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주년 맞는 함께하는장애인 교원노동조합 김헌용 위원장...“장교조, 소수성과 다양성 공존하는 교육 만드는 마중물 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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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4주년 맞는 함께하는장애인 교원노동조합 김헌용 위원장...“장교조, 소수성과 다양성 공존하는 교육 만드는 마중물 되고자”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7.20 17:31
  • 수정 2023-07-20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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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 3년의 대장정 끝에 교육부와 단체협약서 조인식을 가졌다. 이 단체협약은 세계 최초로 장애인 교원이 주체가 되어 창립한 교원노동조합이 세계 최초로 정부와 체결한 단체협약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은 그뿐만 아니라 올해로 창립 4주년을 맞이해 7월 22일 창립 4주년 잔치를 열기도 한다. 네 돌을 맞는 생일잔치 자리에서 이들은 ‘우린 누구, 여긴 어디-장애인 교원의 정체성과 장교조가 나아갈 길을 찾다’라는 주제의 토론회도 열 예정이다. 스스로 전환기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보다. 노조위원장 김헌용 교사(서울 신명중학교)를 만나 전환기에 선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의 설립과 책무, 그리고 향후 방향성에 대해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헌용 노조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장애인 교원 권익보장 및

평등한 교육환경 조성 목표로 창립

17개 시도에 조합원 170여명 활동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어떤 단체인가.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은 말 그대로 교육 현장에 있는 장애인 교원들의 노동조합이다. 장애인 교원들의 권익보장과 차별적인 교육 현장을 개선해 공정하고 평등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9년 7월 6일 창립했으니 만 4년 됐다. 현재 조합원 수는 170여 명이고, 전국 17개 시도에 모두 조합원이 있으며, 서울과 전남에는 지부를 두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장애인 교원은 약 5천 명이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교원의 1% 정도에 불과한 숫자다. 그리고 이들은 비장애인 교원과 달리 한 학교 한 지역에 다수가 모여 있지 않고 한 학교에 한두 명씩 흩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수 역시 절대 소수다.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노조 설립 과정을 간단히 이야기해 달라.

“교육 현장에 장애인 교원이 이전에 비해 늘어나게 된 것은 2005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이 개정됨에 따라 2007년도부터 교원임용시험에서 장애인 교원 구분모집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교육 현장에 중증장애인 교사들이 많이 배출됐는데, 세월이 흐르고 장애인 교원의 수가 늘어났음에도 장애인 교원을 위한 편의지원 등 제도는 미흡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고 당시 친목 및 연수, 권익활동 등의 활동을 하고 있던 장애유형별 교사모임, 특히 한국시각장애교사회와 청각장애교사 모임이 중심이 되어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 정당한 권리 확보를 위한 힘을 모아 보자’란 여론이 조성되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2019년 창립 3년 전인 2016년에 이미 1차로 시각장애인 교사 중심으로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 보류가 된 적이 있었다. 사회 분위기도 노조에 호의적이지 않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노조 그거 만들어서 뭐 하는데…’ 혹은 ‘과연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어 내부 동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3년 정도 시간이 흐르자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 달라졌다. 노조 설립이 장려됐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다시 노조 결성 논의가 시작됐고, 마침내 창립대회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2016년도의 움직임이 밑거름이 됐다. 설립 추진은 중단됐지만 우리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해 당시 광화문1번지(후에 청와대 청원 게시판으로 발전)에 올리기도 하고, 2017년도에는 서울시 같은 경우는 교육감과 면담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장교조 창립에 밑거름이 된 거다.”

 

사실 교단은 보수적이라는 게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 보수적인 사회에 속해 있는 교사로서 노조활동을 한다는 것에 부담감 같은 것은 없었나?

“2010년도에 초임 발령을 받고 현장에 와 보니 편의지원이 거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각장애인교사회(2009년 창립)를 찾았는데, 회원이 겨우 4명이었다. 그때부터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끼리라도 힘을 모아 보자고 여기저기 분주히 움직였다. 그래서 겨우 모임의 모습을 갖추고 2011년도에 처음으로 시각장애인교사회 총회도 열었다. 우선은 대체자료 형태의 교과서와 보조공학기기 지원 같은 기초적인 편의지원이 절실했다. 그런 필요성 때문에 시작한 활동이 노조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니 딱히 부담감은 없었다. 물론 집에서는 반대가 심하긴 했지만….”

 

15개 장애유형 아우른 ‘함께하는’교원노조

장애특성 달라 내부 소통 어려움 겪기도

 

노조가 설립된 뒤 내부적으로 어려운 일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무엇보다 큰 어려움은 장애유형이 각기 다른 조합원들을 내부적으로 통합해내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통합됐다고 말하기에는 약간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장애유형에 따른 장애 특성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 조합 설립에서도 가장 큰 고민이었다. 시각장애인 교사만의 조합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장애유형을 망라해서 단일 조합으로 할 것인가를 갖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 고민과 결론이 ‘함께하는’이란 이름에 들어 있다.”

 

‘함께하는’에 담겨 있는 의미가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함께하는’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맞다. ‘장애-비장애 함께’라는 의미도 있지만 시각장애든, 청각장애든, 지체장애든 장애유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 함께’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렇게 ‘함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현재의 모든 장애인 교원을 통합하다 보니 이제는 모든 유형의 장애교사들이 망라됐고, 2023년부터는 휠체어 장애인 중에 임원이 나오기도 했다.”

 

장애유형이 다르면 장애-비장애만큼의 공감과 경험의 간격이 있는 것 아닌가. 서로 다른 장애특성 때문에 정책 결정이나 의견 소통에 어려움은 없나?

“없을 리가 있겠나?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우리끼리 ‘서울역 롯데리아 햄버거 사건’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장애유형이 달라서 생긴 대표적인 웃픈 해프닝이다. 2021년 9월이었다. 교육부와 단체협약 1차 실무교섭을 앞두고 교섭위원을 맡은 선생님들이 서울역에서 모여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나고 남은 이야기가 있어서 햄버거라도 먹으며 이야기하자고 롯데리아로 갔다. 한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열심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청각장애 선생님이 없는 거다. 화장실에 갔나 하고 기다려도 안 오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이 분이 어디를 갔나, 혹시 사고라도 났나 싶어 당연히 모두 뒤집어졌다. 시각장애인 네 명만 남았으니 집에 가는 것도 큰일이었다. 모두 집에 못 갈 뻔했다. 그렇게 연락이 두절된 지 이틀 만에 겨우 연락이 닿았는데, 그 선생님 왈, ‘시각장애 선생님들끼리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뭔가 싶더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하고 화도 났다. 그래서 집에 와버렸다.’는 것이었다. 회의 때는 통역사가 있었는데, 회의가 끝나 통역사는 가버리고 롯데리아에서는 그야말로 청각장애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부족의 대표적인 예였다. 이 일이 있은 후로는 우리 조합 내 모든 공식 행사에는 100% 문자통역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내부적인 소통도 쉽지 않았다. 서로 다른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들 간의 통일된 소통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 가지 않은 길이라 매우 힘들었다.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특히 창립하고 1년 동안은 내부 의사소통 프로세스를 정리하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쓴 거 같다. 그래도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시너지를 내는 단계가 됐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장애인 교사는 각 학교별로 많아야 두세 명. 보통 한 명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조합원 확보가 쉽지 않을 듯하다. 어떤 이유가 조합원 확보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나?

“물론 조합원 확보가 쉽지 않다. 대부분 알음알음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장애를 드러내지 않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1차적으로 장애라는 특성 자체가 본인의 정체성 혼란이다. 본인 스스로가, 아예 중증장애인 경우에는 조금 덜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장애인의 경우 자신의 장애를 드러냈을 때 받을 수 있는 지원과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얻게 되는 낙인 효과나 사회적으로 감내해야 되는 시선 혹은 인식의 문제, 이런 것들을 다 비교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사실 (자신의 장애를) 안 드러내는 게 낫다고 결정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통계적으로 보면 장애인 교원 중 경증이 86% 정도다. 

이런 개인적인 인식은 나아가 사회의 인식과 맞물려 있다. 교단 내에서의 인식이 장애 인식에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체성의 문제가 개인의 관점이라면 교육계 내의 인식의 문제는 사회적 관점이다.

그리고 장애인 교원에 대한 지원 부족이란 정책적 관점도 있다. 용기를 내 자신이 장애인임을 밝혔는데, 그에 상응하는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즉 예산이나 교실을 따로 배치해 준다든가 시설을 개선해 준다든가 하는 지원이 없다면 굳이 장애인임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거다.”

▲ 지난 6월 2일 교육부와의 단체협약 체결 후 교육부 이주호 장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헌용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 위원장. 단체협약서는 점자와 묵자 버전으로 각각 2부씩 제작되었고, 양 측은 각각에 사인을 했다.

 

장애를 드러냄으로써 변화 이끈다

단체교섭 과정이 곧 장애인식 과정

 

그 어려움을 타개할 방법은 없나.

“우리는 역으로 생각을 했다. 장애인 교원 개인에게 정체성을 드러내라고 요구하기 전에 장교조가 교육부 등과의 교섭을 통해 정책과 제도를 바꿔 나가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 나가면 조합 가입을 망설이는 선생님들도 기꺼이 자신이 장애인임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을 거다.

가끔 노조 가입을 권유할 때 ‘왜 장애인들끼리만 하냐, 통합이 중요한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나(우리)는 생각이 다르다. 우리는 ‘장애인 교원들의 노동조합’이란 선명성을 주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개선을 요구하고 그 열매를 따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란 선명성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큰 발걸음이 교육부와의 단체협약 체결인 듯하다. 2020년 8월 첫 교섭 시작을 시작하고 지난 6월 2일 단체협약서에 양측이 조인을 했으니 거의 3년 만의 일이다.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뭔가.

“시작 단계에서는 코로나19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2019년 9월 교육부에 단체교섭 요구를 하고 2020년 2월 교섭 요구안을 제출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조사도 회의도 미뤄졌다. 그러다 8월에 1차 본교섭, 9월에 첫 실무교섭을 시작했다.

교육부 실무자들의 장애 인식 부족도 교섭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우리가 요구한 것들이 장애인들에게 왜 고충이 되는지, 왜 이러저러한 편의지원이 필요한지를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교섭회의가 아니라 장애인식개선 교육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부 담당자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과정이기도 했다.

작년 8월에는 단체협약 이행사항 점검 조항에 대한 교육부와의 입장차이가 조정이 안 돼 단체협약 결렬 선언도 했었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행사항 점검 조항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요구라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6월 2일 조인식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우선 단체협약서가 점자 버전과 묵자 버전으로 각각 제작되어 이주호 장관과 내가 각각의 버전에 서명했다. 아마 이런 단체협약서는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행사장에는 청각장애인 교섭위원을 위해 수어통역사와 문자통역사가 배치되었고, 40인치짜리 모니터도 설치했다. 그리고 교육부 참석자 모두 점자명함을 갖고 왔는데, 이 행사를 위해 미리 제작했다고 한다. 이 같은 행사장 모습은 사실 지난 3년의 교섭 기간 동안 장애 인식 개선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모든 분야의 모든 행사에서 이런 모습이 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22년 9월 중앙동위원회에서 열린 교육부와의 조정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왼쪽부터 김헌용 위원장, 배성규 수석 부위원장, 편도환 정책실장.

 

정책-권익-조합원을 키워드로 노조 확대 목표

소수 조직, 연대와 융합으로 다양성 확보할 터

 

작년 12월 장교조 3대 위원장에 선출됐다. 2대에 이은 연임이다. 창립부터 지금까지 장교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는데, 장교조 위원장으로서 장교조의 가장 큰 책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 조합의 책무는 당연히 조합원의 권익 향상이다. 노조위원장으로서 나의 제1 책무는 노조를 존속시키고 확대하는 거다. 이번 3대 노조위원장으로서 출사표를 던지며 밝힌 정책, 권익, 조합원을 키워드로 한 3대 공약이 바로 이를 위한 것이다.

정책은 정책적 기반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 끌어왔던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 한 성과이고, 앞으로 법률 재개정 운동과 정책 연구도 계속할 예정이다. 아울러 정책 모델도 개발, 제안함으로써 정책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시행되도록 하는 일에도 힘을 다하려고 한다.

권익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교사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장애인 교사도 교사다. 교사의 기본적인 책무는 수업이다. 그런데 통역 서비스나 지원인력 같은 편의가 지원되지 않으면 교사 제1의 책무인 수업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정당한 편의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개개인의 고충을 파악해 그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이끌어 내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합의 힘은 곧 조합원이다. 처음에는 ‘조합원 400명’을 목표로 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조합원과 후원회원(교사가 아닌 이로 장교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가입할 수 있다.)을 합해 400명 이상을 달성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임기가 끝나는 내년 말까지 반드시 조합원+후원회원 400명을 달성해 보이겠다.”

 

마지막으로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가 걸어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우리 노조는 소수 노조다. 마이너리티가 강해지려면 다양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소수 단체와 연대하고 융합하면 인권 감수성과 장애인 감수성은 올라가고 장벽은 낮아질 거라고 믿는다. 사실 학교 현장은 소수성이 특히 인정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더더욱 소수들이 내는 다양한 목소리가 중요하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 다양성이 스며들게 해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는 소수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교육을 만드는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

긴 인터뷰 끝에 시간을 확인한 김헌용 교사는 교육부와 나이스 관련 회의가 있다고 했다. 최근 개편된 나이스는 오류가 많다는 지적과 함께 장애인 교사들의 접근성에서 큰 문제를 드러내 논란이 되고 있다. 나이스 개편 과정에 꾸준히 관여해 왔던 장교조는, 이번 사태를 예측해 개통을 미뤄 달라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엎질러진 물, 이 물을 어떻게 잘 수습하느냐가 남은 과제다. 이날 교육부 회의는 그 과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라고 했다. 김 교사는 서둘러 교실을 나섰다. 밖에는 장맛비가 장대처럼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그치면 쨍한 햇살이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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