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소개]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상태바
[새 책 소개]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11.06 12:33
  • 수정 2023-11-06 1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쓴이: 박윤영·채준우
펴낸날: 2023년 10월 20일
펴낸곳: 뜨인돌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가려면 중간에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환승하는 길에 비장애인을 위한 계단이 없다! 보이는 건 죄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뿐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벽면 귀퉁이에 붙어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비장애인 환승 방법’ (중략)

이거 실화냐? 대체 어떻게 찾아가라는 거지?

지하철로 5분인데 환승에만 20분이 넘게 걸렸다. 어느새 약속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마음은 급한데 한참을 헤맸더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언제 오냐고 난리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나도 빨리 가고 싶다고!”(123~124쪽)

장애인-비장애인 커플인 박윤영과 채준우가 쓴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에서 옮긴 장면이다. 청소년을 위한 교양 시리즈인 ‘라면 교양 시리즈’(시즌2)의 첫 책이다. 글쓴이들은 장애인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위해 책 곳곳에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실어놓았다. 인용한 장면은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지하철 타기 투쟁을 떠올린다. 장애인들이 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20년째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느 비장애인의 슬픈 주말’이라는 꼭지에서는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에서 겪는 비장애인의 고달픈 일상생활을 그린다. 극장에서 영화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마트에서 주차를 편하게 할 수도 없다. 택시를 타려면 일단 비장애인 증명서를 보내서 회원등록을 한 다음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심지어 남들 다 들어가는 맛집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한다. 이 에피소드는 박윤영의 어느 주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거꾸로 뒤집힌 이런 풍경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론 통쾌하지만, 그 또한 글쓴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박윤영·채준우 두 사람은 한국 사회 장애인 차별의 실태와 원인, 그리고 대안을 청소년 독자들의 눈높이(물론 성인들이 읽어도 좋다)에 맞게 차근차근 설명한다. 솔직하고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러나 때로는 단호하게! 윤영의 글에 당사자로서의 생생함이 담겨 있다면, 준우의 글에는 건강한 시민의식과 인권의식이 담겨 있다. 동일한 상황, 두 개의 느낌, 그리고 하나의 결론! 장애인 혼자 쓴 글이나 비장애인 혼자 쓴 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책만의 미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