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예산편성, 구멍가게 수준만도 못 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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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부 예산편성, 구멍가게 수준만도 못 해서야
  • 편집부
  • 승인 2023.07.20 09:00
  • 수정 2023-07-18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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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부 각 부처가 내년도 예산안을 두 차례나 제출해야 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최근 각 정부 부처에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수정해 다시 제출하라고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주문한 데 따른 조처라고 한다. 이 때문에 각 부처는 단 사흘 동안 추가로 예산 삭감과 폐지 등 수정안을 내야 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8월 말까지 끝마쳐야 하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짜게 된 것이다. 예산 요구안을 단 3일 만에 재검토해 수정안을 올리라는 것도 무리이지만, 정부 예산 씀씀이는 고려치 않고 무턱대고 예산 규모를 줄이라는 대통령의 즉흥적인 지시와 발상에 또 한 번 놀랄 뿐이다.

기재부는 예산 편성 일정에 따라 지난 3월 내년도 예산편성지침을 각 부처에 전달했다. 이에 각 부처는 지침에 맞춰 5월 31일까지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기재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며 사실상 예산 축소를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 말에 기재부는 6월 30일 각 부처 기획조정실장들을 소집해 7월 3일까지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각 부처에 전면적으로 도려낼 예산 사업 찾기에 주력토록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이틀 만에 기재부가 재제출 요구에 나선 것을 보면, 대통령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내년도 나라 살림이 심히 걱정된다.

윤석열 정부의 예산안 재구조화와 병행되는 사업 구조조정 핵심은 특히 국고보조금 사업에 대한 삭감과 폐지일 것으로 언론 보도는 예상한다. 가뜩이나 윤 대통령이 벼르고 있던 민간단체 지원 예산과 현금 지원 방식의 복지예산 등이 대폭 도려내지지 않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표적 대부분이 정부의 눈엣가시인 진보단체 지원예산에 서민과 약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예산들이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복지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례로 봐서도 복지부 또한 미덥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작 칼자루를 쥐고 있는 부처가 힘센 기재부 아닌가. 각 부처가 자칫 시간에 쫓겨 꼭 필요한 예산까지 삭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예산 재구조화는 지출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건전재정’이니 ‘지출 구조조정’이란 어려운 용어를 쓰고 있지만 쉽게 말하면 정부가 살림살이에서 나랏돈을 풀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로선 힘없는 서민과 약자들 몫을 끊는 게 뒤탈 없고 손쉽다. 국가재정 운용은,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리고 수입이 줄면 지출도 줄이는 가정 살림살이와 다르다. 국가재정은 내수 부진으로 세수가 줄면 오히려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경기가 과열되면 지출을 줄여 경기를 조절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에 화마와 홍수 등 재난으로 민생이 어려워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할 판에 지출 구조조정은 능사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도 ‘약자 복지’라더니, 취약계층 예산을 잘라내 ‘비정한 복지’라는 원성을 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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