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 저하 이용한 스마트폰 계약’ 취소 가능토록 법 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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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 저하 이용한 스마트폰 계약’ 취소 가능토록 법 개정해야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1.10.07 10:34
  • 수정 2021-10-08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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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스마트폰 개통 피해 근절 방안은?> 

일상에서 필요한 스마트폰 개통, 금융거래, 보험계약 등 사회적 경제활동들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장애인의 자기결정 영역에 속하지만 이러한 자기결정권을 악용해 장애인을 착취하는 행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장애인 스마트폰 개통 피해 근절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주최로 9월 28일 열렸다. 이재상 기자

 

“피특정후견인 30%가 휴대폰

개통계약 잘못 판단으로 채결

40%가 판매직원 권유로 안맞

는 요금제-결합상품에 가입”

 

영국, ‘비양심적 거래행위’ 취소

가능…계약체결 과정에서 조언

통한 불공정 해소 원칙을 인정

 

∎윤태영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륵정 후견인과 같은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은 제한능력자가 되지 않는 한 일반 소비자 거래와 관련해 현행법상 구제 방법이 없다.”며 “이로 인해 장애 정도가 약할수록 더 많은 피해를 입는 상황”임을 밝혔다.

복지부 지정 공공후견인 양성기관인 장애인부모회와 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가 지난해 10월 특정 후견인 2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피특정 후견인 30%가 휴대폰 개통계약을 잘못된 판단으로 채결했으며 40%가 판매직원의 권유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요금제, 결합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경증장애일수록 피해가 큰 것으로 조사됐는데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 구입을 하는 경우’인 낮은 단계의 경제활동보다 ‘휴대폰 구매나 렌털 계약 등 필요에 따른 계약을 하는 경우’처럼 높은 단계의 경제활동을 하는 피특정 후견인들이 불필요한 휴대폰을 개통하는 비율이 높았다.

현행 민법상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의 경우 법률행위를 할 여지가 거의 없는 데도 취소권이 인정되는 반면 경증에 해당하는 피특정 후견인은 자유로운 사회생활로 인해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지만 취소권은 없다.

소비자 3법(할부거래법, 방문판매법, 전자상거래법)에서의 청약철회권은 7일~14일로 짧아 청약철회권 행사 제한사유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현행법상 일반거래의 보호수단인 ‘의사무능력’은 증명이 어렵고 ‘착오에 의한 취소’의 경우 요건이 엄격해 활용이 어려우며 ‘불공정한 법률행위’ 또한 대가의 현저한 불균형은 없는 상황.

약관거래법의 경우 통신 3사 모두 표준 약관을 이용해 단순 고지를 통한 형식적 의무를 부과할 뿐 장애인을 대상으로 특별한 설명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으며, 계약 채결 시 부정가입 시스템을 이용해 고객이 제시한 신분증을 스캐너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지면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윤 교수는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과 같이 제한능력자로 분리해 취소권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줘 피해를 예방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며 영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의 경우 제한능력자 제도와 의사무능력 법리를 적용하지 않는 반면, ‘비양심적 거래행위에 대한 취소법리’를 인정해 상대방의 약함이나 도움이 절박한 상황을 알면서도 자신이 유리하게 이용한 경우 합리적이고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를 통해 계약 당사자 간의 불균형·불평등·격차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경우 계약의 유효함을 주장하는 측에 입증책임을 부과해 공평,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계약이 이뤄졌음을 입증 못 할 경우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또한 영국 판례는 ‘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조언을 통한 불공정 해소 원칙’을 인정해 문맹과 경제적 곤궁, 사회적 취약계층과 우월적 입장에 있는 자와의 거래계약 채결 시 제3자로부터 조언을 받을 것을 촉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여기서 제3자는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뿐만 아니라 친족, 후견인 등도 무관하며 거래의 상대방이 중립적이고 적절한 조언을 받게 하면 그 계약은 유효하고 취소할 수 없다.

윤 교수는 “발달장애인과 같은 피특정 후견인에게 무조건 취소권을 인정해 제한능력자로 낙인찍고 거래의 안전을 해치면서까지 피특정 후견인을 보호하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등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한 비양심적 거래이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며 그 대안으로 현행 발달장애인 권리구제 및 지원법에 ‘발달장애인의 계약 상대방 주의의무’를 부과해 상대방이 발달장애인의 판단력 저하를 이용해 법률행위를 할 경우 그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 개정을 통한 규율이 어렵다면 최소한 가장 피해가 극심한 스마트폰 계약에서만이라도 약관 등에서 보호자의 조언을 받도록 연락을 취하는 방향으로 규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장애인 상대 스마트폰 반복적

으로 개통시키거나, 태블릿PC-

스마트워치 등 끼워팔아 피해

 

장애인소비자연합, 8개월간

70건 이상 피해사례 접수-

피해금액 2억3천만원 추정

발달장애인 피해 54.3% 차지

 

∎김태표 장애인소비자연합 사무총장은 “최근 장애인을 상대로 짧은 기간 동안 통신기기를 반복적으로 개통시키거나, 태블릿PC, 스마트워치 등을 끼워팔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장애인에게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가중시키는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장애인소비자피해상담센터에는 2020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8개월간 70건 이상의 피해사례가 접수됐고 피해 금액은 2억3천만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마트폰 개통 피해 접수 70건 중 발달장애인이 54.3%로 가장 많았고 시각장애인 15.7%, 정신장애인 12.9%, 지체장애인 11.4%, 뇌병변장애인 4.3% 등으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47건의 피해 발생 원인별로는 ‘스마트폰에 대한 호기심 등 본인 스스로’가 27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리점 호객’ 11건, ‘가족을 포함한 지인의 강요’ 9건으로 피해 원인이 다양했다.

피해 신고는 ‘가족이나 지인’이 25건, ‘복지관 등 타 기관’ 12건, ‘본인 스스로’ 10건이 이뤄졌는데 대부분이 피해 발생 후 상당 기간이 경과된 상태였다.

김 총장은 “장애인에 대한 스마트폰 불법개통으로 일가족 모두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명의도용, 폭력, 협박, 갈취 등의 범죄로 피해가 확대되는 등 그 정도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피해 사례를 소개했다.

중증지적장애인 A 씨는 휴대폰 대리점에 매월 방문하라는 호객행위에 꼭 가야 하는 줄로만 알고 방문했다가 단기간에 기기변경 2회, 태블릿PC, IPTV 등 8회를 개통하고 돈을 주겠다는 말에 사용하던 인터넷을 취소하고 신규 가입해 약 970만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A 씨 취업을 위해 스마트폰 미납요금 150만 원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활동지원사가 다중 가입 사실을 발견하고 복지관과 상담, 센터에 피해구제를 요청했고 대리점과 피해액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SKT, KT, LG U+ 이동통신 3사의 경우 장애인에 대한 스마트폰 개통 피해에 대해 대리점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본인 직접 서명으로 계약이 유효함과 준 사기성 대리점 판촉은 직원 문제라 주장하며 관리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김 총장은 “사후에 조치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지적장애인 대상 특이 가입 건에 대한 통신사 ‘검증 가이드’ 도입, 장애인 전담 피해구제센터 육성, 제도적 보완 등 사전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대전화 부정개통 방지위해

가입 회선수 및 초과개통

허용 기준-사업자 통합 회선수

제한하는 제도개선 추진 중”

 

“장애인기본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통피해 최소화할

사전적 조치를 검토하겠다.”

 

∎이정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이용제도과 과장은 “스마트폰을 통한 경제, 사회적 활동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스마트폰 개통 사기에 대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발달장애인 휴대폰 개통 사기를 사전적 예방하기 위해 대리인 동행을 요구해 왔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차별에 해당한다는 결정이 나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가입 회선수를 제한하고 초과개통 허용 기준도 제한하고 있다. 또한 통신사를 달리해서 다량으로 회선을 개통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자 통합 회선수도 제한하는 제도개선도 추진 중이다.

이 과장은 “장애인 스마트폰 개통의 사전적 프로세스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면서 “다만,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러한 개통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전적 조치를 검토하겠다. 발제에서 제기된 보호자에게 조언을 듣는 정도까지는 대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복지부와 협의해 개선방향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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