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배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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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배우가 되다
  • 편집부
  • 승인 2009.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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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몇 년 전 한 장애인단체의 지원으로 이탈리아로 단기연수를 간 적이 있다. 한 주 동안 장애인통합교육 현장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연수기간이 워낙 짧아 연수자체에서 특별한 것은 얻기 어려웠는데, 마지막 방문했던 한 고등학교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 학교 내의 연극동아리가 그러했다.


 그 연극동아리에는 지적장애, 지체장애 등 여러 유형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몇 명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동아리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단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한 팀에서 함께 활동한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동아리의 연극자체가 장애인학생들에게 특별한 자기표현의 기회를 준다거나, 혹은 장애를 하나의 주제로 삼는 ‘문화운동’적인 의미를 갖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 그대로 연극이라는 공연예술장르의 특성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사람들은 장애인의 스포츠나 연극 등을 바라볼 때, 언제나 ‘장애’라는 의미에 새겨진 고통, 극복, 숭고함과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그래서 장애인스포츠는 언제나 스포츠이기 이전에, ‘희망을 잃은 자들의 재기를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 쯤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의 스포츠에서, ‘장애극복을 위한 투지’와 같은 감상적인 코드를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휠체어 농구나 장애인양궁을 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는 환자들의 재활훈련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연극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장애인극단인 <휠>은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경험과 고민들을 연극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들은 각자가 갖는 독특한 체험들을 극화시키기 위해 ‘장애’라는 주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공연을 단순히 ‘문화운동’이라든가, 장애인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하는 심리치료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물론 연극은 그러한 기능들도 한다. 그러나 ‘휠’은 병원에서 잠시 만들어진 사이코드라마팀이 아니라, 정식 극단이다). 장애인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장애인들에게 자기표현의 기회를 주는 것 이전에, 극단 <휠>의 존재 의미는 연극 그 자체이다. 그들은 ‘장애인’ 배우이기에 앞서 장애인 ‘배우’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어떤 표현을 하고 있는지, 그 표현의 완성도는 무엇이며 주제의식을 표출하는 방식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배우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장애인들이 소속되어 있는 극단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연극동아리를 지도하는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가 극단에 장애학생들을 받은 것은 전혀 어떤 특별한 의료적, 정치적 목적을 갖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저 극단의 지도교사였고, 단지 그것에 지원한 장애학생들을 다른 학생들과 별다른 차이 없이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 그들의 장애가 갖는 특성들이 오히려 맡은 역할들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들이 발휘된 것이다. 그는 그러한 과정을 지적장애인의 재활이나 지체장애인의 자신감 회복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저 새로운 예술적 표현방식의 발견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연극은 연극일 뿐이다. 장애인스포츠도 ‘장애인’ 스포츠이기 이전에 ‘스포츠’ 그 자체이다. 그것이 선수들, 배우들,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특정한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며, 그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우리의 시각일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의 다양한 사회적 역할, 바로 그 ‘무대’위에 부여된 과도한 의미들을 거부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도 장애인들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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