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이 충만한 오월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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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이 충만한 오월이 되었으면
  • 오창식/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천지사 지사장
  • 승인 2020.05.25 09:33
  • 수정 2020-05-25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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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아랑곳하지 않고 반기는 파릇한 잎사귀에 형형색색의 꽃이 만개한 다양성의 설렘이 움트는 향연의 계절 오월 중턱이다.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마치 한낮에 오수(午睡)를 즐기고 기지개를 하는 듯하다.

5월이 유독 그 어느 계절과 달리 더욱 설레게 하는 것은 뭇 생명들이 제각기 온갖 다름의 모습으로 현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좁은 아스팔트 틈바구니에서도, 지붕 위 갈라진 틈새에서도, 골목길 돌담 벽 틈새에서도 움트는 생명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민들레, 냉이, 클로버, 쑥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의 생명은 참으로 다양하고 아름답다. 그렇다. 그 생명들이 유독 아름다운 것은 제각기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푸른 지구에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생명의 존재는 각기 모습이 다르기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다. 어는 곳에서도 피어나는 강아지풀, 민들레, 클로버, 쑥, 냉이 그리고 들판에 피어나는 패랭이꽃, 할미꽃, 제비꽃, 이 모두가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어 제각기 다름의 자태를 마음껏 드러내는 다양성의 오케스트라다.

인간 또한 다름이 있기에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다. 사람은 수천만 년이 지났으면서도 경이로운 생명의 다양한 모습에 익숙하지 아니하고 서름서름한 것이 참으로 가련한 생각이 간혹 들 때가 있다. 이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비교 지향적인 어리석음에서 온다. 조화는 다름에서 온다.

오늘날 우리는 문화를 등한시하고 모든 것을 문명의 잣대로만 비교하여 대립, 차별로 규정짓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문명의 진화는 다름에 기반한다. 문화로 인해 문명이 발전하는 것이다. 문명은 획일적이지만 문화는 다양성이 있다. 문명은 문화의 바탕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문화가 다양해야 문명이 발전할 수가 있다.

문화의 다양성, 인종의 다양성, 생물의 다양성, 그리고 모습의 다양성, 행동의 다양성, 사고의 다양성, 신체의 다양성, 개성의 다양성을 모두 인정해보자. 그러면 아름다움과 기쁨이 충만함을 느낄 것이다.

진정으로 주변 모두에게서 진정한 다양성을 느끼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교에서 오는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고 겸손해진다.

만약 인간사회에서 얼굴도 같고, 지문이 같고, 크기도 같고, 피부색도 같고, 모두가 명문대학교 출신이고, 모두가 부자이고, 모두가 심신의 불편이 절대적으로 없다면 과연 이 세상은 존재할까? 결코 이 세상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자기 자신의 존재 또한 인식할 수도 없고, 이성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는 평균적 인간, 평균적 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나 누구나 소중한 생명으로 상호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추상적인 허구의 평균 틀에서 벗어나 다름의 미학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자신의 불안전성도 인정하고 상호 보완적인 진정한 인간애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공유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장애인은 그냥 인간존재의 다름의 소중한 존재로,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은 단지 언어의 구별이지 인간의 구별이 될 수가 없다. 5월의 중턱에서 다양성이 충만한 긍정의 백신이 만개하여 저 민들레 홀씨같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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