다. 계속 부딪혀서 좋은 하급심 판례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그것들로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밖에도 걸림돌 판결로는 △치료감호를 빙자해 발달장애인을 장기 구금한 것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전화로만 가능한 진료 예약 및 장애인 근로자 채용 면접시험에서의 불합격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청각장애인(구화인)이 정당한 편의 제공 미비를 이유로 장애인모집 전형 불합격처분취소 등을 청구했으나 면접 사항은 면접관의 재량권에 속한다고 제한적으로 판단해 기각한 사례 △부모의 이혼 후 부의 주택에서 홀로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자녀에게 청구한 소유물 반환청구 소송으로 부가 자녀의 퇴거를 요구해 인용된 사례 △지적장애인의 일실수입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 등 6건을 선정했다.

 

주목할 판결; 최초로 장애인 위한 알기 쉬운 판결문 쓴 서울행정법원의 판결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장애인 인권 주목할 판결’로 선정된 사법정보 접근권 향상을 위해 알기 쉬운 Easy-Read 방식의 첫 판결문이었으나 장애인 채용 불합격 처분은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의 판례를 소개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사상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쉬운 판결문’을 썼다. 예를 들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는 식으로 괄호 안에 쉬운 말을 썼다. 이례적으로 삽화도 삽입해 이해를 도왔다.

선천성 중증청각장애인인 원고 B 씨는 강동구청이 실시한 2022년도 장애인 일자리사업에서 전일제 일자리는 경증청각장애인만 합격하고 B 씨와 같은 중증청각장애인은 모두 불합격하자 충분한 편의제공이 이뤄지지 않아 불리한 조건에서 면접을 진행해 중증장애인을 차별했다고 주장하며 불합격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수어통역 등을 거쳐야 하는 청각장애인임을 감안하더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면접 20분이라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고, 해당 면접에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참가해 중증청각장애인 채용 비율로 채용 절차에서 위법하게 차별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윤진 변호사는 “법원은 원고 B 씨의 탄원으로 알기 쉬운 용어로 쓴 Easy-Read 방식의 판결문을 최초로 썼다. 또한 이를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라고 명시함으로써 장애인의 사법 접근권 및 정보 접근권 향상에 기여했다.”면서도 “그동안 장애인 선발에서의 통계와 수어통역 지원이 충분했는지 살피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주목할 판결로는 △시설 거주 장애인에 대한 후속 조치 계획이 미비한 상황에서 운영자가 추진하는 장애인거주시설 폐쇄신고는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 △정신병원이 비자의 입원 목적 이송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질환자의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지에 관해 직접 원인 중심으로 판단한 사례 △국민연금법상 장애등급 판정기준에 대한 적극적, 실질적인 해석을 통해 장애를 인정한 사례 등이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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