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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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승인 2009.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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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수/대한장애인체육회 부회장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모든 매스컴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어 치러진 아시안 패럴림픽이 끝난 후 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돼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시민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최악의 대회였다는 악평이 모든 매스컴을 도배하듯 했다.

 이 때 필자는 어느 지면을 통해 “앞서 지적된 문제점들은 어느 대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해서 다시 대회를 치른다 해도 결과는 같아 질 것이다. 이는 대회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회통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 사회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장애인의 행사나 체육대회는 일반 시민들로부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행사로 끝날 것이다. 여기서의 사회통합이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사회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이 어렵고 오랜 시간을 거쳐서 통합이 되었듯이 이 또한 어려운 사회 문제이고 많은 세월을 거쳐 왔으며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되는 통합을 위해서는 장애인에 관련된 용어들이 바르게 정의되어야 하고 장애인을 위한 법률 제정과 판례의 적용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며 완벽한 통합교육의 실시 등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을 위한 체육의 정의나 목적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체육 업무는 보건복지부에서 시작해서 오랫동안 관장해왔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체육의 정의나 목적이 마치 장애인의 치료나 재활에 있는 것처럼 교육되고 실시되어 왔다.


물론 체육이 재활을 위한 Therapy(치료)의 한 수단으로 적용될 수 있고 신체활동을 통해 신체 각 기관에 영향을 미쳐 건강이 향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체육의 정의나 목적이 곧 재활이고 치료일 수는 없는 것이다.


장애인체육의 목표는 인지적, 심동적, 정의적인 측면에서의 향상에 두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체육의 목적은 인지적, 심동적, 정의적 측면이 고루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장애인체육의 정의나 목적은 단지 심동적인 측면에만 치중해왔기 때문에 본래의 정의나 목적과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체육의 정의는 비장애인체육과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은 신체활동을 통해서 심신의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자아개념을 인식시켜주며 나아가서는 비장애인과 다름이 없음을 느끼게 하고 또한 통합체육 활동을 통해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다름이 없음을 인식시켜 줘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사회통합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있다.

이렇듯 장애인체육은 엘리트스포츠나 생활체육활동을 통한 신체활동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하나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다행히 2005년 장애인체육의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되면서 장애인체육의 정의나 목적이 제자리를 찾아 많은 변화를 겪어오게 되었다.

그 결과 2008년 북경에서 치러진 제13회 패럴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호응은 놀라운 정도였으며 제26회 울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제27회 김천 전국장애인체육대회, 2008년의 제28회 광주 전국장애인체전은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황을 이루면서 더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대회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된 사회통합을 이룬 대회로 일반 전국체육대회와 다름없는 성공된 대회로 발전되어 왔으며 앞으로 있을 모든 장애인체육대회는 완전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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