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행복지수… 센터와 함께 지역사회로 나갑니다...인천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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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행복지수… 센터와 함께 지역사회로 나갑니다...인천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6.22 09:49
  • 수정 2023-06-22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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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당사자 단체, 바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다. 장애인 자립생활이란 장애인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해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즉 IL센터는 장애인들의 자립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지원하는 곳이다. 최근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둘러싸고 장애인생활자립센터 간의 의견 충돌이 일고 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여다보면 갈등보다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이념이 더 강하게 이들을 엮고 있다. 인천시의 IL센터는 모두 11곳. 그중 한 곳인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찾아 그들이 어떤 일을, 어떤 생각을 갖고 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_정은경 기자
▲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식구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나 할까. 초여름의 더위를 녹색 숲이 달래주는 인천시 서구 검암동에 자리한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찾은 날, 센터의 식당은 시끌벅적했다. 식탁 중앙에는 케이크가, 그 양옆으로 몇 판의 피자가 놓여있고, “빨리 와요…. 빨리빨리~~ 생일파티해요.” 하며 즐거운 얼굴로 직원들과 이용자들이 모여들었다. 곧이어 머리에 황금색 왕관 머리띠를 한 오늘의 주인공, 총무팀 김한재 씨가 들어왔다. 모두 환호성~~. 덕분에 다이어트는 말짱 꽝이 됐다면서도 즐겁게 생일파티를 즐기는 여직원들까지, 즐겁고 유쾌한 모습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 온 또 다른 가족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2007년 설립, ‘문누리’를 첫 사업으로

2009년 사무실 이전하며 전환기 맞아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서구IL센터)가 처음 문을 연 것은 2007년이다. 센터장인 이경임 씨가 그의 표현대로 ‘설거지만 하다’ 처음 집 밖으로 나섰던 인천여성장애인연대에서 만난 중증여성장애인 세 명과 함께 설립했다.

“처음 제가 인천여성장애인연대에 직장이라고 나갔을 때 그곳에서 이미 몇 년 동안 일하던 중증장애인이 몇 있었어요. 그런데, 찬찬히 보니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대우를 받고 왜 여길 다니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집에서 나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이 필요해서라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이경임 센터장의 회고다. 장애인들에게도 낮시간을 보낼 곳이, 특히나 그곳이 직장이라면 더욱 좋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고. 그래서 처지가 같은 장애인들을, 타의에 의해 집안에만 갇혀 있는 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일념에 사비를 털어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센터를 유지하는 일은 당연히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센터를 찾아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이용인들을 보는 낙에, 센터장은 힘든 줄 모르고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서구IL센터의 첫 사업은 ‘문누리’ 사업이었다. “센터가 문을 연 지 석 달쯤 되었을까, 우연치 않게 국회에서 지역 국회의원을 만났습니다. 그분을 붙잡고 한번 만나 달라고 하니 흔쾌히 OK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니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꾸준히 연락을 하니 새벽 시간이라도 괜찮으면 보자는 연락이 왔더라고요. 새벽 5시에 만났어요.”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만남이 있은 며칠 후 구청 복지과 과장이 직접 센터를 찾아왔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느냐 묻더니 바로 지역단체 보조금 200만 원을 지원해 주었다. 그 돈으로 시작한 것이 문누리 사업이다. 집안에만 있던 장애인들을 어떻게든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기획한 사업이다. 센터의 소개 브로슈어에는 ‘장애로 인해 가지기 힘들었던 문화 누림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 보편적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사회적 인식 전환의 계기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우선은 밖에 나와 콧바람이라도 쐬라는 의도였다고 이경임 센터장은 첫 사업 시작 당시의 의도를 설명한다. 예산이 적으니 당연히 먼 곳으로의 여행이나 값비싼 공연을 보러 갈 수는 없었다. 첫 나들이 장소는 월미공원이었다. 11명의 장애인이 함께했다. 2008년 4월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문누리 사업은 매월 1회 영화를 보거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소확행’ 사업으로 진행되어 오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작년에 재개됐다. 작년부터는 일 년 두 번, 상하반기로 나눠 공연 관람과 1박2일 캠프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7월 13~14일 양일간 충북 제천으로 물놀이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한 번에 70여 명 정도가 참여하는 서구IL센터의 가장 규모 크고 전통 있는 프로그램이다.

서구IL센터의 전환기는 센터 문을 연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찾아 왔다. “처음 시작한 사무실은 서너 평 정도로 좁았어요. 그러다 보니 휠체어가 두 대만 들어와도 돌릴 수가 없어 서로 뒤통수를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무실 임대 기간이 만료되자 무리를 해서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겼던 거예요.” 그때 옮긴 사무실이 지금의 사무실이다.

그런데 이전한 사무실이 명당이었는지 사무실을 옮긴 이후부터 지원사업 공모 선정률이 높아졌다. 활동보조 지원기관으로 선정된 것도 그때쯤이다. 출범 2년 만에 비로소 센터 운영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다양하게 지원사업을 모색하고 추진했다.

▲ 왁자지껄 즐거운 생일파티

 

상처로 남은 ‘장애인 맛집 지도’ 만들기

장애인들의 취업역량 강화에도 최선

 

센터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서구IL센터만의 특색을 가진 사업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어떤 사업이 좋을지 고민하다 시작한 것이 장애인편의시설 맵 만들기였다.

“대한민국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 주변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일단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주변 맛집 지도부터 만들자는 생각이었지요.”

사무실 인근 지역을 돌며 장애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조사해 지도로 만들고, 경사로가 없는 매장에는 센터 예산으로 경사로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사 활동을 하던 센터 활동가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2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의 주인들은 장애인들이 들어오는 것조차 싫어했고, 자기 돈이 아니라도 경사로 설치가 싫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조사 나간 뇌병변장애 당사자인 활동가에게 천 원짜리 지폐를 주고 내쫓는 곳도 있었다. 불과 서너 해 전의 일이었다.

그다음에 추진해서 성공한 사업이 ‘구해줘 홈즈’ 사업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센터 이용인들에게 할 일도 찾아주고 사회에 보탬도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방역사업’이었던 것. 경제적으로 취약한 장애인 가정에 미세먼지 방충망을 설치하고 침대 매트리스 클리닝 및 실내 방역 소독과 방역물품을 제공하는 것이 사업의 내용이었다.

2020년 인천시청으로부터 2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시작했는데, 호응이 너무 좋았다. 덕분에 2021년과 2022년에도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었고, 특히 민간 기업으로부터 시청 예산 지원액과 맞먹는 지원까지 받게 돼 사업 대상을 더욱 늘릴 수 있었다. 거의 메가 히트급이었던 ‘구해줘 홈즈’는 센터의 대표적인 특화사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올해 들어 팬데믹 상황이 정리되면서 사업을 마감했다.

대신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ITQ 교육이다. “우리 센터에서는 가능한 한 당사자를 직원으로 채용하려고 해요. 지금도 활동보조지원팀을 제외하면 네 명 중 세 명이 장애인이죠. 그러다 보니 이용인 가운데서도 나도 일을 좀 시켜주면 안 되냐고 하시는 분이 있는데, 가만 보니 이분들이 컴퓨터를 전혀 못 하시는 거예요. 요즘 어딜 가도 컴퓨터와 인터넷을 못 하면 일을 할 수 없잖아요?”

목적은 명확하다. '장애인들이 자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제적인 자립기반을 만들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필수역량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다루는 능력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용인들이 한글이나 엑셀 같은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게 하자. 그리하여 근로 역량을 키우자.'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작년에는 32회차의 교육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센터에서는 파크골프, 탁구, 보치아 등 이용인들의 스포츠 동호회 활동뿐만 아니라 자립생활에 필요한 금전관리 교육, 바리스타·목공예 등의 직업교육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IL센터의 통상적인 사업인 권익옹호사업, 동료상담, 개인별 자립지원, 탈시설 자립지원 사업을 물론 기본적으로 수행한다. 여기에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사업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탈출작전’ 방불케 한 재가장애인 자립작전

장애인들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이 존립이유

 

다시 김한재 씨의 생일파티 자리로 돌아가 보자. 생일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부터 뇌병변장애인, 발달장애인까지 비교적 다양한 유형을 보인다. 그럼에도 전혀 서로 간의 위화감이 없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오랜 시간을 같이해 왔기 때문이다. 서구IL센터는 이용자의 장애유형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용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장애유형은 뇌병변장애이지만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자립에 성공한 이용인 강석진 씨의 시화

 

서구IL센터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것은 복도에 걸린 시화 패널이다. 이용인들이 직접 쓴 시에 사진 등을 넣어 패널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이 중 특히 눈에 띄는 패널이 있다. ‘벗이여’란 제목에 8행의 짧은 시가 웃는 듯, 절규하는 듯한 모습의 필자 강석진의 사진 위에 올려 있다. 강석진 씨는 서구IL센터의 도움을 받아 지역사회로 자립한 대표적인 사례자다.

“집안 골방에서 40년 넘게 갇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교회만 겨우 나갔나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저희랑 연이 닿아서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집에서 ‘탈출’하게 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가족들이 자기를 못 나가게 할 테니 몇 날 몇 시에 와서 자기를 몰래 데려가라는 거예요.”

강석진 씨의 자립은 그야말로 ‘탈출’이었다. 센터 직원들이 업고 나와 센터에서 운영하는 자립주택에서 보호하고 자립훈련을 시켰다. 지금 그는 시도 쓰고 라이브로 음악방송도 하고 여자친구도 사귀며 잘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서구IL센터 존립의 이유라고 이경임 센터장은 말한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하고, 지역사회에 잘 통합되도록 돕는 게 우리 센터의 존립의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강석진 님처럼 잘 사는 분들을 보면서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죠.”

센터 시설 이곳저곳을 한참 둘러봤다. 별다를 것 없는 시설이지만 깨끗하게 정리되고 청소된 시설에서 왁자지껄 즐겁기만 한 서구IL센터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독립시켜야 자립할 수 있습니다”

이경임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

 

“우리 센터의 목적은 단 한 사람의 장애인이라도 더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경임 센터장은 센터의 목적을 묻자 단호박 대답을 내놨다. 그리고 아울러 장애인들의 자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역시 가족이라며,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돌 무렵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못 쓰게 된 경우예요. 학교도 다른 애들보다 일 년 늦게 들어갔어요. 가정형편도 넉넉지 않은 데다(그녀는 1968년생이다. 그 나이 또래가 자랄 때 우리나라는 모두 곤궁했다.) 장애도 가졌지, 딸이지 하니까 엄마가 학교에 보낼 생각을 안 하신 거죠.”

그때 자신의 어머니 생각은 두 가지였을 거라고 이 센터장은 짐작한다. 하나는 귀한 막내딸이 세상에 나가 놀림을 받을까 걱정이 됐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보살핌 없이 어떻게 살까 하는 애처로움이었을 거란 것. 그런데 ‘지금, 여기’의 재가장애인들의 어머니들 마음도 자신의 어머니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 센터 초기부터 센터에 나오던 발달장애청년이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갈 데가 없으니 여기라도 가서 놀라는 생각으로 어머니가 데리고 오셨는데, 제가 보니까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거예요. 밥 좀 흘리면 어때요? 근데 일일이 다 떠먹여 주고, 혼자 올 수 있는 길도 꼭 데리고 오고…. 그러니까 이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어져요. 센터에 있을 때는 제가 하도 혼자 하라고 하니까 밥도 혼자 먹고, 가끔 장애인콜택시 타고 혼자 오기도 하고…. 그런데 엄마만 있으면 눈치를 보고 못 하는 거죠.”

‘내가 없으면 우리 아이는 어떡해’라는 부모, 나아가 가족들의 기우와 자신의 아이가, 형제자매가 장애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다는 인식이 재가장애인들의 자립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형제자매가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장애인이 혼자 설 수 있고, 가족은 자신들의 자녀가, 형제자매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훈련을 시켜주면 된다는 것이 이경임 센터장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장애인 당사자들에도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존재로 살아달라.”는 당부를 했다. 장애를 무기 삼아서 책임져야 할 부분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때 비로소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이 가능해질 거라는 게 이 센터장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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