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 위해 고안된 ‘아름바둑’을 아나요
상태바
자폐인 위해 고안된 ‘아름바둑’을 아나요
  • 배재민 기자
  • 승인 2021.01.21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폐인(自閉人)의 한자를 풀이하면 ‘스스로 문을 닫은 사람’이란 뜻이 된다. 이는 자폐증을 겪는 사람들이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붙여졌다.

바둑은 흔히 우주에 비교된다. 19x19 크기의 바둑판은 드넓은 우주의 공간이고, 바둑판 위에 착수되는 돌들은 우주를 빛내는 별이다. 바둑돌이 놓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수보다 많다.

우주는 곧 세상이다. 그러므로 자폐아동이 바둑을 둔다는 것은 결국 세상과 소통을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본지는 자폐인들을 위해 고안된 ‘아름바둑’을 이번 호를 통해 소개하려 한다. - 배재민 기자

 

발달장애인, ‘바둑’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현재 후원하는 ‘아름바둑’은 자폐인들과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고안된 바둑이다. 바둑의 기본 원칙은 최대한 살리되, 어려운 부분들은 없애버리면서 자폐인과 발달장애인들이 쉽게 규칙을 배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자폐아동과 발달장애아동들도 10분만 배우면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일반 바둑에는 없는 숫자와 스코어보드, 자석과 색상대비 등을 활용해 자폐아동과 발달장애인들의 학습방법에 알맞다.

 

기본 바둑규칙은 간단하지만

자폐아동들 이해하기 어려워

일반바둑과는 다른 규칙 적용

 

바둑 규칙은 장기나 체스에 비교해 간단하다. 장기와 체스는 패마다 이동규칙이 있지만, 바둑에는 그런 것이 없다. 바둑판 위에 번갈아 가며 돌을 올려서 상대의 돌을 가지고 온 뒤 상대보다 더 많은 집을 만들면 이기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런 바둑의 추상성과, 바둑이 요구하는 직관력은 자폐인들과 발달장애인들이 바둑을 배우기 힘들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래서 아름바둑은 일반 바둑이 가진 추상적 개념은 모두 없앴으나 바둑의 본질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우선 기존의 바둑처럼 각자 수준에 맞는 난이도가 조절 가능해 저기능과 고기능 모두에게 적절한 수준에 맞추어 즐기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함께 둘 수 있다. 또한, 돌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무한대로 많은 변화를 끌어내서 지루해질 틈이 없다.

마지막으로는 구경하는 재미다. 기존의 바둑은 바둑을 직접 두지 않아도 규칙만 알면 옆에서 구경만 해도 재미있다. 이 재미는 아름바둑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아름바둑 교육을 둘러보면 대국을 구경만 하고 심판을 보려고 하는 학생들도 꽤 있을 정도다.

이렇게 아름바둑은 기존 바둑이 가진 고유한 특성은 다 가지고 있지만 규칙은 다르다. 가장 큰 변화는 바둑판의 크기다. 아름바둑은 19줄의 바둑판이 아닌 11줄의 바둑판을 사용하며 숫자 자석을 놓는 등 특별 고안된 바둑판을 사용한다.

기존의 바둑처럼 빈 공간에서 처음부터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닌 바둑판 위에 바둑돌 대부분을 미리 둔 상태, 즉 끝내기에서부터 시작한다. 포지션은 중재자(심판)가 미리 정해준다.

플레이어가 둘 수 있는 바둑돌의 개수도 한정되어 있다. 4개에서 7개 정도의 바둑돌을 사용하면 바둑이 끝나는데 한 번 둘 때 2수 이상의 돌을 연속해서도 둘 수 있다. 각자의 집은 대국 중 숫자 자석으로 표시된다.

바둑돌 위에서 죽은 돌(사석)과 바깥으로 들어내는 사석을 구분하지 않고 죽은 돌은 바로 들어내어서 상대방 집을 메꾼다.

또한 스코어 보드가 존재해 누가 이기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일반 바둑과 가장 다른 점은 심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스코어와 승패를 심판이 기록하며 선생님이나 대국자가 심판을 겸할 수도 있다.

 

자폐아 교육에도

많은 성과 있어

 

아름바둑은 놀이이자 승부를 가리는 게임이면서 자폐인, 발달장애인들의 교육에도 충분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둑이 대표적인 인지학습 도구로 생각하기, 기억하기, 판단하기, 계산하기, 상대 수를 예상하기 등 여러 분야의 두뇌를 사용하게 된다.

또한, 비슷한 또래의 같은 발달장애인, 자폐아동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발달장애인의 상호작용에 적합함을 보였다.

이어 한 수를 둘 때마다 플레이어는 중재자의 여러 가지 지시사항을 듣고 수행하게 된다. 이는 세분화되고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같은 지시사항을 다른 언어를 통해 이해하고 이행할 수 있게 된다.

바둑을 진행할수록 아동들이 바둑판을 응시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도 확인되었다. 규칙을 더 이해할수록 더 향상된 초점 맞추기 결과가 나타났으며 이는 바둑에 집중해 있는 시간 동안 상동행동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어 연기 대국(2명이 한 팀인 대국)을 통해 눈치 보기(도움 요청)와 훈수하기(도와주기)가 나타나 협동심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정신적인 면뿐만 아니라 바둑돌과 숫자 자석을 지속해서 정확하게 위치에 옮김으로써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며 바둑판의 면적과 숫자의 크기를 통해 수의 의미를 배우기도 한다. 이어 상대방 차례일 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바둑이 끝난 후 바둑판을 정리하고, 상대에게 인사하기 등 바둑을 통해 기본적인 예절교육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바둑은 신이 준 선물”

김명완 8단/아름바둑 창시자

 

김명완 8단은 아름바둑의 창시자다. 그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에서 바둑을 보급하는 일을 했다. 그즈음 김명완 8단의 제자가 경증자폐인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바둑이 자폐아에게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규칙을 쉽게 해서 자폐인을 위해 바둑을 설계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김명완 8단은 “제자의 제안이 계기가 된 것은 맞다. 하지만 처음 시작한 2017년부터 약 6개월간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설렁설렁했다. 일반 바둑판 가지고도 가르쳐보고 하다 자폐아동들의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김명완 8단은 “자폐아이들이 피날 때까지 코를 파는 모습과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아무것 아니라는 듯이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마침 나도 애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더 아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름바둑을 만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반 바둑을 10년 넘게 가르치며 부모님들을 만나고 하는 건 잘 할 수 있었는데, 자폐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건 또 다른 세계였다.”고 증언했다.

“바둑이야말로 자폐아동들에게 가장 적합한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보드게임에는 룰북이 있다. 그것이 있는 순간 자폐아들은 그 게임에 접근하기 힘들어진다. 신체를 사용하는 게임도 그렇다. 간단한 가위바위보마저도 준비 동작 하기가 어려워 게임에 힘들어 한다. 하지만 바둑은 고수가 되긴 어렵지만 룰 자체는 간단하다. 그저 돌을 바둑판 위에 얹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르친 자폐아동들은 바둑이 그들이 첫 번째로 접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바둑에 재미를 느끼고 빠져든다. 평생 한 번도 게임을 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전문성을 가지고 도움을 준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영광이다.”

아름바둑이 고안된 지 만 2년이 지났다. 김명완 8단을 통해 아름바둑을 배운 학생들은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김명완 8단 혼자 하다 보니 보급에 무리가 생긴다. 아름바둑은 기존의 바둑과 다르게 두 명의 선수 옆에 심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명완 8단은 다른 프로기사 13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13명이 가르친 지 반년이 지났다. 그는 “아름바둑을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는 것이 단기 목표다.”고 말했다.

 

김명완 8단은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가르친 적이 없다.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로 가르쳤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에게까지 그렇게 강요할 수 없다. 나도 평생 무료로 가르칠 수도 없다. 그래서 작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재정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보급하려면 예산이 늘어야 한다. 한국기원 측에서도 보급을 늘리려고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종 목표로 “세계적으로 아름바둑을 보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김명완 8단에게 아름바둑의 프로화에 대해 질문했다. 바둑 프로리그가 있으니, 아름바둑 프로리그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온 질문이었다. 또한 아름바둑 프로리그가 생기면 자폐인과 발달장애인들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름바둑이 프로리그가 생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시합에 중간이 없이 이기고 지고가 명확하게 나타나기에 프로리그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명완 8단은 이어 그가 느낀 자폐아이들이 가진 승부욕에 대해 설명했다. “자폐아이들을 옆에서 보면 승부욕이 없어 보이는데 절대 없지 않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승부와 먼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승부를 겨뤄본 적이 없으니 처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바둑은 승부를 겨루는 순간이다. 바둑으로 대결을 하며 성장해간다. 그래서 만약 프로리그가 생기면 토너먼트 방식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

김명완 8단에게 바둑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는 자폐아동들을 가르치며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짧게 바둑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바둑은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게임이다. 무려 4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바둑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어서다.”고 생각을 밝히며 “나도 원래 자폐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자폐인들이 바둑을 둘 수 있으리라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부모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바둑에 대한 경외심이 다시 살아났다. 그러다 보니 바둑은 신이 준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묘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