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우리도 무대 위에선 모두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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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우리도 무대 위에선 모두가 배우다
  • 배재민 기자
  • 승인 2022.05.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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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배우들로 구성된 ‘극단 라하프

 ‘극단 라하프’의 문 앞, 노크를 하려는데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문 안에서 새어 나왔다. 배우들의 웃음소리였다. 인터뷰를 위해 극단에 들어갔을 때, 배우들은 강사의 권유에 따라 연기 연습을 위한 눈 마주치지 않기, 배우 한 명이 여러 명 사이를 돌아다니며 눈을 마주치려고 하고, 다른 배우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연습이었다. 보통의 연극과 학생들이 하는 지극히 평범한 몸풀기 훈련이다. 극단 라하프의 배우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장애인생활신문.은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배우가 되었는지 알아보았다. 

극단 라하프는 발달장애인 배우들로 구성된 극단으로 2016년 나사렛대학교 학부모회에서부터 시작됐다. 대학교에 입학한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바뀔 줄 알았는데 그 전이랑 다른 게 없었다. 방학에 집에만 있고, 핸드폰만 봤다. 대학교에서의 4년은 자립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냥 보내긴 아까웠다. 

 발달장애인 자녀의 부모들은 “누가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알아서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 그래서 학부모회는 자녀들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그들이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뮤지컬에 도전하기로 했다. 춤과 노래를 기본적으로 좋아하니 뮤지컬 또한 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나사렛대학교 발달장애인 학생들과 학부모회를 주축으로 ‘극단 라하프’가 탄생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본인도
뮤지컬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극단 라하프’의 배우들은 연기를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것이 아닌 그들의 부모님이 시켜서 시작했다. “일단 한 번이라도 해보고 원하지 않으면 그만둬도 된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한 말이다. 모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장애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었다. 그들은 비장애 배우들도 살아남기 힘든 곳이 문화예술계라고 타박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도 본인에게 의심이 있었다. ‘극단 라하프’의 한소라 배우도 처음 어머님이 뮤지컬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내가 그걸 할 수 있겠어? 내가 이걸 어떻게 해”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막상 뮤지컬을 올리고 나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들은 “공연에 누가 보러오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행복하기만 하면 되고 우리만 좋으면 된다. 아이들은 꼭두각시가 아니다.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중요했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극단 라하프’의 공연을 보러왔다. 

 발달장애 자녀들은 배우라고 불리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품게 되었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본인들이 뮤지컬을 계속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발달장애인 학생에서 배우가 되는 순간이었다. 

 

관객들은 연기하는 배우가
발달장애배우인 것 의식 못해

 ‘극단 라하프’의 가장 최근 공연 <HABIT 다름, 닮음>을 선보일 때의 에피소드다. 공연을 보던 관객이 배우들의 군무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불평을 들은 관계자가 배우들이 다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었고 불평했던 관객도 “아 그렇지” 하고 답했다. 관객이 배우들이 발달장애인인 것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관객이 착각하는 데에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한몫했다. 배우들의 꾸준한 연습과 그걸 바라보는 부모들의 인내심이 만든 성공담이다. 

 
처음 연습은 힘들었지만
꾸준한 연습과 소통이 답

 ‘극단 라하프’ 소속 배우 중 몇 명은 수원에서 서울 합정으로 연습을 위해 출근한다. 하지만 지각하는 배우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30분 전에 도착한다. 공연 직전, 고된 연습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했음에도 피곤하지 않다고 말하고 무대에 오른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발달장애인 배우들의 돌발행동이 변수였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거나, 대사를 안 외우고 울거나, 혼자 피시방에 가서 오지 않거나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다. 제대로 연습다운 연습을 하는 데에까지 1년이 걸렸다. 

 배우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은 뮤지컬 전공자다. 그들도 배우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통했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 커뮤니티는 낯선 곳이니 처음에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강사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장애인 배우들을 대하며 이해 안 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왔지만 직접 그들을 경험해 보니 발달장애인 배우들도 비장애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비장애인 배우보다 조금 느리고 조금 이해 못 하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엔 자신이 맡은 바를 해낸다. 본인들이 가르치러 왔다가 오히려 배우고 간다는 말을 하는 강사들도 많았다. 

 강사들은 가르치거나 지적하지 않고 논다는 마음으로 배우들과 임했다. 감독들과 강사들은 배우들과 소통을 하며 자연스럽게 놀다 보니 서로가 가까워지고 편해진다. 보통의 업무현장은 지시받고 혼나고의 연속인 데에 비해 ‘극단 라하프’는 자신을 표현하는 곳이니 가능했다. 

 아이들의 단체생활도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 명이 잘하기 시작하면 다른 이들도 승부욕이 올라와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한 시간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던 연습이, 두 시간으로 늘어나고 네 시간까지 늘어났다. 

 이런 7년간의 훈련과 연습들이 발달장애 배우들의 배움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점차 제 생각을 전보다 더 잘 표현하게 되었고 새로운 것들을 습득하는 것도 전보다 빨라졌다. 

 물론 포기한 발달장애인들도 많았다. 본인에게 맞지 않거나 부모들의 서포트가 힘든 경우가 그랬다. 부모와 강사와 배우, 셋이 함께 한마음이 되어 노력해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자립할 수 있는 
공동체가 최종 목표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들은 흔히 ‘자신이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내가 없을 때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슬픈 고민이다.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들이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게 자식의 독립이다. ‘극단 라하프’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이 되어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 최종 목표라고 답했다.

 

[미니 인터뷰]

“관객에 배우다운 모습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연습”
극단 라하프 <HABIT~> 공연
한소라-정범진-민정기 배우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민정기, 한소라. 정범진, 이한길 배우

 

 지난달 4월 22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 이음홀에서 ‘극단 라하프’의 <HABIT 다름, 닮음>(이하 해빗)을 공연했다. 발달장애 배우들의 아침 일상을 작품으로 만든 현대무용이었다. 관객들은 발달장애인들의 일상을 보면서 장애인의 일상준비와 비장애인의 일상준비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내용이다. 

 본 연극에서 한소라 배우, 정범진 배우, 민정기 배우 그리고 이한길 배우가 열연을 펼쳤다. 그들은 올해 각각 6년 차(정범진 배우, 민정기 배우)와 7년 차(한소라 배우, 이한길 배우)에 접어들었다. 

 이번 연극에 대해 한소라 배우는 “우리의 모습을 똑같이 연극에서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민정기 배우는 “자신의 아침 일과 생활과정이 담긴 동작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관객들과 소통하며 친근감을 쌓을 수 있었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작년에 공개한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 보고서’에 의하면 발달장애인 취업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5년 1개월이다. 하지만 <해빗>을 연기한 배우들은 평균 취업자들의 근속기간을 넘겨서 연기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계속 연기하게 하는지 물어봤다. 한소라 배우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점”을 얘기했다. 

 정범진 배우는 “연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서 연습하게 되니 대인관계가 활발해져서 행복하다.”고 했다. 민정기 배우는 “무대에 설 때는 긴장되지만, 관객들이 있을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열정도 생겨서 더 활동적인 무대를 보여주게 되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한길 배우는 “여러 역할을 맡는 것은 가면을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가면을 써 좋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무대 위에 선다는 건 늘 부담과 긴장으로 다가온다. 특히 관객들이 앞에 있으면 울렁증이 생기는 일도 있다. 연습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다. 꾸준히 동작을 체크해야 하고 입에 붙지 않는 단어들을 발음해야 한다. 정범진 배우는 “처음 접하는 대사는 낯설고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민정기 배우가 이어서 “처음에 연기할 때는 여러 동작과 대사들이 어렵고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걱정도 많았다. 뮤지컬을 선택한 것이 옳았던 것인지도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랜 시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무대에서도 당당해졌다. 다 같이 협동해서 연기하니 행복하다.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우리도 프로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바뀐 점을 답했다. 그리고 네 명의 배우 모두 “수많은 관객에게 배우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습한다.”고 밝혔다. 

 네 배우 모두 현재 연기를 하며 보조강사도 같이하고 있다. 연기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정범진 배우는 “올해부터 보조강사 일을 시작했다. 잘할 수 있을까 긴장했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러 번 해보니 지금은 익숙하다. 배우를 하기 위해 오는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고 말했다. 


 이한길 배우는 “예전에도 고등학생들에게 랩을 가르쳐준 적이 있다. 그러다 연기를 시작했다. 전에도 해봤으니 어려운 건 없다. 하지만 연기가 가르치는 대상이 더 다양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한소라 배우와 민정기 배우는 “전에 서울발달센터에서 케이팝 댄스 보조강사를 한 적이 있어 익숙하다.”며 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연기는 네 배우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연기하지 않았다면 민정기 배우는 공무원 사무보조일을 하거나 철도에 관심이 많아 교통 쪽에서 근무했을 것 같다고 말했으며 한소라 배우는 커피가 좋으니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범진 배우는 연기를 하기 전에는 다른 회사에서 사무보조를 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이한길 배우는 “그냥 방에서 나오지 않고 글이나 썼을 것 같다.”고 웃으며 답했다.

 네 명 모두 현재 연기를 하는 자신에게 만족한다고 답했다. 네 명 모두 현재 활발하게 배우로 활동 중이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 다들 기자의 질문에 고민하다 한 명씩 조심스레 자신의 목표 혹은 미래모습을 설명했다.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민정기 배우였다. 그는 “계속 많은 공연을 하고 배우로 불리고 싶다. 앞으로도 연기를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보조강사로서 친절히 설명해주고 싶다. 지금은 10월에 있을 정기공연을 열심히 준비 중이다. 또 올해 일본으로 가서 공연할 수도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로 뻗어 나가는 좋은 배우, 좋은 강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소라 배우는 “현재는 보조강사지만 주 강사로 승격하고 싶다.”며 “내가 뮤지컬을 하며 성장한 것처럼 다른 발달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정범진 배우는 “정규강사가 되고 싶다.”고 짧고 굵게 답했다.

 마지막으로 이한길 배우는 “정규강사가 일단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안정되면 소설이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책을 내고 싶다.”고 창작 욕심을 드러냈다.

 한소라 배우, 정범진 배우, 민정기 배우 그리고 이한길 배우는 앞으로도 꾸준히 연기할 것이며 많은 뮤지컬을 무대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연기는 수많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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