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들]국제교류음악회 무대에서 만난 두 해외 연주자, 와나미 다카요시와 황위시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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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들]국제교류음악회 무대에서 만난 두 해외 연주자, 와나미 다카요시와 황위시앙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10.19 13:00
  • 수정 2023-10-19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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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4일 인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뜻깊은 음악회가 열렸다.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국제교류음악회’다. 2011년 창단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지휘자 박기화)를 중심으로, 홍콩시각장애인오케스트라(HKBO, 지휘자 티모시 토), 이스라엘 출신 장애인 밴드 샬바밴드, 대만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황위시앙, 일본의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와나미 다카요시(피아노: 미네코 츠치야)가 무대에 올라 장애를 뛰어넘은 음악으로 하나된 무대를 연출했다. 시각장애 예술인 중심의 국제교류 음악회로 눈길을 모은 이날 음악회에 각각 바이올린과 피아노 솔로 무대를 선보인 두 연주자, 와나미 다카요시와 황위시앙을 만나보았다. 두 연주자는 바쁜 일정 탓으로 연주회를 마친 후 곧 출국했으나 기꺼이 서면 인터뷰를 응낙해 주었다. 다소 거친 인터뷰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준 두 연주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지만 가족들의 지지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한길로 정진해 일가를 이룬 두 해외 연주자의 이야기가 우리 장애 연주자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길 바란다.

일본 시각장애 바이올리니스트 아와미 다카요시(和波たかよし)

“인생에서 만나는 행복한 순간이 연주하는 데 힘이 되어 줄 겁니다”

78세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동년배 피아니스트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올랐다. 그의 첫 곡은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다. 드보르자크의 몇 안 되는 가곡 중 한 곡을 크라이슬러가 바이올린 버전으로 편곡한 곡. 이 곡을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국제교류음악회’무대의 첫 곡으로 고른 것은 모든 어머니들, 특히 이 무대에 오른 장애 예술인들의 어머니들에게 받치는 헌정곡이란 의미다. 올해 일흔여덟 살, 노바이올리니스트 아나미 다카요시(和波たかよし)에게도 어머니는 자신의 음악 인생의 가장 큰 공헌자라고 한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어요. 바이올린을 시작한 것은 네 살 때인데, 점자 악보도 함께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땐 점자 악보로 된 바이올린곡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제가 연주할 바이올린곡 모두를 점역해 주셨지요. 어머니의 악보 점역은 그 후 약 40년간 이어졌습니다. 정안인 연주자들과 기량을 겨루며 연주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곡의 레퍼토리를 늘리는 것이 필수였고, 만약 어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연주가로서의 삶은 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외에 또 한 여성. 그의 음악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국제교류음악회 무대에도 함께 오른 피아니스트 츠치야 미네코다. 츠치야 미네코는 46년간 바이올리니스트 와나미 다카시와 무대를 함께해 온 반주자인 동시에, 인생의 길을 함쎄 걸어온 평생의 반려자이다.

“미네코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음악적인 면에서나 인생적인 면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어 세월을 견디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제게 밀착해서 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저를 자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죠. 그리고 어떤 고민이라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녀의 자립심과 긍정적인 삶의 방식이 제 앞에 놓인 어떤 좌절도 물리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거죠.”

▲ 국제교류음악회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는 와나미 다카요시 바이올리니스트. 그의 옆에서는 항상 평생의 반려이자 음악적 동지인 피아니스트 츠치야 미네코가 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70여 년 전부터 시각장애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왔던 인생 역정을 이야기해 달라는 주문에 와나미 다카요시는 두 여성의 이야기로 답했다. 그리고 연주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아달라는 요청에 그는 그의 나이 스물넷에 영국 런던에서 있던 첫 리사이틀을 선뜻 첫손 꼽았다.

“연주회 다음 날 아침 현지 신문인 <더 데일리 텔레그라프>에서 첫 연주회에 대한 비평을 실었는데, 그 첫 문장이 그 후 제 음악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Takayoshi Wanami is one of the most talented young violinists of our time.(다카요시 와나미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젊은 바이올리스트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도, 일본인이라는 것도 언급하지 않고 순수하게 한 사람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해 준 것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사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장애 여부를 떠나서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노바이올리니스트 와나미 다카요시는 이번 인천 무대를 장애, 비장애를 떠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삶의 힘, 혹은 희망을 주는 무대”였다고 평가하며, 이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혜광블라인드오케스트라 단원은 물론 모든 한국 장애 음악인들에게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행복한 경험을 마음 속에 쌓아 마음을 다스리세요.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며 윤택함과 아름다움을 맛보는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대만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황위시앙(黃裕翔)

“아름다운 음악을 따라 함께 즐겁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피아노에 앉아 온 신경을 건반에 집중한다. 그에게 피아노는 곧 그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가 출연한 영화 <터치 오브 라이트(逆光飛翔)>에서 황위시앙(黃裕翔)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만큼은 행복한 얼굴을 보여 준다.

“영화 속의 모습이 현실의 저와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적 장치가 들어가긴 했지만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는 영화에요. 그래서 제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지만요.”

대만의 시각장애인 피아니시트 황위시앙. 그는 2013년 개봉한 영화 <터치 오브 라이트(逆光飛翔)>(감독 장영치)에 출연한 ‘영화배우’이기도 하다(황위시앙은 이 영화로 2013년 밀라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영치(張榮吉) 감독에게 황위시앙의 첫 인상은 “피아노를 치면서 짓던 밝은 미소”였던 것처럼,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와 함께하는 국제교류음악회’의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는 그의 표정은 행복한 황홀경 자체였다.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이번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연주를 수락했습니다. 꽤 긴 시간 연주 생활을 해왔지만 이 공연처럼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그것도 여러 국가 음악인들과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 공연은 비록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모두 같은 마음과 열정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이 가장 행복하다는 피아니시트 황위시앙의 국제교류음악회 연주 모습.

황위시앙은 영화 <터치 오브 라이트> 이후(영화는 국제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초청 공연을 다녔고, 국내 개봉 당시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시사회를 겸한 연주회도 가졌다. 그럼에도 그 어떤 무대보다도 이번 무대가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많은 시각장애 음악인들이 그러하듯 황위시앙 역시 절대음감을 지닌 음악인이다. 선천성 망막 시토크롬 질환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아기 위시앙이 절대음감을 지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두 살 반 무렵 가족 모임을 다녀온 아기 위시앙이 피아노에 앉아 동요를 치고 있었던 것. 그 동요는 가족모임에서 위시앙의 사촌이 연주했던 곡이다. 두 살 반 아기가 한 번 들은 노래를 그대로 기억해내 피아노를 친 것.

“어머니와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이 제게는 큰 힘입니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연습이 어려워 피아노 연주를 그만두고 싶어 게을리할 때도 제 옆을 지켜준 가족들덕분이지요.”

그는 가족들의 든든한 지지를 받으며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났고, 그렇게 “한 곡 한 곡을 건반 위에서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느낀 성취감은 피아노 연주와 음악 창작의 길을 뚜벅뚜벅 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황위시앙은 피아노 연주 외에도 여러 영화의 OST의 작곡 등 활발한 음악 창작도 하고 있다. 그가 작곡한 ‘고속도로에서의 작은 여행’이 2016년 제27회 골든 멜로디 시상식에서 연주 부문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국제교류회 무대에서 연주한 ‘재즈 음악(Jazz to Music)’과 ‘피아노 솔로를 위한 매혹적인 선율(Enchanted Melody for Piano Solo)’ 또한 그가 편곡한 작품이다.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한국의 장애 음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었다. 여기에 그는 이런 답을 적어 보냈다.

“나는 여기에서 계속 음악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있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아름다운 음악이 세계 곳곳에 퍼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즐겁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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