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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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인이라는 이름으로
  • 편집부
  • 승인 2009.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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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림/활동보조인

 꼭 한사람은 곁에서 돌봐주어야 하는 내 아들과 복지관에 드나들면서 잠깐씩이라도 일했으면 하는 생각, 보수가 없는 봉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내 아들에게 필요한 일들이기엡


  부평장애인종합복지관 현관에 활동보조인 1기 모집공고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력서를 적어 나갔다.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이 있다고 하여 내심 떨어지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었다.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다 서류전형에 합격했다고 내일 면접 보러 오라고… 매우 흥분되고 들떴다. ‘내가 이 나이에 내 아들을 위해 일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들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면접 질문 중 활동보조인을 선택한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인지 봉사적인 이유인지 면접관님이 내게 물으셨다. 난 ‘음료수 무지 좋아하는 아들 때문에 돈 벌고 싶다’라고 말씀드렸고, 그 날 저녁 합격 통보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길은 시작이 되었다. 함께 선택된 동료들과의 교육. 잘 잊어버려 메모하고 하나라도 놓칠까 봐 열심히 들어 내 것으로 만들려 애썼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교육과정들이었다. 하루하루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땅히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내가 교육 받으면서 내 아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강사님의 말씀 중 아픈 아이들이라고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교육을 마친 후 일을 시작함에 있어 많은 시간이 주어지진 않았다.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무엇보다 이용인이 원하는 시간들을 정확하게 지키고자 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이용인 중심의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맞춰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갈등도 있었지만 늘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는 담당선생님들과 동료를 생각하며 용기 잃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특별한 조건 없이 일할 수 있어 좋았고 또한 부평장애인종합복지관 소속으로 일한다는 게 뿌듯했다.


 나의 일과는 아침 일찍 아들과 함께 복지관 셔틀버스 타면서 시작된다. 오전에는 복지관 운동실에서 한 분의 운동을 보조하고, 오후에는 요일별로 2명의 이용인을 찾아가 함께 병원도 다니고, 시장도 다니고, 음식도 만든다. 이용인 3명을 담당하였기에 이동하는 거리도 많지만, 이것저것 경험하는 것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유익한 정보도 얻는다.


 나날이 표정도 밝아지고 달라진 이용인을 보면 절로 힘이 난다.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점은 의사소통이 아닐까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장애로 인한 언어소통의 문제. 그 문제의 간격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생각의 차이를 줄이고 이용인과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 아직 내겐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3년여 간의 활동은 내겐 힘이다. 여러 가지 배려 속에 일하고 대가로 받아 꼬박 모은 내 월급을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 주어 신명나게 해 주었고, 나의 미약한 힘이 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내었다.


 나에게 내 자신을 알게 해준 직업 활동보조인. 참으로 나를 다시 서게 해주는 힘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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