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CRPD 선택의정서 비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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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CRPD 선택의정서 비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조성민 대표/더인디고
  • 승인 2020.10.08 09:19
  • 수정 2020-10-08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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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이 국회에서 비준되었을 때 장애인의 권리 보장과 존엄성이 한층 두터워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앞서 1년 전인 2007년에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그동안 기나긴 고난의 터널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축하와 기대감이 넘쳤던 때라 ‘완전한 장애인 권리실현’은 꿈이 아닌 듯했다.

시간이 흘러 2020년 한 해의 종착에 들어섰다. 당연히 시간에만 맡기지는 않았다. 끊임없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과 CRPD 민간보고서를 통해 이행을 촉구했다. 장애인협약은 2009년 국내 발효 이후 2년 내에 국가보고서를, 그리고 이후 4년에 한 번씩 정기보고서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유엔위원회)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비슷한 시점에 장애인단체 등 민간 차원에서도 당사국의 협약 이행사항을 점검,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 위원회는 국가보고서와 민간보고서 심의와 관계자 질의응답 등을 기초로 심의결과를 작성, 권고문을 공개한다. 그렇다고 권고문 자체가 법적 조치나 강제력을 띠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한 국가의 장애인 인권의 민낯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여길 사항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2011년 1차 국가보고서를 제출, 2014년에 유엔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바 있다. 한국정부가 유엔으로부터 받은 권고사항은 무려 58개에 달했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등 노동권과 △시설 중심의 정책들 △장애인등급제 폐지 등 협약 기반의 인권정책 수립 및 추진 등이었다. 지난해 등급제는 폐지되었지만 ‘심한·심하지 않은’으로만 바뀌었지 그 내용 자체를 들여다 보면 신통치 않다. 오죽하면 ‘가짜 등급제 폐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뿐인가. 법의 잣대로 해석되는 정당한 편의제공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A 씨는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타다가 틈새에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안전사고다. 피해자들은 해당 지하철에 승강장과 지하철의 간격이나 높이 차이가 기준 이상일 경우 안전장치를 설치하여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또 어떤가. 점자 선거공보물의 면수를 제한하고, 선거방송 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장애인의 참정권과 정보접근성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한두 달 전의 일이다.

1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노동권과 참정권, 정당한 편의제공 그리고 정보접근권 등에 대해 법원은 장애인을 외면하고 있다. 국내법이 외면했다면, 장애인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곳은 없다는 말인가. 피해를 당한 장애인 당사자가 국가를 상대로 저항할 무기가 없다는 말인가. 애석하게도 현재로서는 없다.

CRPD는 비준했지만 선택의정서는 여전히 유보 상태다. 권리협약 선택의정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국내 권리구제 절차를 모두 거쳤음에도 구제받지 못한 경우, UN에 권리구제를 청원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자 무기이다.

선택의정서에는 이와 같은 개인진정제도뿐 아니라 CRPD 본 조항에서 규정하는 장애인의 권리를 당사국이 침해했을 때, 혹은 중대하고 체계적으로 해당 조항 위반에 대한 정보를 위원회가 발견했을 때, 위원회는 당사국을 직권 조사할 수 있는 규정도 담고 있다.

즉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게 되면 개인적 차원에서는 실질적인 보상과 권리구제를 보장받을 수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는 법이나 제도, 인식 등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비준을 했더라도 이행강제수단이나 국가의 의지가 없다면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인권’을 아는 국가라면 피해자가 진정을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12년이면 충분하다. CRPD 선택의정서, 반드시 비준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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