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시각장애인 위한 온라인 쇼핑 도우미 앱 ‘픽포미’ 개발한 ‘시(視)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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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시각장애인 위한 온라인 쇼핑 도우미 앱 ‘픽포미’ 개발한 ‘시(視)공간’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8.31 10:20
  • 수정 2023-08-31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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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8일 시각장애인을 위한 쇼핑 도우미 앱 ‘픽포미(Pick for Me)’가 출시됐다. 그런데 앱을 개발, 출시한 업체가 눈길을 끌었다. 구성원 전원이 서울대학교 재학생인 청년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이다. 앱을 출시하고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중심으로 시연회를 갖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보면서 그들이 궁금해졌다. 이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돈도 안 되는 장애인 관련 시장에 뛰어들었을까. 새로 개통된 지하철 신림선을 타고 서울대벤처타운에 있는 그들을 만나러 갔다. 창업 멤버 7인 중 6인과 함께 앱 ‘픽포미’와 그들이 만든 스타트업 ‘시(視)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간 남짓 나눴다. 그리고 3주 가까이 카카오톡으로 소통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건강했다. 그들은 ‘돈’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편하게 볼 수 있는 세상’ 위해 뭉친 7인의 청년들

▲ 픽포미를 개발한 청년 스타트업 시공간의 파운더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유빈, 김다영, 김준영, 오주상, 장지윤, 엄지우
 

2023년 8월 23일 오후 2시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자리한 강북시각장애인쉼터. 절기상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는다는 처서지만 여전히 무더운 오후, 몇몇 시각장애인들이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와우…내가 사고 싶은 옷을 골라줬어.” “어…근데 왜 나는 로그인이 잘 안 되지?” 저마다 감탄을 하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면서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은 쇼핑이다. 처음 써 본 쇼핑 도우미 앱이 낯설지만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에 대해 쇼핑 의뢰서를 작성하면, 앱이 알아서 척척 찾아서 추천을 해주니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처음 써 보는 앱이라 앱을 다운로드하고, 로그인을 하기까지가 순탄치만은 않다. 그런 이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앳된 얼굴의 대학생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다.

 

▲ 픽포미 시연회 장면. 시공간은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의 시연회를 통해 앱을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다.

 

픽포미, 온라인 쇼핑에 자유를 더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온라인 쇼핑 도우미 앱 ‘픽포미’의 두 번째 시연회 장면이다. 8월 8일 픽포미가 처음 세상에 공식적으로 선을 보인 날,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한시복)에서 가진 첫 시연회에 이은 두 번째 시연회다. 한시복의 시연회가 세 명의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한 쇼케이스였다면 이날 강북시각장애인쉼터에서의 시연회는 쉼터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 10명을 대상으로 한 콘서트라고 할 수 있다.

픽포미가 어떤 앱인지 첫날 한시복의 시연회 진행을 맡았던 임동준 씨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임동준 씨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으로 한시복의 정보화 교육 강사이며, 픽포미 앱 개발 과정에서 접근성 관련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픽포미는 시각장애인들의 온라인 쇼핑의 폭을 대폭 넓혀주는 앱입니다. 사실 시각장애인이 온라인 쇼핑을 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에요. 모든 쇼핑몰이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상품이나 상세페이지가 주로 사진으로 돼 있는데, 대체텍스트가 제공되지 않아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당연히 상품 선택은 물론 비교 구매를 할 수 없죠. 게다가 어찌어찌 상품을 선택해서 구매를 결정했다고 해도 결제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결제를 위한 본인 인증 과정에서 보안 키패드 등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요. 그런데 픽포미는 이런 장벽을 부숴주는 역할을 하죠.”

▲ 픽포미 첫화면

임동준 강사의 말을 가이드 삼아 픽포미를 들여다보자. 픽포미는 ‘픽포미 추천’ ‘픽포미 분석’ ‘AI 포미’ 세 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다.

‘픽포미 추천’은 원하는 물건의 종류와 조건을 입력하면 가장 적합한 상품 세 가지를 추천해 주는 추천 알고리즘이다. 예를 들어 “어깨끈이 달린 오프숄더 블라우스를 사고 싶은데, 색은 상관없고 반팔이나 민소매가 좋겠어요.”라고 의뢰서를 작성하고 원하는 가격대까지 정하면 픽포미 매니저가 최적의 상품 3개를 골라 두 시간 이내로 채팅을 통해 결과를 보내준다.

‘픽포미 분석’은 접근성이 좋지 않은 쇼핑몰의 상세페이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기능이다. 대체텍스트가 없어 불편했던 쇼핑몰 페이지나 중고거래 사이트 등의 분석을, 궁금한 점, 페이지 링크와 함께 의뢰하면 픽포미 매니저가 두 시간 이내에 채팅을 통해 결과 리포트를 전달한다. 리포트에는 상품 디자인, 상세페이지 정보, 리뷰가 기본으로 포함되고, 중고상품의 경우에는 사진으로 보이는 상품 상태와 하자 여부까지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AI 포미’는 구매자가 원하는 상품을 자동으로 추천하고 분석하는 AI다. AI 포미 탭을 누르면 포미와의 채팅방으로 이동할 수 있고, 채팅방에서 상품 추천이나 원하는 제품의 링크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시연회에 참여한 시각장애인들의 후기는 대략 다음 몇 가지로 집약됐다. 좋은 점으로는 무엇보다 그동안 궁금했던 제품의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 앱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나 레이아웃 등의 요소가 간단하고 심플해 시각장애인의 사용 편의성이 높다는 점, AI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람(매니저)이 직접 제공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반면 추천받은 제품을 바로 구입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 아쉬웠다는 점과 론칭 초기여서인지 로그인 과정에서 살짝 버벅대는 느낌이 있어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로그인 문제는 시연회를 거치면서 확인된 문제점을 해결해 점차 안정화되고 있다는 게 개발자인 시공간의 전언이고, 바로 구매는 현재 준비 중인 기능이다. 실제로 픽포미 앱 초기 화면에도 ‘픽포미 구매’가 마련돼 있어, 추천받은 제품을 바로 구매링크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기능이 곧 선보일 예정이다.

 

인액터스에서 만난 7인

장애 없는 세상 만들기 뜻 모아

픽포미를 개발한 이들은 앞서 시연회 장면에서 앱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옆에서 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던 앳된 대학생들이다. 올 5월에 정식으로 창업한 청년 스타트업 ‘시(視)공간’의 구성원들이다.

오주상 대표를 비롯해 김다영, 김준영, 송보영, 엄지우, 장지윤, 정유빈. 이들은 모두 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이다. 이들의 출발점은 국제적인 소셜 벤처 동아리인 인액터스다. 인액터스는 전 세계 36개 국 1700여 대학과 세계 유수 기업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갖춘 실천형 비즈니스 리더를 양성하는 글로벌 대학연합 단체다. 그리고 시공간 7명의 파운더(founder, 창시자, 설립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여기서는 시공간을 함께 창업했다는 의미에서 7명 모두를 파운더라고 부르겠다.)들은 서울대 인액터스에서 만나 ‘장애가 장벽이 되지 않는 세상 만들기’에 뜻을 같이한 청년들이다.

그들은 장애 중에서도 특히 ‘시각’에 주목했다. 세상은 점점 인터넷 등 정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정작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향유는 비장애인에 비해 뒤처져 그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데, 특히 대한민국의 정보 접근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낙후돼 있다는 데 주목한 그들은 디지털 정보 접근성을 제고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디지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기로 한 것.

서울대 인액터스 내의 프로젝트팀으로 시작한 시공간이 정식으로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2022년 서울대학교 벤처경영기업가센터에서 열린 ‘2022 스타트업창업경진대회’에 참가를 결정하면서부터였다. 프로젝트팀으로서 개발한 ‘시각장애인 자료 묘사 서비스’가 나름 수익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시공간팀이 창업을 모색하던 가운데 대회가 열렸고, 시공간은 이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어 2023년 2월에는 국립한국복지대학교와 국립한경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회 전국 장애・비장애 대학생 창업경진대회’에서 시공간은 ‘시각장애인 자료 묘사 서비스’ 아이템으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곧이어 ‘2023 예비창업패키지 소셜벤처트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잇단 창업경진대회 수상과 예비창업패키지 선정으로 나름 종잣돈을 마련한 시공간은 마침내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정식 기업으로 출발했다. 올 5월의 일이다.

 

9월 시각자료 묘사서비스 출시 예정

수익 모델은 B2B 서비스인 '글공방'

첫 아이템은 여러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시각장애인 자료 묘사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앱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사진에 대한 설명을 의뢰하면 AI를 이용해 이미지를 분석, 해설을 텍스트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지 범위가 워낙 다양하고 폭넓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선은 사진의 범위를 일단 쇼핑과 관련된 것으로 한정해 보기로 했다.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 바로 ‘픽포미’ 앱이었던 것. 시공간의 첫 제품의 탄생이다.

▲ 9월 출시 예정인 시각자료 묘사 서비스 앱인 봄자국의 실행화면.

‘픽포미’가 온라인 쇼핑 도우미 앱으로 시공간의 뿌리 아이템인 시각자료 묘사 서비스의 파생제품이라면 올 가을에는 창업의 뿌리인 시각자료 묘사 서비스가 론칭된다.

“9월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자료 묘사 서비스를 고도화시킨 앱 ‘봄자국’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창업 초기에는 AI 기능에 한계가 있고 사람(해설자) 문제도 고민이 돼서 잠시 내려놓았었습니다. 근데 몇 달 사이에 AI 기술도 진전했고, 인적 서비스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돼 개발을 재개해서 지금 2차 검증 중입니다.” 오주상 대표의 설명이다.

앱의 이름 ‘봄자국’은 본다의 ‘봄’과 흔적이란 의미의 ‘자국’의 합성어로 ‘우리가 보는 자국을 남긴다’는 의미다. 이용자가 알고 싶은 대상의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리면 AI와 사람 해설자들이 사진을 해설해서 문자 또는 음성으로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다, 사람 해설자는 앱을 통해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모집한다. 비장애인들이 앱을 설치하고 해설자로 활동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 이래 가지고 뭐 먹고 살지?” 하는 의문이 든다. 앞서 소개한 두 앱 모두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기 때문. 그래서 물었다. “수익 모델은 없냐? 사회적 가치만 좇는다고 기업이 존속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돌아온 답은 B2B 서비스인 ‘대체텍스트 서비스’(서비스명 글공방)였다. 대체텍스트란 디지털 공간 속 이미지나 버튼을 시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실행하는 짧은 글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접근성 보장이 강하게 규제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고요. 그러니 향후에는 인터넷상의 웹페이지들은 대부분 대체텍스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겁니다. 시공간의 수익시장은 바로 그곳입니다. 웹사이트 운영사들에게 대체텍스트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디지털 정보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현재는 모아스토리와 에이블라인드,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에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 시공간의 회의시간.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는 이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정기회의를 통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업무를 조율한다.

 

그리고 그들의 한마디…

시공간 6인(인터뷰가 있던 날, 송보영은 선약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과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조용하지만 열정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들의 꿈과 일을 이야기했다. 이제 곧 개학,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이들에게 왜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들의 답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작년 10월 전역을 하고 난 뒤 열정을 쏟을 곳을 찾다가 시공간을 알게 됐습니다. 단순히 창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망설이지 않고 합류했습니다.”(오주상 대표)

“경제에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다 보니 평소에도 뭔가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목표 의식이 있었습니다. 제 목표와 시공간의 미션이 딱 맞아떨어진 거죠.”(정유빈_프로덕트매니저)

“소셜 창업이야말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사회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서 시공간 창업을 제안했습니다.”(김다영_봄자국팀장)

“보다 지속 가능하게 비즈니스를 만들면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인액터스에서 장애 관련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서 합류했습니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엄지우_봄자국팀)

“사실 저는 정치외교를 전공하는 터라 사회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문제를 창업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겐 새로운 도전이라 매력적이었습니다.”(김준영_픽포미팀장)

“사회문제를 보고 그것을 문제라고 정의하는 행위를 넘어서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고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가슴이 뛰었어요. 가슴이 뛰는 대로 이끌린 거죠.”(장지윤_대체텍스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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