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중심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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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중심국가
  • 편집부
  • 승인 2010.04.26 00:00
  • 수정 2013-02-0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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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 한나라당 국회의원, 인천 연수구

가족이 함께 가까운 동산으로 산보를 나간다.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50대의 아버지 어머니, 30대의 아들 며느리 그리고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간 손자 손녀가 오랜만에 다 같이 야외로 나간다고 하니 모두들 마음이 들떴다. 빨리 가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주변 볼거리도 구경을 하고 가족사진도 찍으려고 마음을 먹으니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마음뿐 우선 꼬마 손자 손녀가 속도가 나지를 않는다. 아빠 엄마 따라 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져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무릎이 예전 같지가 않으시다. 부모님께서도 재촉하는 아들내외가 못마땅하신지 입을 꼭 다무시고 앞만 보고 걸어가신다.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 한참 몸부림을 쳐보다가 결국은 걸음걸이를 가장 꼬마인 손자 녀석들에게 맞출 수밖에 도리가 없어 막내 손녀는 유모차에 태우고 오빠는 아장아장 걷게 하여 온 가족이 손자들께 맞추어 조금은 느린 듯 하지만 함께 가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자 손을 잡고 발을 맞추어 걸으시니 입가에 웃음이 도시고 금세 온 집안이 화기애애하게 되었다. 아빠 엄마도 그때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들꽃의 아름다움도 새소리의 지저귐도 눈과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비로소 소곤소곤 얘기를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손자들과, 아들 내외도 부모님과 눈을 마주치면서 얘기를 나누고, 아들 내외도 여보, 여보 하면서 오랜만에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힘든 줄 모르게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여 정말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사진도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들로 찍을 수 있었다. 아 진짜 가족 산보가 된 것이다. 이 꼬마 손녀 손자 때문에.

이 가족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군복무중인 젊고 건강한 남자들이 있는 가하면 장애인과 노약자도 있다. 젊고 건강한 남자들만 마치 군대같이 살아간다면 능률은 오를지 몰라도 살맛나는 사회는 분명 아닐 것이다. 사회도 가족의 연장선이라면 또 그래야 한다면 우리는 가장 약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사회의 제도와 운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공동시설이나 작동원리를 가장 어려운 연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가장 힘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구나 어렵고 힘들고 위급할 때 큰 도움이 되고 때에 따라서는 생명과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국가 사회의 기준과 중심이 바로 장애인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와 사회의 모든 제도나 시설은 장애인을 기준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예컨대 버스를 만들 때도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를 일반버스라고 만들어 놓고 따로 특별하게 몇 대만을 장애인도 탈 수 있는 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함께 탈 수 있는 버스를 모두 만들고 이 버스에 비장애인도 타는 것이다. 벌써 이렇게 교통시설을 갖춘 나라들이 많이 있다. 물론 이 버스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약자나 임산부 어린이들도 탈 수 있고 유모차나 각종 보조기구도 싣고 탈 수가 있어서 모두에게 큰 편의를 제공하게 된다. 국가 사회는 밝아지고 삶의 질이 높아질 뿐 아니라 경제적인 효율성도 종합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약자도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공공시설뿐 아니라 상점이나 개인주택도 결국은 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 건축하여야 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생각과 말도 장애인을 중심하여 재구성하여야 한다. 예전에는 정상인, 장애인이란 말을 썼으나 이는 그 기준이 잘못된 것이어서 비장애인, 장애인이란 말로 바뀌게 되었고 그 순서도 항상 장애인, 비장애인이라고 하는 연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이 기준이 되는 나라이다.

나의 선거구인 인천 연수구는 장애인 가족이 9천명이나 된다. 장애인들께 귀를 기울이다 보니 장애인들은 4가지 소원을 품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고 싶은 데 마음껏 다니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마음껏 배우고 싶어 한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싶어 한다. 끝으로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할 일자리를 원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원이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소원이다. 그런데도 장애인들로서는 이러한 소원을 이루는 것은 물론 주장하기에도 너무 힘이 드는 것이 안타까운 오늘의 현실이다.

장애인의 4가지 소원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움직일 수 있게, 나가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조차도 만만치가 않다. 장애인들이 늘상 출입하여야 하는 동사무소나 주민센터에 휠체어를 타고 접근하기가 어렵다. 한 번은 지역구를 장애인 해방구로 선포하고 4천만원의 예산을 들여서 동사무소 한 곳을 정비하였는데 만들고 나니 휠체어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시 고치기는 하였으나 이런 문제는 장애인문제를 비장애인들이 대신 다루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비장애인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장애인문제를 장애인만큼은 알 수도, 대신 해줄 수도 없다. 장애인문제만은 장애인들이 직접 기획을 하고, 집행을 하고, 감독, 감사하여야 한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보조하여 그들의 생각이 달성되도록 맞추어 나가면 된다.

그래서 지난 지방선거 때 당에서 공천을 직접 할 수 있는 비례대표 구의원 한 분은 뇌성마비장애인 여성으로 모셨다. 1급 지체장애도 겸한 서연희 의원이시다. 서 의원께서는 의원으로서 구의회로 구청으로 동사무소로 다니셔야 하니 이런 공공시설은 말끔히 친장애인시설로 다 바뀌었다. 서의원은 요정처럼 다니는 곳마다를 장애인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바꿔 놓고 계시다. 그러니 장애인들의 염원을 풀어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어찌 보면 유일한 길은 장애인문제를 다루는 권력을 장애인들에게 쥐어드리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건대 세상은 가장 연약한 분에게 온갖 정성을 쏟게 창조되어 있는 사랑의 유기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가장 연약한 자는 바로 오늘 아니면 내일의 나 자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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