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_장애청년교육문화 휠 사회적협동조합]장애청년들에 의한, 장애청년을 위한, 장애청년의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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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_장애청년교육문화 휠 사회적협동조합]장애청년들에 의한, 장애청년을 위한, 장애청년의 문화공간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7.06 13:42
  • 수정 2023-07-06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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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5일 오랜만에 들른 서울 신도림테크노파크. 점심을 먹기 위해 푸드코트로 갔는데 전동휠체어 일곱 대가 위풍당당하게 들어왔다. 색다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함께 온 활동지원사인 듯한 비장애인에게 물었다. 이들이 누구냐고. 돌아온 대답은 ‘휠’이란 사회적협동조합의 청년들이라는 것.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넷을 뒤졌지만 ‘휠’이란 단체는 좀처럼 찾아지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취재를 통해서 알았지만) ‘휠’의 모든 소통은 모바일 플랫폼 ‘밴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래 별러 휠과 연락이 닿았다. 통화를 한 휠의 임태욱 팀장은 휠의 정식명칭은 ‘장애청년교육문화 휠 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바로잡아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말 무더위를 뚫고 그들의 아지트를 방문했다.
▲ 6월 23일 ‘자기표현 소시오-드라마 체험’ 첫 수업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뒷줄의 연두색 옷을 입은 이가 강사 심보준 씨이고, 앞줄 맨 오른쪽이 휠의 유일한 상근활동가인 임태욱 팀장이다.

“평소에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제대로 표현하지를 못해요. 감정을 잘 조절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신청했어요.” “저는 현재 무용과 파워사커를 하고 있어요. 몸으로 하는 거를 좋아하죠. 그래서 이 프로그램도 신청했습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도림두산베어스타워 2층, 그리 크지 않은 방에 모인 뇌병변장애 청년들이 돌아가며 천천히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대부분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터라 자기소개 속도도 늦고, 처음 그들의 언어를 대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청년들은 천천히 자신의 목소리로, 때로는 휴대폰에 문자로 찍어서 자신의 이름과 프로그램 참여 동기를 밝혔다. 활동지원사와 프로그램 진행 담당자를 빼면 모두 7명. 오늘 첫 수업을 시작하는 ‘자기표현 소시오-드라마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장애청년교육문화 휠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다.

이날 시작된 ‘자기표현 소시오-드라마 체험’ 프로그램은 휠이, 심한 뇌병변장애인들이 대부분인 조합원들이 사회 또는 학교에서 겪는 감정 표현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했다.

첫 수업에서는 소리를 잘 내는 법을 주로 배웠다. 강사인 전문 배우 심보준 역시 안면장애가 있는 장애인. 그는 자신이 전문 배우가 되면서 깨달았던 것은 “표현은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장애유형에 맞는 표현 양식을 찾으면 된다.”며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소개한 수강생들을 격려했다.

▲ 휠의 조합원들은 지난 6월 17일 강화도로 가족나들이를 다녀왔다. 이날 나들이에는 조합원 12명을 비롯해 조합원 부모, 활동지원사, 자원봉사자 등 31명이 참가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장애청년이 주체인 교육문화 협동조합

장애청년과 사회 이어주는 가교 되고파

 

장애청년교육문화 휠 사회적협동조합(이하 휠)은 이름에서 그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장애청년교육문화’는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드러낸다. 휠은 장애청년들의 교육과 문화를 위해 모인 단체다. 교육이라 함은 앞서 현장을 함께했던 ‘자기표현 소시오-드라마 체험’과 같이 장애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나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하며, 문화라 함은 장애청년들이 장애로 인해 쉽사리 향유할 수 없는 여행, 공연, 영화감상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 향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이름의 두 번째 구성단위 ‘휠’은 주체의 아이덴티티다. ‘휠’을 구성하는 주체들은 휠체어가 ‘발’ 역할을 하는 중증장애청년들이다. 휠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심한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장애만이 이들의 공통점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체이며 결정권자임을 인지하고,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인생을 가꾸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이들의 정체성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협동조합’은 이 단체의 성격이다. 알다시피 사회적협동조합이란 조합원들의 권익과 복지증진을 위해 복무하는 비영리 협동조합이다. 휠은 조합원 모두가 주인이고, 사업의 결정권자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는 더욱 끈끈한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모든 모임이 그러하듯 휠의 시작도 누군가의 작은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그 누군가는 현재 휠의 상근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는 임태욱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던 임태욱은 “뇌병변장애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회는 냉정하기만 해서 뇌병변장애 학생들에게는 대학의 문턱도, 직장의 문턱도 높기만 했다. 자신 역시 심한 뇌병변장애인인 임태욱은 뇌병변장애 청년 스스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그의 문제 제기에 평소 알고 지내던 몇몇 선배들이 공감하고 뜻을 모아주었다. 현재 휠의 이사로 있는 이충호(지체장애), 최흥수(뇌병변장애), 송정아(뇌병변장애), 장인형(비장애)이다. 이들 네 명의 선배와 임태욱이 조합원이 되어 장애청년, 보다 세부적으로는 뇌병변장애청년들을 위한 문화공간의 역할을 할 ‘무언가’로 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2년 3월의 일이다.

“대면 모임이 금기시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모임 공간을 연다니까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했죠. 근데 우리는 절실했던 거죠. 안 그래도 학교 외에는 바깥 활동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인데, 학교 수업도 대부분 온라인 수업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고립감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립센터에서부터 알던 몇몇 동생들이 우울감에 빠져드는 게 눈에 보였어요.”

공간은 지금도 그렇지만 이사 중 한 명인 송정아 이사가 운영하는 장애인극단 휠과 공유하기로 했다. 조합을 창립하면서 선언한 휠의 목표는 네 가지다. 하나, 중증장애청년들의 외로움 해소. 둘, 중증장애청년들의 노동 기회 제공. 셋, 우리들만의 독특한 즐길거리 창출. 넷, 소외를 깨부술 진지한 연대.

 

장애청년의 야외체험활동 ‘집청’ 인기

공모 통해 뇌병변복지회 지원 따내기도

 

조합을 창립하고 두 달만인 2022년 5월 휠의 이름을 단 첫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책읽기 소그룹 모임 ‘고!고!고!(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휠의 프로그램 중 몇몇은 조합 창립 이전 임태욱 팀장이 다른 단체에서 함께했던 프로그램들이 휠로 이어져 온 것들이다. ‘고!고!고!’도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다. 2021년 하반기에 시작한, 임태욱 팀장과 몇몇 청년들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는 모임이 휠의 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고!고!’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2주에 한 번 휠 사무실에 모여 강독을 하고, 자신들의 생각도 나누며 생각의 넓이와 깊이를 키우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도 익히고 있다.

‘고!고!고!’와 함께 조합 창립 이전부터 진행돼 온 또 다른 프로그램은, 휠의 프로그램 중 조합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집청(집보다 청춘)’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전통 깊은 프로그램이다. ‘집청’이란 프로그램명은 ‘집에만 있지 말고 청춘을 즐겨라’라는 뜻으로, 장애-비장애 청춘들이 함께 모여 문화활동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올해 회원모집 때는 경쟁이 ‘피터졌다’는 후문이 있을 지경.

▲ 휠의 프로그램들 중 조합원들 최애 프로그램은 ‘집청’이다. 사진은 지난해 7월 7일 전동휠체어 7대가 출동, 롯데월드를 접수했던 ‘롯데월드 가다’

‘집청’은 주로 야외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2022년 조합 프로그램으로 시작하면서부터는 조합원 부모님들의 후원이 시작됐다. 2022년 첫 ‘집청’은 5월 14일 있었는데, 이날은 이후 1년간의 계획을 세웠다. 휠의 모든 활동 계획은 참가자들이 직접 논의해 수립하는 것 또한 휠이 조합원 모두의 조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날 ‘집청’ 모임에서는 2022년 집청이 하고 싶은 것들이 논의됐는데, 롯데월드 체험, 캠핑, 청와대 관람, 파워사커 체험, 노래방 가기 등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싶은 청춘들의 열정이 넘쳐났다. 실제로 작년 ‘집청’은 2회차에는 파워사커 체험을, 3회차에는 ‘롯데월드를 가다’ 등 첫날 논의된 장소와 체험이 주를 이뤘다. 특히 7월 7일 ‘롯데월드를 가다’에는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청년 7명, 비장애인 10명이 롯데월드를 접수했다고 한다.

2023년 ‘집청’ 프로그램은 3월 18일 첫 모임을 시작해 4월 15일 비가 오는 바람에 원래 가려고 했던 한강공원 대신 신도림 테크노마트로 행선지를 변경, 영화도 보고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는 체험을 했다. 3회차는 5월 13일 창덕궁을 방문, 해설사와 함께 궁을 탐방했다.

▲ 올해 처음 시작한 ‘미너!당당’의 2회차, 꽃왕관 만들기. 자신들이 만든 꽃왕관을 쓴 조합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고!고!고!’와 ‘집청’이 나름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미너!당당’과 ‘파워사커 강습’이 있다. ‘미너!당당’은 ‘아름다운 너! 당당하라’라는 뜻의 자조모임으로, 미술활동을 통해 진정한 ‘나’다움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다. 4월 1일 첫 모임을 시작해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조합 사무실에서 활동이 이루어진다.

‘파워사커 강습’은 전동휠체어 축구인 파워사커를 통해 체력을 기르고 협동심과 대인관계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 활동이다. 조합원 중 이미 전부터 파워사커를 해 왔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장애인전동축구단을 조직,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 강습을 겸한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사업들이 자체 사업이었다면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사실 휠은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비영리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 및 프로그램 운영비, 인건비 등의 충당도 사실 벅찰 수밖에 없다. 모든 운영비는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로 충당되는데, 창립 당시 7명이었던 조합원이 2023년 현재 30명으로 늘었지만,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만으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임태욱 팀장이 열심인 사업이 바로 각종 단체의 공모사업 지원이다. 프로그램 운영 못지않게 공모사업 지원도 그에겐 중요한 업무인 것.

실제로 휠은 작년과 올, 각각 한국뇌성마비복지회의 공모에 선정돼 지원을 받고 사업을 진행했다. 작년에는 7월부터 11월까지 ‘휠앤휠(Weel & Wheel) 나다움이란?’ 주제로 자립생활 기술훈련 프로그램을 4회차에 걸쳐서 진행했으며, 올해는 ’야~! 유 두(You Do)‘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크리에이터 전문지도사 2급 양성과정을 7~8월 중에 진행한다.

 

‘장애청년들의 사회통합과 자립을 위하여

 

휠은 생긴 지 2년도 채 안 된 작은 단체다. 대단한 재력의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최중증뇌병변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자신들이 누려야 할 문화와 교육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사무실을 열고,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래서 더 소중한 단체가 아닐까 싶다.

장애청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지만 창대한 시작이랄까. 그래서 조합원 최모 씨의 보호자가 말한 다음과 같은 휠의 강점은 한층 가슴에 와닿는다.

“휠은 일반적인 장애인복지관이 아니다. 장애인복지관의 프로그램들은 장기적인 목표가 없는 일회성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아들딸들이 직접 계획하고 운영하는 휠의 프로그램들에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장애청년들의 사회통합과 자립생활이다. 이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목표를 갖고 실천하는 청년들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뿌듯하다.”

 

“휠이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김우진 휠 조합원

휠의 청년 조합원 김우진 씨는 현재 한경국립대학교 사회통합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기 중에는 주로 학교에서 생활하는 그의 여름방학은 ‘무지’ 바쁘다. 우선 앞서 소개한 휠의 ‘자기표현 소시오-드라마 체험’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했다. ‘새로’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소개에서도 밝혔듯 그는 이미 ‘무용’과 ‘파워사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용은 전문예술법인 빛소리친구들에서 운영하는 MADE에서 2015년부터 배우고 있으며, 파워사커 또한 이미 경력이 3년 차가 넘는 베테랑이다. 그뿐만 아니라 휠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고!고!’ ‘집청’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방학이라도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다. 사실, 별다른 일이 없어도 습관처럼 휠 사무실에 나오기도 한다. 그 이유를 우진 씨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휠과 관련, 그가 처음 접한 프로그램은 ‘집청’이다. 병원 낮병동 동지이자 휠의 조합원이기도 한 “(성)기정이 형이 소개해줘서” ‘집청’과 만난 그는 “가족 아닌 사람들과 야외활동을 하는 게 너무 좋았다.”며 “친구들이 있어 좋긴 하지만 학교는 사실 너무 황량해서 즐길거리가 많지 않다. 이에 비해 휠은 뜻이 맞는 친구도 있고, 주변에 즐길거리도 많아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실제로 김우진 씨는 장콜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전철을 이용해 무용을 하는 마포중앙도서관은 물론 전철역과 다소 떨어진 휠 사무실에 오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올 5월, 조합원이 된 김우진 씨는 “휠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이유를 묻자 “친구들과 함께 계획을 짜고 우리가 주인공이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래서 자신에게 최고라는 뜻인 듯.

마지막으로 대학을 졸업하는데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냐고 묻자 “태욱이 형처럼 우리 같은 청년들을 위한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내후년, 휠의 상근활동가가 한 명 더 늘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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