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역사의 빗장을 연 선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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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역사의 빗장을 연 선구자들!
  • 편집부
  • 승인 2021.02.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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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전남직업능력개발원장 오창식

 

인류의 역사는 자유 그리고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끝없는 투쟁의 필연적 역사이다.

인류의 간절한 소망인 모두가 행복한 세상! 온갖 고난과 핍박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시지푸스(Sisyphus)처럼 비록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인류의 이상향인 유토피아 세계를 향한 인류의 꿈! 피로 얼룩지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평등!

이런 이상향의 꿈이 언젠간 반드시 실현되리라고 확신의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공정한 평등을 누리고, 모두가 최대의 자유를 보장받고, 모두가 최대의 보편적 인권으로 존중을 받는 세상을 향한 갈구는 인간 존재의 본능적 역사 진행이다.

억압이 없고, 차별이 없고, 불평등이 없는 행복한 세상은 모든 인류의 꿈이다. 비록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할지라도 인류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수 천년을 투쟁하면서 역사의 페이지를 계속 수정해나가고 있으며, 그 족적은 빼꼭히 기록되어 후손들에게 교훈의 지침서가 된다.

이상향을 위한 꿈의 실현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성취는 피로 얼룩진 고통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여성이건, 흑인이건, 장애인이건,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이상향의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매 있어 필연적인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절대적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근간으로 한 천부적인권의 획득은 역사의 진보에 있어 인류 최초의 달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그 이상의 역사의 대 전환이다.


핍박과 억압 그리고 차별의 불평등으로 얼룩졌던 기나긴 인고의 암울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홀로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 선구자적 인물은 별 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수 없이 많다.

이중 불평등(不平等)한 어두운 세상에 굳은 신념으로 굳게 닫힌 어두운 빗장을 연 위대한 선구자를 굳이 뽑는다면 첫 번째로 ‘양성평등’을 외롭게 실천한 이탈리아의 여의사이자, 교사인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를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흑인인종차별에 비폭력저항의 철학으로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위해 평생을 바친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목사일 것이고, 마지막으로 '장애인의 인권과 권리주장‘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장애인당사주주의를 내세운 장애인자립생활(Independent Iiving)의 아버지라 불릴 수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인 에드워드 로버츠(Edward Roberts)를 둘 수 있다.

역사는 변화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암울한 시대에 마치 해성같이 나타난 이런 선구자들의 외로운 투쟁이 있었기에 진보가 가능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켜켜이 싸여온 낡은 관행의 구체제(ancien régime)을 변화시키는 인물은 수많은 사람들 중 1% 사람이 아니라 0.001%의 극소수 인물이 진보의 변화에 견인 역할을 한다.

이들의 확고한 신념은 역사의 흐름 속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변화의 물꼬를 트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밝은 미래는 항상 열려있다고 확신한다. 인류는 항상 꿈을 가지고 희미한 불빛과 같은 미래를 성취하는 존재다.

먼저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 있어 “성의 구분은 부차적인 것일 뿐, 인간이 먼저”라는 양성평등을 위해 해성같이 나타나 진보의 대 전환 계기가 된 인물이다

성(Gender)에 의한 남녀 차별만큼이나 역사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가장 고난의 길을 걸어온 것은 없다.

국가라는 형태가 이루어진 고대부터 여성을 가축과 비슷한 존재로 취급해왔던 남성 우월중심의 가부장제는 인간이 소유의식을 느낀 이후로 역사상 가장 큰 권력 투쟁으로 성을 대상으로 즉 남성이 여성을 종속 하에 둔 것이 아닌가 싶다.
21세기 오늘날에도 미국은 결혼하면 여성은 남자의 성(남자의 이름) 을 따르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아 선호사상의 대표적 축하 한자성어로 남자아이일 경우 “농장지경(弄璋之慶)” 여자아이일 경우 “농아지경(弄瓦之慶)”이란 축하 표현을 사용한다. 즉 여자아이는 瓦(와)자를 쓰고, 남자일 경우 장(璋)자를 쓴다. 대부분 남성의 우월성이다.


여성의 해방은 끔찍이도 기나긴 투쟁의 과정이었다. 남성에 종속된 여성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과 참여권을 성취한 오늘날까지도 선진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지구촌의 어느 문명이든 간에 여성에 대한 평등은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에 있다.

완력(腕力)의 시대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자는 완력과 권력으로 여성을 종속 지배하는 성의 지배적 습성 문화 유전자(맴(meme): 문화도 맴이라는 유전자를 통해 전달된다는 이론)가 잔존하고 있기에 21세기 지금의 사회도 불안정하다. 아마도 양성의 완전한 평등은 제4차산업 이상으로 인류 발전에 획기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당연지사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수가 없다. 선진국은 오랜 역사의 대립과 갈등 속에 진보의 변화가 추동하는 과정에서 끝임 없는 시행착오로 양성평등을 꾸준히 개선해 온 반면, 우리나라는 너무나 짧은 기간에 변화를 맞이했기에 불안정한 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금도 역시 완력과 권력을 이용한 성희롱 성폭행이 하루가 멀다 언론에 기사화 되고 있고, 직장에서의 유리천장의 차별 또한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에 대한 종속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모든 인간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정의(Justice)를 최우선 목적으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종속을 강력히 옹호했으며, 모든 인간의 사랑을 외치던 종교에서조차 여성의 접근은 패쇄적이었다. 마치 여자인 영웅 잔 다르크 (Jeanne d'Arc)를 악마로 화형에 처한 가돌릭 종교에서 바로 여성의 금기, 폐쇄성이 상징이다.

성에 대한 불평등의 오랜 투쟁을 통해 역사는 마침내 근대에 접어들어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그리고 자유를 강조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마침내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사회진출 기회와 정치적 권리 부여를 주장하게 이른다.

이로 인해 여성의 사회참여가 획기적인 전환의 결정적인 계기기 되었고, 특히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의학박사이자 교사인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이다.

당시에는 여자가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대였고, 그 험난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 어렵고도 험난한 남성전용 의학부에 입학해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가 됐다. 영성 평등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 시대에 여성의 사회참여가 얼마나 험난했던가는 그녀의“나는 여자(女子)의사가 아니다. 나는 단지 의사이고 공교롭게도 여자일 뿐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사회, 문화 환경을 지배한 여성에 대한 사회참여의 배제 그리고 성에 대한 차별이 어떠했던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양성평등에 의한 사회적 참여의 근간인 투표권 권리를 행사한 것도 그리 먼 과거는 결코 아니었다. 여성해방이 단체를 이루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인류의 보편적 평등을 향한 진보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진통과 시련을 겪어왔던 것이다. 아마도 인류가 성간의 갈등과 대립의 종식 그리고 성간의 화합과 연대가 전 인류 역사에서 엄청난 대전환점이라 생각해도 지나친 과장된 생각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성간의 평등과 화합은 인류 문명사를 다시 기록해야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평등과 사회참여가 인류의 진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반증하는 일련의 실례가 오늘날 구체화되고 확대되어가고 있는 양성평등기본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법률 등이다.

이런 법들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참여 그리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계속해서 낡은 것을 밀어내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진보하고 있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인내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해성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는 아마도 남녀 성 간의 보편적 평등과 자유 그리고 인권을 공유하는 진정한 연대를 통해 감히 생각하지 도 못할 정도로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평화의 새장이 열릴 것이다.


두 번째로 “개인의 꿈은 우리 모두에게도 간절한 꿈”이라는 인종간의 불평등의 극복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하나 뿐인 이성을 가진 종이다. 이성(理性) 은 곧 경외(敬畏)로 이어진다. 바로 사유의 습성과 이성에 의한 도덕적 판단을 인간만이 할 수가 있다는 것과 또 사랑을 느끼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유일한 인간은 같은 종, 같은 이성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얼굴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흑인들은 노예로 오랜 세월을 한과 서러움 그리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착취와 학대의 고통을 받아야만했다.

이 사건 또한 역사에서 여성의 불평등 다음으로 버금가는 근대 인류 역사에 가장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비극적 대사건이었다.

같은 인간이면서도 단지 피부색깔이 다른 이유로 비인간적인 착취와 학대 그리고 차별에 불복하고, 흑인들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회복을 위해 평생을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맞선 위대한 인물이 있다.

흑인 인권 회복을 위해 더 나아가 인류의 화합을 위해 역사의 새장을 연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킹(Martin Luther King) 목사가 아닌가 싶다.

그의 외롭고 험난한 투쟁은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오랜 암흑의 빗장을 풀고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드디어 1863년 1월 1일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n Lincoln)은 인류 역사상 인종차별을 종언하는 노예해방선언에 서명을 한 것이다.

그 당시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기 전 “내 평생 이 선언서에 서명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은 한 적이 없다. 이일로 내 이름과 영혼이 역사에 길이 새겨질 텐데, 서명할 때 손이 떨리면 앞으로 이 서류를 본 사람들이 내가 주저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돼 노예로 미국으로 팔려 건너온 쿤타킨테(kuntakinte)의 후손들이 마침내 노예에서 당당한 시민으로 그것도 인권이 회복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런 역사적 선언으로 인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을 회복하는 불꽃은 저 멀리 남아프리카에서도 시작된다.

인종차별의 비폭력 저항으로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Nelson Rohihlabla Mandela)이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며, 또 미국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흑인대통령이 탄생되었다. 이런 사건들은 결코 역사의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매년 1월 첫째 주 월요일을 ‘마틴루터킹 데이’라는 국경일로 지정해 그를 기념하고 있다. 특히 그의 위대한 승리는 바로 그의 연설문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위대한 역사의 업적이요 승리이다. 아니 우리 인류 모두의 승리이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삶과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하는 약속을 얻어낸 것이다. 흑인의 인권회복을 위해 외롭게 세상과 맞서며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인종차별의 역사적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인권회복을 위한 외롭고 끝없는 열정과 신념의 혼은 길이길이 남아 인류가 보다 완전한 평등 그리고 모든 인류의 평화로운 연대를 이루는 것을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인류의 존엄성 그리고 보편적 평등이라는 사회로 진보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면서 결코 꿈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로 국가 간 간 이동이 자유롭게 가속화되고 있는 공간적 변화에서 다문화 확산, 다양성 존중을 생각해보자. 역사의 필연성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자랑했던 백의민족, 단일민족의 자긍심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모든 인종을 포용하고 또 존중하는 것을 역사에서 다시금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버클리 대학의 전신마비 장애인 에드워드다. 그는 장애인의 인권과 장애인의 복지접근 방식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장애인도 당연히 사회참여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이를 위해 국가는 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무를 담고 있다. 장애인 복지정책의 이정표를 남긴 루즈벨트 대통령이 바로 장애인 당사자라는 것이 오늘날 장애인 정책에 있어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는 어쩌면 역사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국가가 수혜적 대상으로 일관해왔던 일방적 장애인복지 정책의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역사적 계기는 당시 버클리 대학의 재학생인 전신마비 에드워드 로버츠(Edward Roberts)에 의해서이다.

사회복지가 앞서 언급한 것 같이 어느 정도 발전했으면서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약자의 권리 및 평등 그리고 사회참여가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과 배제라는 편견에 기인한 것이라는 냉철한 현실의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그는 고등학교 체육점수가 없어서 규정상 대학교에 입학 할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이런 불공정한 배제에 대해 당연한 권리주장을 했고 학교 측과의 협상 끝에 마침내 버클리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에드워드는 졸업 후 장애인 자립센터를 설립하게 된다. 에드워드는 자립생활 운동을 차별과 분리에 항거하며 사회적 책임과 기쁨을 공유 할 수 있는 장애인의 권리 능력에 대한 확인이라 했고, 넓은 의미에서 장애인들의 시민권 운동이라 했다. 에드워드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에드워드의 영향으로 마침내 우리나라도 장애인의 인식과 접근에 있어 재활이 아니라 자립으로의 ‘장애인당사자주의(Independent Living)’가 자리매김하게 된다. 장애인 스로가 판단하고 해결하는 자조, 자립의 이념적 철학으로 정립되고 확산되면서 장애인 복지에 대한 새로운 역사의 지평선이 열리게 된 것이다.

‘장애인당사자주의’의 이념적 실질적 새로운 접근! 그동안 일방적 수용적 접근에서 장애인에 대한 문제 해결 방식을 장애인 스스로가 접근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오늘날 장애인의 보편적 인권과 평등 그리고 권리에 대한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틀이 된 것이다.

21세기 인류의 문명의 최 정점에 선 오늘날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자유, 그리고 인권, 완전한 참여는 아직도 불안정하지만 역사에서 보았듯이 미래에는 더욱 발전하고 또 발전할 것이다. 변화는 역사에서 멈추는 법이 없다. 완전한 평등으로 자유가 충만 되고, 인권이 존중되는 인류 연대의 꿈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발전은 위대한 모험자의 열정과 신념으로 피를 흘리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년의 확신을 저버리지 않고 실천하기에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자유와 평등, 완전한 인권이 보장되는 행복한 세상으로 유토피아의 열망은 끝이 없이 진보에 진보를 거듭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유일하게 꿈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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