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_친절한 국가(國家) 씨가 될 순 없습니까?] 복지사각지대 해소, ‘복지신청주의’ 개선 ‘적극행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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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_친절한 국가(國家) 씨가 될 순 없습니까?] 복지사각지대 해소, ‘복지신청주의’ 개선 ‘적극행정’ 필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3.07.07 09:00
  • 수정 2023-07-06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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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로 세상을 등지는 기사는 잊힐 만하면 한 번씩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수원 세 모녀 사건’, ‘송파 세 모녀 사건’ 등은 한국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를 표현하는 단어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위 사례처럼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사회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항상 뒤따라 오는 것은 바로 ‘복지 신청주의’ 시스템이다. 한해 복지 예산이 200조가 넘는 복지 대국임에도 여전히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나라, 친절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복지 신청주의에 대해 들여다 보자.

기초수급 신청, 서류만 5가지…

대부분 직접 방문해 발급받아야

신청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신청 자체를 포기 사례 적잖아

 

A 씨(63세)는 최근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진행하려 했지만 포기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고 하소연했다. 별다른 소득 없이 쪽방촌에 거주하는 A 씨는 최근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졌고, 따로 사는 자녀들도 형편이 넉넉지 못해 병원비(의료 급여)라도 지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고 행정복지센터에 들렀다. 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위해 A 씨에게 요청한 서류는 총 5가지. 보통 기초생활수급 신청 서류가 4가지이지만, A 씨는 65세 미만이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사의 소견서도 추가로 필요했다. A 씨가 준비해야 할 서류는 △가족관계증명서(불충분 시 제적등본) △금융정보제공 동의서(자녀 등 부양의무자 포함) △사회보장급여제공 신청서 △소득 및 재산 확인 서류 △임대차계약서 등 임대차계약 관계 증빙서류와 65세 미만이 신청할 때 필요한 △의사 소견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중 가족관계증명서와 사회보장급여제공 신청서는 방문했던 행정복지센터에서 뗄 수 있었지만, 이외의 서류들은 직접 서명을 받기 위해 자녀를 만나거나(금융정보제공 동의서), 은행을 방문(소득 및 재산 확인 서류)해야 했다. 또한, 의사의 소견서를 받기 위해 병원도 들려야 했다. 무엇보다 임대차계약과 관계한 증빙서류를 위해 부동산과 집주인과도 연락을 취해 설명하는 일은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고 A 씨는 회상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든 것은 은행과 병원 등을 들려서 서류를 제출했지만, 한 번에 끝나는 것은 없었다. 더 확인할 것이 있다며, 추가 서류를 요청해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A 씨는 또 한 번 은행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방문을 미루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은 복지서비스 중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로 꼽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이처럼 신청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2021년 10월부터 12월까지 6049개 가구를 대상으로 방문 면접 조사를 시행한 ‘2021년 사회서비스 수요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일 기준 1년간 사회서비스 중 하나라도 필요했다는 가구 비율은 58.4%지만, 실제 서비스 이용 가구는 33.1%뿐이었다.

다른 복지서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만 18세 이상 중증장애인 중 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인 이들에게 지급하는 ‘장애인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 역시 △소득‧재산신고서 △본인 명의 계좌 통장 사본 △주택정보제공 동의서 등 5가지가 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만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 역시 △사회복지서비스 및 급여 제공 신청서 △소득‧재산신고서 △금융정보제공 동의서 △통장 사본 등을 본인이 직접 작성 또는 발급받아 제출해야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청자가 중증발달‧지적장애인의 경우 스스로 저 서류들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힘들 뿐만 아니라 고령의 노인 역시 조력자 없이 홀로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며, 사회복지서비스는 국민의 권리임에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신청조차 어렵다는 점에 대해 정부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위소득-소득인정액-차상위계층

어려운 행정용어에 두려움부터 생겨”

 

장애인인 B 씨는 최근 자신과 같은 장애인인 이웃이 구청에서 해주는 집수리 서비스를 받고, 오래된 변기를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집도 오래돼서 여기저기 낡은 상태라 장애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리에 구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구청 직원은 B 씨에게 중위소득 50% 이하와 60% 이하의 차차상위계층만 해당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중위소득이란 단어도 처음 들었을뿐더러, 차상위는 알고 있었지만 차차상위는 무엇인지 몰랐던 B 씨는 구청 직원의 설명을 들었지만,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복지서비스 신청 단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 철자의 복잡한 만큼 많이 차지하는 것은 ‘용어의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복지서비스 신청대상에 쓰이는 ‘중위소득’, ‘소득인정액’, ‘차상위계층’ 등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단어와는 많이 차이가 있다.

실제로 본지로 연락 오는 독자 중에는 신문에 실린 기사 중 ‘중위소득 OO%’ 기준이 뭔지에 관해 묻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월급이 얼마인지를 말하는 것인지부터 월급을 기준으로 한다면 세전을 뜻하는지, 세후를 뜻하는 것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자신이 복지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부터가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얘기한다.

전문가들은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인이거나 학습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장애인, 저소득자 등이다. 이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하면서 사용되는 용어는 온통 한자를 기본으로 하는 행정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부터 ‘배려’가 배제된 것”이라며, “꼭 서비스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자녀와 주변 이웃들에게도 이 용어들은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세대에 한자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국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복지서비스’의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유일 발달장애인 자료 삽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윤 삽화가는 “모든 관공서와 시설에서 만들어지는 문서가 경증의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진다면 이는 곧 장애와 비장애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해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일례로 우리가 요즘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 시설’이지 않냐. 장애인과 노인을 위해 경사로 등을 추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들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다면 모든 사람이 편리한 것처럼 문서와 자료도 그 기준으로 생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는 내용이라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굳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료 등을 별도로 만들 것이 아니라, 기준점을 발달장애인도 혼자서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복지 신청주의 문제의 해결 방안…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적극행정’ 필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20세)을 둔 엄마 김현미 씨는 일명 ‘복지서비스 전도사’로 불린다. 얼마 전에도 아들을 데리고 주간보호센터를 가는 길에 뒤에서 슬쩍 다가오는 그림자가 느껴졌다고 한다. “우리 집에도 30살 넘은 댁 아들 같은 아들이 있는데… 근데 어디들 가슈?”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 보이는 어르신이 매일 손을 잡고 같은 길을 오가는 자신을 보다가 용기를 낸 것. 복지관을 다니다가 나이가 너무 많아 다시 집에서만 생활한 지 3년. 그 어르신은 주간보호센터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김현미 씨는 어르신 손을 붙잡고 곧바로 자신들이 이용하는 주간보호센터로 데리고 갔다. “어머니~ 행정복지센터 가시면 여기 아드님과 다닐 수 있어요”라고 말하자, 어르신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눈이 똥그래져서 자신을 쳐다봤다고 한다. 이렇게 김현미 씨가 주간보호센터에 대해 안내해 준 사람만 벌써 세 번째. 다른 복지서비스까지 합치면 그 수를 셀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현미 씨는 인천시장애인부모연대에서 활동하는 등 속칭 꽤 ‘나대는 엄마’에 속한다. 그녀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서비스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회비를 내고 민간협회에 가입해 정보를 얻거나, 저처럼 드세게 찾아다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아무 서비스도 이용하지 못한 채 살거나 이 셋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정보를 알기 위해 돈을 내고 민간단체를 가입하는 것이 정상적인지 되묻고 싶다.”

장애인복지법 제9조 제3항(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책임) ⓷호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복지정책을 장애인과 그 보호자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여야 하며, 국민이 장애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에 필요한 정책을 강구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복지서비스 대상자는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는 국가의 이야기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출생신고, 혼인신고, 이혼신고, 장애인등록 등 국민의 생애주기별 변화는 국가에 신고하게 되어 있다. 이는 곧 각 생애주기와 상황에 대해 국가는 이미 어떤 도움이 필요한 시기인지를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고, 그에 따른 복지서비스를 안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터뷰한 김현미 씨에 따르면, 내가 찾아서 서비스를 신청하면, 신청 결과 여부에 대해서는 우편물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에 대한 안내 우편물은 받아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제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 왔다고 해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그나마 이번 코로나19를 보내며, 예방접종에 대한 안내는 문자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가 행정과 절차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국민에게 각자가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해 우편으로 발송을 해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서비스를 받을지 안 받을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서비스를 받든, 안 받든 국민이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국가는 발 벗고 나서서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받기 싫은 과태료 용지는 수시로, 심지어 하루 이틀 전에 냈는데도, 시스템으로 며칠 간격으로 걸어놨는지 또 날아오도록 하면서 정작 이런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절대 방패…

적극 행정과 의지 필요

 

위에서 언급했듯 대다수의 복지서비스 대상자는 “TV 광고, 신문광고, 전광판 말고 나한테 직접 이런 서비스가 있으니 받으시라”고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 요구는 실현되기 힘들다. 내가 사는 거주지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은 아무리 좋은 정보가 있어도 내 휴대전화 번호를, 내 집 주소를 찾아서 우편이나 문자, 전화를 해줄 수 없다. 바로 ‘개인정보보호법’이 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수집·유출·오용·남용으로부터 사생활의 비밀 등을 보호함으로써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비스를 받는 주체인 복지서비스 대상자의 수락 없이는 나의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다. 각 지자체와 지역군‧구에서 장애인 등의 정보격차 해소와 알 권리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개인정보보호법’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수원 세 모녀’ 사건들 역시 직접 도움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인해 국가기관이 개입하기 힘들다는 한계 때문에 빚어진 일들이기도 하다.

지난 2023년 4월 인천시 계양구는 ‘인천시 계양구 장애인 및 보호자의 정보격차 해소 조례’를 제정했다. 이는 계양구에 거주하는 정부 취약계층인 장애인과 그 보호자의 알 권리를 높이고, 디지털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삶의 질 향상과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조례 제3조(책무)에는 ‘인천시 계양구청은 장애인의 사회‧복지정책과 다양한 분야의 재활정보 및 구정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과 보호자의 정보 접근권을 용이하게 해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 정보격차 해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인천시 남동구청 역시 이와 관련할 조례를 새로 제정, 또는 기존 조례에 내용을 추가할 계획임을 밝혔지만, 여기에도 해결할 문제는 남아 있다. ‘조례는 강제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그것이다. 기자가 만나본 남동구의회 총무위원회 유광희 위원장은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확대와 알 권리 보장 등을 다룬 조례는 남동구뿐 아니라 대다수 군·구에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제가 만나본 장애인과 노인 등 복지대상자들이 원하는 ‘알 권리’와 조례에 담긴 내용에는 차이가 큰 것이 사실이다. 이 요구를 반영하는 쪽으로 조례가 변경돼야 한다. 물론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난항이 예상되지만,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절대 국가가 지향하는 ‘맞춤형 복지’가 실현될 수 없다. 국가 역시 장애인과 노인 등을 ‘정보 취약계층’이라고 명시하면서 그들에게 닫지 않는 홍보를 ‘적극 홍보’라고 말하는 것은 소극행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관련 위원님들과 소통해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한 행정처리를 바꿀 수 없다면 출생신고, 혼인신고, 장애등록 등을 위해 행정기관을 찾았을 때 수없이 깨알같이 쓰인 참고사항과 동의 여부를 체크 하는 곳에 ‘신청자가 향후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우편 또는 문자 등을 받겠습니까?’ 여부를 묻는 한 줄을 넣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개인정보보호법’ 핑계만 대는 것보단, 방법을 찾는 것부터 알아서 해주는 친절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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