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형제가 아닌 ‘나’로 살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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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형제가 아닌 ‘나’로 살아갈래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0.04.27 14:51
  • 수정 2020-04-27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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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형제 둔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착한 아이, 손이 덜 가는 아이, 책임감 큰 아이, 양보해야 하는 아이’란 표현은 장애형제를 둔 비장애형제들에게 그림자처럼 함께 붙어 다니는 수식어다.

그만큼 이들의 삶은 처음 시작부터 장애를 가진 형제를 지켜야 하는 존재라는 무게감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힘들다’라고 말하는 것이 죄책감으로 돌아와야 했던 수많은 시간과 인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던 이들이 ‘나도 여기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장애형제를 둔 비장애형제의 자조모임 ‘나는’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간단명료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나’에 대해 들어보자. - 차미경 기자

나는 로고
나는 로고

 

2015년 첫 발걸음

비장애형제들, 세상 문 두드리다

 

‘나는’의 공동대표인 이은아 씨는 지난 2015년 진로와 가족에 대한 고민이 겹치며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한테 의지하는 것은 멀게만 느껴졌던 그때 이은아 대표에게 든 생각은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궁금증만 있을 뿐 자신과 같은 환경의 사람들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장애형제들의 모임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그러한 정보를 찾을 통로조차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비장애형제인 박혜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됐고 두 사람은 정말 여지껏 느낄 수 없었던 깊은 공감과 유대감과 더불어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그 이후 설지영 씨와 송서원 씨 등 두 명의 비장애형제들을 더 만나게 됐고 자신들 모두가 ‘그동안 비장애인형제로서 살아왔던 경험과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구나’를 알기 시작한 것이 ‘나는’의 첫 시작이었다.

현재는 180명 넘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이 ‘나는’에서 함께 소통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고 있다.

비장애형제들의 모임
비장애형제들의 모임

 

자조모임 ‘나는’이 가지는 의미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나는(It’s about me!)’이라는 독특한 모임 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의무는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 주어가 되어보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 대다수의 비장애형제자매들은 힘들어 뵈는 부모님과 장애형제를 모든 결정과 생각에서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은 여기서 잠시 멈춰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언뜻 들으면 상투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비장애형제자매들에게는 시작을 낼 용기조차 갖는 것이 힘들 정도로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이야말로 모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It’s about me!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나는’이 만들어졌을 때 외부에서는 장애형제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의 모임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그 질문이야말로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이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It’s about me!)’은 장애형제를 위한 모임이 아닌 비장애형제를 위한 비장애형제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책 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
책 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

라디오 방송과 도서발간 등 활동

 

‘나는(It’s about me!)’은 단순히 자신들끼리의 소모임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또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나’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우선 온라인 활동으로 라디오 방송, 에세이 연재를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 방송 ‘나는, 잘 지내요’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모임을 중단하면서 비장애형제들과 소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마련한 채널이다. 비장애형제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드리는 코너와 비장애형제들의 고민을 함께 이야기해 보는 고민상담소로 구성돼 있다.

혹시 지금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다.

Ask(https://ask.fm/nanun_teatime)나 이메일(nanun.teatime@gmail.com)로 그동안 궁금했지만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면 ‘나는’을 통해 그 답을 들을 수 있다. 라디오는 매주 일요일 저녁 9시에 생방송을 진행하고 유튜브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브런치(https://brunch.co.kr/@nanunim)에서 비장애형제들의 진솔한 마음을 담은 에세이가 연재되고 있다. 이곳에 연재되는 글들은 ‘나는’이 진행한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던 비장애형제자매들의 글로 시간이 지난 후 추후 도서로 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표적인 오프라인 프로그램인 ‘대나무숲 티타임과’ ‘부모참여 교육’을 꼽는다.

‘대나무숲 티타임’은 비장애형제들이 6주간 다양한 자료와 활동을 기반으로 내 마음을 돌아보고, 나를 긍정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어느 마음 한 구석을 나 스스로가 돌보는 훈련을 하는 시간이며, 또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지지체계(Support System)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부모참교육’은 장애자녀와 비장애자녀를 동시에 양육하는 부모님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비장애자녀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들, 이들의 속마음, 부모님들께서 비장애형제와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들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걱정, 생각도 부모님과의 관계도 결국은 소통을 시작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It’s about me!)’은 자조모임을 통해 어떠한 큰 변화를 이끌어 낸다거나, 장애형제와 부모에게 ‘내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비장애형제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가진 고민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더는 것이 그들이 모임을 갖는 가장 큰 의미다.

‘나’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 이것이 어쩌면 이들이 장애인 가족으로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It’s about me!)’은 그들에게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주기 위해 오늘도 문을 열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뷰

 

“건강한 가족을 위해서는 ‘나’부터 건강해져야 해요”

이은아 / '나는(It’s about me!)’ 공동대표

 

Q. 함께 했던 ‘나는’의 회원들과 많은 대화 속에서 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무게’, ‘고민’ 중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인가요?

비장애형제자매들이 각자 처한 상황, 가족의 분위기 등에 따라 고민이 다양하기에 하나를 꼽아서 말씀드리기는 조금 어렵네요. 그래도 많이 이야기가 나온 감정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자면 ‘죄책감’이 아닐까 싶어요. 힘들어하는 부모님,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를 두고 ‘나만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조금 더 잘하면, 내가 희생하면 우리 가족이 행복할 텐데…’하는 생각. ‘나라도 부모님을 힘들게 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 모두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들이고,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지요.

 

Q. ‘나는’과 관련한 기사와 동영상을 보면 자신의 힘듦을 인정하고 가족(부모님)에게 이를 알리는 것을 큰 용기이자,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과정이 스스로 어떠한 위로가 되는지 또 이후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각 가족 내 분위기와 상황이 다르고 가족 관계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It’s about me!)’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내 생각을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족 내의 상황이 어떤지, 부모님이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지, 이야기를 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전할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겠지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가족, 특히 부모님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갈등과 상처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또 가족 문제라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있기에 이야기를 통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리란 걸 기대해서도 안 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는 이제까지와 같이 살지 않겠다.’, ‘내가 중심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변화의 시작인 것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가족의 변화가 아닌, ‘내 안의 변화’입니다. 타인을 기준으로 했던 삶의 중심이 나로 옮겨갈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나로서 살겠다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구를 나부터 허용해주는 거죠.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여러 비장애형제들에게는 이런 사고방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진정으로 건강한 가족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봐요.

 

Q. 장애형제를 둔 비장애형제들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할 때 그래도 먼저 행동으로 자조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하신 인생 선배이자 친구로서 아직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혼자서 힘들어 할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 바랍니다. 또, 저희 신문 역시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많이 보시는 만큼 당사자로서 부모님들이 비장애자녀에게 어떠한 관심과 배려를 해주셨으면 하는지요.

부모님들께는 “비장애자녀 역시 ‘어린아이’이며, 아이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 혼자서 고민하고 있는 비장애형제분들께는 “그동안 참 고생 많았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말이 전해졌으면 하네요. 나는(It’s about me!)에 오셔서 함께 이야기 나눠요.

 

‘나는(It’s about me!)’과 함께 하고 싶다면

 

라디오를 통해 저희와 함께 고민을 나눠보고 싶다면 Ask(https://ask.fm/nanun_teatime)나 이메일(nanun.teatime@gmail.com)로 고민이나 질문을 남겨주세요. 나는(It’s about me!)의 소식이나 모임 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http://www.nanun.org/), 페이스북(http://facebook.com/nanun.teatime/), 인스타그램(@nanun_teatime)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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