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질문을 마음에 담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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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질문을 마음에 담아 보며…
  • 편집부
  • 승인 2020.08.11 09:40
  • 수정 2020-08-11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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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미/노틀담복지관 관장, 수녀

 

장애인복지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라는 단어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30년이 지났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으며 장애인 직업재활을 시작으로 함께 했던 이곳이 인천시의 지원을 받으며 장애인 지역복지관으로 전환되었다. 이용자들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준비하며 ‘하나 된 우리’라는 관훈 아래 장애인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는 노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또 내일도 변함없이 성실할 것이고 사명임을 인식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나 된 우리’라는 관훈이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정상화 이념을 바탕으로 동등한 삶을 지향한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만들었던 관훈이었지만 ‘사람은 누구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는 요즈음의 생각이 충돌을 일으켰다. ‘우리’라는 단어가 틀 안에 갇힌 모습으로 느껴진 것이다.

과연 나는 장애인과 하나이며 우리일까?

나는 장애인과 전혀 하나가 아닌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하고 배려하려 하고 함께하고 있지만 하나는 아니다. 내 마음에 언제나 남아 있는 30년 된 질문은 오늘도 나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기숙사가 있던 장애인직업재활기관에서 사감으로 일 할 때였다. 기관의 입구에는 중앙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수녀님 왜 나는 장애인으로 태어났나요?” 순간 나는 당황해 하며 글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며 대답했다. 그 친구는 앞에 있는 커다란 창문에, 조용히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필 왜 내가”라는 글씨를 쓰며…. 50대를 맞이해 살고 있는 그 친구는 그때의 질문을 기억하고 있을까?

30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대답을 찾지 못하고 난 오늘도 그때의 그 모습 앞에 서 있다. 그 친구와 하나 되지 못하고 될 수도 없는 나의 모습 앞에….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존중해 주며 상처를 아파해 주고 삶의 자리에 행복이 있기를 지원해 주고 싶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러한 지원을 받고 싶다. 너와 내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삶의 자리에 꽃이 되도록 연대하고 협력하며 살고 싶다.

장애인이란 단어도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도 왠지 마음에 걸린다.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안 될까? 또 다른 질문을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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