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백십년만에 개방된 도심속 ‘소나무언덕’ 열린송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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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백십년만에 개방된 도심속 ‘소나무언덕’ 열린송현공원
  • 편집부
  • 승인 2023.11.03 14:00
  • 수정 2023-11-0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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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운 서울의 관광명소로 떠오르는 곳이 열린송현공원이다. K-관광 열풍에 몸을 맡긴 외국인 관광객이 빠트리지 않고 들르는 경복궁 옆에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높은 담장으로 가로막혀 ‘저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냈던 곳이다. 무려 3만7117㎡, 서울광장 면적의 3배에 달하는 넓은 녹지공원으로 재탄생해 메갈로폴리스 서울의 새로운 숨통이 되고 있는 그곳에는, 지금 가을이 넘실거리고 있다.
전윤선/무장애여행 칼럼니스트

K-열풍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드라마, 영화, 음악, 뷰티, 음식에 이어 K-관광까지 외국인이 죄다 한국 문화를 체험하려 몰려들고 있다. 유명 관광지는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북새통이다. 한복을 곱게 입은 외국인은 궐 수문장 교대식에 환호하고 한국 문화에 감탄한다.

경복궁 옆 열린송현공원도 공개됐다. 4미터 높이의 담장에 둘러싸여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던 송현동 터가 백십 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높은 담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송현’은 ‘소나무 언덕’이라는 뜻이다. 조선 초기 궁궐 옆은 소나무숲이었다고 한다. 도심 한복판에 공원이 들어설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백십년 동안 높은 담장으로 가려진 비밀 공간

 

송현동 부지는 아픈 과거가 있는 곳이다. 1910년 일제가 강제 한일병합(경술국치 庚戌國恥)한 후에는 조선 통치를 위한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있었고, 해방 후에는 미군과 미대사관 숙소로 1997년까지 사용됐던 터다. 이후 땅 주인이 삼성과 대한항공으로 바뀌어 호텔이 들어선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계획이 무산되면서 방치되다가 서울시가 공원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제 모습을 되찾게 됐다.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화를 겪으면서 폐허로 방치된 송현 부지는 서울광장의 세 배가 넘는 넓은 땅이다. 언덕을 중심으로 소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복원됐고 다양한 꽃과 조각 작품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송현공원은 푸르고 아름다운 숲길을 만끽하면서 지역의 역사도 상기할 수 있다.

▲ 열린송현공원 뒤로 펼쳐진 빌딩숲. 열린송현공원은 경복궁 옆 서울광장의 3배 규모로 조성된 시민들을 위한 쉼터다.

 

‘하늘소’ ‘땅소’, 천지의 기운을 받다

 

공원에 들어서면 눈에 확 띄는 거대한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하늘소’ 조형물이다. ‘하늘소’ 조형물은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형 작품이다. ‘하늘소’는 주변과 관계를 잇는 작품으로 높은 곳에서 주변 산세와 송현동 부지와 관계를 바라볼 수 있다. ‘하늘소’의 특징은 한양의 배치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구조물 조망대에 올라가면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경복궁의 배치 관계를 통해서 조선의 수도 한양에 초기 궁궐을 둘러싼 주변이 산, 강, 바람, 빛 등의 자연적인 요소를 고려한 친환경적 도시를 계획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늘소’ 작품은 계단으로 된 구조물이어서 휠체어 탄 여행객은 조망대에 올라갈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근사한 작품을 보는 것과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바로 옆에는 ‘하늘소’와 궁합을 맞춘 ‘땅소’가 있다. ‘땅소’는 송현동 부지와 그 주변 땅의 기운을 느끼도록 한 작품이다. ‘땅소’는 낮은 언덕으로 조성됐고 가운데는 작은 연못을 들였다. 관람객은 굴곡진 둔덕에 앉거나 비스듬히 누워 서울 땅의 기운을 주변 산세와 더불어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휠체어 탄 관람객도 낮은 둔덕으로 올라갈 수 있어 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땅소’ 중앙에 작은 연못은 투명하게 반사되는 푸른 하늘과 공원 건너편 빌딩이 못에 담긴다. 방향에 따라 주변 풍경이 다르게 담기는 것이 특징이다. 작은 연못은 땅이 생명을 잉태하고 성장시키는 물의 중요성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열린송현공원이 딱 그런 곳이다.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품들로 가득하고 작품이 벤치가 되기도 한다. 밤에는 조명으로 변신한 작품들로 이색적인 빛이 공원 가득하다.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많아 음료를 마시며 힐링할 수 있고 애견과 함께 오거나 유모차를 타고 온 아이와 가족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송현공원에 몰려든다.

▲ 열린송현광장의 시그니처 조형물인 ‘하늘소’(위쪽)와 ‘땅소

 

직접 몸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조형물도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 조형물은 다채로운 소리를 체험하는 작품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스물세 개의 목재 유닛을 선형 대열로 배치해 관람객이 이리저리 넘나들 수 있는 긴 터널형 작품이다. 각각의 유닛은 학생 한 명이 설계하고 제작한 개별 공간이지만 스물세 개가 하나의 대열로 이룰 땐 더 큰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관람객은 터널 속을 거닐면서 스물세 개 유닛의 신비로운 형태와 공간 내부로 스며드는 빛과 배경음악 사이의 연결을 느낄 수 있다. 휠체어 탄 난, 좁은 유닛 내부로 접근할 수 없어 밖으로 한 바퀴 빙 돌며 유닛의 구조를 확인했다.

바로 앞에는 ‘서울 드로잉 테이블’이 있다. ‘드로잉 테이블’은 예술적인 놀이로서의 체험을 넘어 그룹 드로잉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미래의 담론을 나누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서 창작의 과정이 장소를 통해 시작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드로잉 테이블’은 조선시대 도시 계획의 대상이 장소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원 내 작품 모두는 한양 도심이 생성되는 과정과 연결돼 있다.

▲ 열린송현공원에 조성된 조형물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페어 파빌리온’, ‘짓다’, ‘드로잉 테이블’

 

서울의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파빌리온들

 

열린송현공원에 아주 큰 세모 구조물인 ‘페어 파빌리온’이라는 작품이 있다. ‘페어 파빌리온’을 통해서 렌더링 이미지로 변환되는 상상 속 미래 서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도시의 과거와 미래의 관계를 결정짓는다는 작품이다. ‘페어 파빌리온’은 상상에 맞추어 물리적 도시를 유연하게 가공해 나가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음 작품은 파빌리온 ‘짓다’다. 커다란 원형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파빌리온 ‘짓다’는 한옥 이전의 집, 또는 의식 깊이 잠겨 있는 집의 원형에 대한 감각과 기억을 소환하는 공간이다.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해와 바람을 들이고, 거친 환경과 불안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삶을 감싸고 보호하는 안온한 공간이다.

열린송현공원은 한참을 있어도 심심할 틈이 없는 곳이다. 공원 곳곳에 다양한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작품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하고 체험하면서 지적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열린송현공원에서 역사의 뿌리와 정체성을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 감고당길을 대표하는 노부부 벽화

 

감고당길, 뽀뽀하는 노부부의 그림 눈길

 

▲ 열린송현공원 옆, 북촌과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감고 당길의 거리 악사. 핸드팬 소리가 감성을 돋게 한다.

열린송현공원과 연결된 감고당길로 발길을 이어간다. 감고당길은 북촌과 삼청동 길과도 연결되는 길이다. 감고당길은 인현왕후가 장희빈과 갈등으로 왕비에서 물러난 뒤 다시 왕비로 복위될 때까지 5년 동안 거처했던 ‘감고당’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명성황후도 여덟 살 때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후 왕비로 간택되어 책봉되기 전까지 감고당에 머물렀다. 감고당은 덕성여고가 설립되면서 현재의 여주 능현리로 일부 시설물이 옮겨졌고, 간판 역시 여주의 민유중(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의 묘막에 옮겨졌다. 현재의 건물은 1976년과 1995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감고당길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효성이 지극했던 영조가 인현왕후를 기리기 위해 ‘감고당(感古堂)’이란 편액을 하사한 후부터다.

감고당길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하다. 감고당길 담벼락엔 근사한 ‘노부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노인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뽀뽀하는 그림은 노년의 편안함을 보여준다. 노부부 벽화는 오랜 시간이 흘러 많이 훼손되었지만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돼 사진 찍는 명소가 됐다.

핸드팬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도 있다. 이름도 생소한 핸드팬은 가마솥 뚜껑 두 개를 붙인 것 같은 타악기 행(Hang) 드럼이다. 빵 한 조각 작은 동전 하나도 큰 힘이 된다는 거리의 악사는 묵묵히 핸드팬을 연주한다. 소리가 어찌나 곱던지 한동안 발길이 머물렀다.

백 년 전 역사가 드러난 공간에는 오늘이 머물다가 내일로 흘러간다. 시간의 고귀함은 인류를 지배하고 때론 발전하게 한다. 바람처럼 느닷없이 일렁였던 역사 여행.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아쉬운 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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