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안마는 생계가 아니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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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에게 안마는 생계가 아니라 생존!
  • 김용기/대한안마사협회 인천지부장
  • 승인 2020.11.06 09:28
  • 수정 2020-11-06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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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최창석 부장판사는 자격 없이 안마사 업무를 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안마사들은 경악과 분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각 지방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006년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만이 안마를 할 수 있도록 한 규칙을 위헌으로 판결하여 시각장애인들을 좌절시켰던 적이 있다. 당시 위헌 판결의 여파로 수많은 안마사들이 거리로, 국회로 헤맸을 뿐만 아니라, 세 분의 고귀한 생명이 꽃봉오리가 지듯 우리 곁을 떠나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하였다. 당시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위헌 판결 3개월 만에 국회는 시각장애인만 안마를 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 의료법 시행 후 비장애인 마사지사들은 헌법소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4차례(2008년, 2010년, 2013년, 2017년)에 걸쳐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이후 100여 년 이상을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고, 맹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는 등 시각장애인의 유일한 생존 직종으로 육성해 왔다.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한 2013년과 2017년 헌법재판소의 재판부는 “시각장애인 안마제도는 단순한 생계 보호를 넘어 시각장애인이 안마시술기관을 개설하여 운영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비장애인이 안마시술기관을 개설할 수 없게 된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비장애인의 사익이 공익에 비해 크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시각장애인 생존권이 비장애인 직업선택의 자유나 행복추구권에 앞선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생존권, 자아실현, 사회참여를 무시한 불법 무자격 마사지업자의 무죄 선고로 안마사들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안마사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불법 무자격 마사지업자들의 위헌제청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불법 무자격 마사지업소들과의 경쟁 등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안마사 제도를 발전시켜 시각장애인들의 건강한 직업재활제도로 승계해 나가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에,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얹게 된 것이다.

법률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수가 합의하여 지켜야 하는 약속인데 이번 판결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공동체의 약속보다 시장의 수요가 더 중요하다는 그릇된 정의를 보여주었으며, 공동체의 약속을 파기하여도 된다는 최악의 판결을 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안마사제도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고, 우리에게 직업을 제공한 국가와 사회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지속적인 헌법소원, 법원의 잘못된 판결은 안마사로서의 긍지와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을 짓밟고 있으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골방에 처넣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했고, 사회의 약자들이 사람답게 세상을 살 수 있는 길은 정의가 바로 섰을 때 가능하다. 법원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의가 정의답게 숨 쉬는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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