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영화인들이 설립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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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영화인들이 설립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 배재민 기자
  • 승인 2020.10.26 09:15
  • 수정 2020-10-2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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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화관 발권 데이터를 통해 집계한 연간 대한민국 영화의 총 관객수는 2억2천만 명이 넘는다. 국민 1인당 약 4.5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다. 미국영화협회에 따르면 한국 영화 시장 규모는 세계 5위다. 하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은 이 모든 기록에서 소외돼 있다. 배리어프리 영화의 대중화는 여전히 멀다.

하지만, 모든 대중의 차별 없는 영화관람을 위해 배리어 프리를 꾸준히 제작, 배급, 상영하고 배리어프리영화제를 기획하는 단체도 있다.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그렇다. - 배재민 기자

 

장애 아닌 ‘비장애 영화인들’이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아니더라도 배리어 프리 영화를 제작하는 곳은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한국농아인협회도 있다. 이들은 작년 ‘가치봄’을 설립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이들과 차별되는 것은 장애인단체가 아닌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모여 배리어 프리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과 한국에서 유일하게 외화를 수입해 배리어프리 영화로 제작한다는 점이다.

 

일본 배리어프리영화제

초청받은 이은경 초대

대표 경험에서 시작돼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시작은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초대 대표이던 이은경 전 대표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영화 제작자로 일본의 독립영화사 ‘시그로’와 주로 작업을 했다.

영화사 ‘시그로’의 야마가미 데츠지로 대표는 배리어프리영상연구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은경 전 대표는 야마가미 데츠지로의 초청을 받아 일본 작은 마을인 ‘사가하’에서 열린 배리어프리영화제에 참석했다. 이은경 전 대표는 배리어 프리 영화의 제작 주체가 장애인이 아닌 영화인이라는 사실과 장애인들뿐만 아닌 비장애인들이 다 같이 모여 배리어 프리 영화를 즐기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그 전에도 한국에는 장애인영화제가 없지는 않았다. 배리어 프리 영화라는 명칭도 있었지만 주로 화면해설, 자막영화라고 불리던 때였다. 또한 영화인들이 아닌 장애인들 당사자들이 제작을 진행했으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장애인뿐이었다.

이은경 전 대표는 당시 한국에도 장애인들은 어떻게 영화를 봤지라는 의문을 가지며 영화인들이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4월, 독립영화를 배급하던 사람, 영화 제작자, 시네마테크 기획자, 영화제 기획자 등이 모여 배리어프리영화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그해 10월, 제1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개최함으로써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시작을 알렸다.

 

영화인이 만드는 배리어프리

영화는 연출자 의도가 선명해

 

아무래도 비장애영화인들이 배리어 프리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 사업 초기엔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 때문에 고충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측은 “장애인들 때문에 고충을 받은 적은 없다.”고 잘라 말하며 “영화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장애인일 뿐이며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영화에는 감독의 의도가 있다. 이는 일반 관객들은 파악하기 힘들지만,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측은 “이 지점에서 영화인들이 배리어 프리 영화를 제작할 때의 장점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한국 영화를 제작할 때에는 영화를 연출한 감독과 작업하는 것이 원칙이다. 영화를 만든 본인이 배리어 프리 영화를 연출하면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이 영화를 감상할 때 훨씬 깊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화는 감독을 섭외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화라고 해서 한국 영화랑 크게 다르지 않으니, 영화의 분위기나 상황에 맞춰 해당 영화와 가장 잘 맞는 감독을 선정해서 제작을 진행한다.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과정

 

배리어 프리 영화는 화면해설(시각장애인)과 자막영화(청각장애인)로 나뉜다. 배리어 프리로 제작할 영화가 선정되면 배급사나 제작사에 문의해 영화 소스를 받는다. 영화 소스는 영상, 대본, 사운드로 나뉜다. 사운드의 경우 대사, 현장음, 효과음 등 모든 소리가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외화의 경우, 한국 배급사가 소스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원제작사에 연락 후 구입해 사용한다.

화면대본과 자막대본은 따로 제작된다. 외화는 더빙 대본도 따로 제작한다. 화면대본과 자막대본은 작가가 따로 작업하지만, 더빙 대본은 주로 번역가가 작업한다.

대본은 연출 의도를 제대로 담기 위해 영화감독이 감수를 본다. 그렇게 대본이 준비되면 녹음실에서 성우들과 더빙을 시작한다. 외국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미 한국어로 더빙된 버전을 사서 쓴다.

더빙이 끝나면 배우들을 섭외해 화면해설 내레이션을 녹음한다. 섭외 배우들은 대부분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들이다.

녹음이 끝나고 음향감독이 원 소스와 화면해설 녹음본 소리를 믹싱을 하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영화가 완성된다.

그러고 나서 완성된 농인을 위한 자막대본으로 자막을 삽입한다. 농인을 위한 자막 버전에는 화자 정보(화면 밖에서 대사하는 캐릭터들 정보 등), 소리 정보 등을 삽입하고 상영본으로 추출한다.

이 모든 소요시간은 한국 영화는 평균 8주, 외화는 12주 정도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장애인만이 아닌

비장애인들도 많이 즐겨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영화를 선정할 때 삼는 기본 원칙은 전체관람가로 볼 수 있는 가족 영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에 두세 편씩 배리어 프리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는 영화를 모두 제작하면 상관이 없으나 한정적인 예산 내에서 만들어야 하니 많은 사람이 즐기고 전 세대가 볼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해야 한다.

비장애인 관객 중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도 관람문의가 많이 들어오는데 학교 같은 경우 15세 이상 영화를 꺼리는 이유도 한몫한다.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비장애인 관객층은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도 특히 외화를 좋아하시지만, 자막이 있으니 관람하는 데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배리어 프리 영화에는 한국어 더빙이 되어 있으니 더 편하게 볼 수 있다.

이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장애를 넘어서 모든 사람이 다함께 영화를 즐기자는 취지와도 맞아떨어진다.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위해 필요한 것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 측은 “베리어 프리 영화 제작PD가 되거나 관련 일을 하고 싶으면 우선 영화 관련 지식이 있어야 하니 영화 전공자가 일하기 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굳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영화 제작과정을 안다던가 영화 제작 관련 기술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영화 제작만 하지 않고 배급, 상영도 같이 하며 기획도 한다. 제작의뢰를 받아 공연 영상도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제작할 때도 있다.

그래서 크게 제작팀, 기획팀, 홍보팀으로 나뉜다. 하는 일은 일반 영화 배급사와 비슷하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측은 “영화를 싫어하면 이 일을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해야 하며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꿈은 화면해설의 대중화”

강내영 화면해설 작가

 

강내영 화면해설 작가는 2013년부터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전속 화면해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지금까지 화면해설 대본 집필과 감수 200여 편, 편수로는 2000여 편을 작업한 베테랑이다. 또한 그는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라는 회사를 설립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제작하는 배리어 프리 영화의 화면해설을 후원한다.

강내영 작가는 저시력인이다. 강 작가는 화면해설 작가로 활동하기 전, 초등특수교육을 전공한 후 임용준비를 했다. 그런 그를 화면해설계로 이끈 건 그가 사랑하던 사람 때문이다. 강 작가가 사랑한 사람은 작가보다 더 앞을 못 보던 저시력인이었다. 강 작가는 “내가 보고 있는 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싶어서 화면해설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랑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강 작가가 말하는 화면해설 작업 시 가장 중요한 것도 공감과 이해다. “화면해설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공감과 이해 능력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문장 조합 능력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해설을 해야 한다. 보이는 대로 설명하는 게 아닌 극의 흐름에 맞게 ‘유의미한 영상 받아쓰기’ 작업을 해야 해서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해 퍼즐 맞추기를 하듯이 다양한 문장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느 기술과는 다르게 하면 할수록 어려운 작업이라 무엇보다 계속할 수 있는 지구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어 강 작가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꾸준히 작업하며 느낀 또 다른 점에 대해 설명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감독님과 배우님들과도 작업하는 기회를 얻었다.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고려해서 작업해야겠다는 점을 일깨워준 곳이어서 깜냥을 쌓을 수 있었다.”

강 작가는 올해로 8년 차를 맞이했다. 그의 초창기 화면해설과 현재의 화면해설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초기에는 흐름에 맞게 문학적인 표현들을 많이 썼지만, 지금은 영상에 맞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주관적 표현이 주입되어서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시각장애인이 직접 판단할 수 있게끔 해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강내영 작가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화면해설 방송작가 양성과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작업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설상가상 녹내장 진단까지 받아서 꿈을 접으려 하기도 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의뢰한 영화 ‘터치 오브 라이트’의 화면해설 대본 감수 작업이다. “영화는 시각장애가 있는 대만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다룬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하고 싶으면 하라고, 날아오르라고 한다. 제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 작품이다.”

화면해설의 영역은 영화를 벗어나 전시, 공연 등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문화계에선 화면해설의 수요가 많아질 거라는 예측을 한다. 그로 인해 화면해설 작가도 점점 많아질 것이다. 강 작가는 먼저 화면해설이라는 단어를 정정하며 미래의 화면해설가가 될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했다.

“화면해설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단어이고, 외국에서는 오디오 디스크립션(Audio Description)이라고 해서 음성해설이라고 통용되고 있다. 화면해설이라고 하면 영상에 국한될 수 있어서 그렇다. 음성해설은 영상을 포함해 생활 전반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음성으로 해설해 주니 해설작가의 활동 영역이 넓다고 생각된다. 영상을 포함한 다른 장르의 분야별 전문가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전문성을 높여가길 권한다.”

해설의 영역이 점점 넓어짐과 동시에 강내영 작가의 꿈 또한 서서히 현실이 되어간다. 작가의 꿈은 ‘화면해설의 대중화’다. “‘모르면 오해, 알면 이해’라는 말이 있듯이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설명해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지금 하는 활동들이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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