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당사자를 위한 소프트 접근성, 개념 구체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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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당사자를 위한 소프트 접근성, 개념 구체화가 필요하다
  • 윤은호/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9.12.06 09:24
  • 수정 2019-12-06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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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건복지부가 한국장애인개발원을 통해 국가계획인 제5차 편의증진 국가종합 5개년 계획(2020-2024)을 입안하는 과정 중에 있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대한민국의 23차 당사국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장애인접근성 개념은 감각 당사자나 지체 당사자를 중심으로 아직까지 휠체어바깥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당연히 굳이 언급하지 않는 한 자폐 당사자와 정신 당사자, 그리고 지적 당사자를 포함한 정신적 당사자들과 신장장애, 난치병 등 내부적 특성을 가진 당사자들이 이러한 접근성의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재의 접근성 개념은 신체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장애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정신적 당사자들은 시설 등에 입소시키는 방식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는 기존의 차별적인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 당사자들의 사회 소통능력의 결여가 자동적으로 비가시적인 장벽을 만들어 내고, 일반인들과 당사자들 간의 벽을 쌓고 있다. 정신적 당사자들이 최근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에게 당하고 있는 사이버 폭력은 이제 일상적이 되었으며, 그 폭력의 정도 또한 심해지고 있는 데도 정부에서는 장애인차별을 4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해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결을 미루고 있다.

다시 말해, 정신적 당사자들은 물리적인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른 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사회공동체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의 접근성 논의가 그대로 진행되는 데 그친다면, 장애인 접근성 정책은 통합적인 장애인정책과는 거리가 먼, 장애인 모두가 아닌 장애인 일부를 위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제가 한국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낸 일반논평 2접근성을 보면, 아직까지 모든 당사자들이 겪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접근성 결여에 대해 국제적 차원에서도 명확한 기준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논평 1항은 접근성을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독립적으로 살고 완전하고 동등하게 참여(participate)하기 위한 선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접근성의 구성 요소는 정보 및 소통(이른바 ICT) 기술과 시스템들, 공중에 개방된 다른 시설들과 서비스들을 포함한 물리적 환경, 교통수단, 정보 및 소통만으로 구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접근성 개념조차도 정신적 당사자들에게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야기하는 접근성 개념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지점이 있다.

물론 일반논평 2호는 마지막 부분들에서 24(교육: 논평 39)30(문화여가체육 참여: 논평 44, 46)를 강조함으로 모든 장애인의 접근성이 정신적 당사자들에게도 균등하게 적용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평에서 정신적 당사자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유일한 지점은 7항에서 쉬이 읽기(‘easy-to-read’) 자료들을 논할 때뿐으로, 이른바 정보 및 소통 분야에서 물리-정보적인 측면만 충족된다면 정신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다는 - 사실과 다른 주장들을 승인하고 있다. 물론 논평 2부에서 장애인권리위원회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정보와 소통 참여(19), 특히 장애인의 사회 차별을 막는 사회적 차별(23)을 언급하기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지적들은 물리적 접근성들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들로 수렴된다. 이러한 국내외적인 접근성 개념은 정신적 당사자들이 사회에 동등하게 참여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어떤 것들을 결여하고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이미 오래전부터 심리적 접근성이라는 개념이 언급되어 왔지만, 그 구성요소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사회적 인식 개선이라는 실효성 없는 조치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개념에 대해 장애학, 철학을 포함해 인문과학사회과학적 차원이 결합된 연구자들의 논의를 통해 소프트 접근성’, 또는 심리적 장애접근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프트 접근성은 모든 정신적 당사자를 포괄한다. 아니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 소프트 접근성이 제도화되고 실현된다면 모든 정신적 당사자들은 깊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벗어나 일반인들에게 더 자주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사회통합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 접근성이 실현된다면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시설 폐쇄 및 소위 커뮤니티 케어수립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신적 당사자들이 사회 속에 더 자주 드러나는 것을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정신적 당사자들이 고등교육에 진입하거나 창업, 취업하는 것을 억울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신적 당사자가 온전한 접근성을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모든 정신적 당사자들이 어떻게 사회에 대한 참여 과정에서 박탈당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러한 박탈이 어떤 이데올로기나 이념, 또는 정부 정책들에 의해 강화되거나 은폐, 왜곡되고 있는지를 찾아내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권력 주체인 정부, 더 나아가 국제기구들과 온 사회가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이 길은 생각보다 지난한 길이 될 것이다. 장애계 내에서도 각자의 다른 처지를 통합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소위 자신이 속해 있는 유형중심으로 인지하고 있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201812월 기준으로 등록2585876명의 당사자 중에 지체 당사자들이 47.9%, 감각 당사자들이 23.0%(시각 9.8%, 청각 13.2%)70%를 넘고 있는 실정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이 나머지 30%도 안 되는 당사자들의 접근성 부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특히 장애의 의학적 모델의 유지로 미등록 당사자가 넘쳐나는 자폐 당사자들은 그 숫자가 과소평가되어 있어 사회 속에서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수는 더 많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장애유형, 특히 척수장애인과 같이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장애 당사자들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이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소프트 접근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참고로 정신 당사자들을 위한 소프트 접근성 강화가 하드 접근성에 주로 의지하고 있는 기존의 지체-감각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볼 수 없다. 지금의 장애인에 대한 접근성 부족 문제는 하드 접근성을 실제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소프트웨어인 소프트 접근성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소포트웨어가 작동한다면 하드 접근성 또한 강화될 것이다. 하드 접근성과 소프트 접근성이 컴퓨터처럼 통합 체계 내에서 운영될 때 모든 당사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첫째로, 현재의 국제적인 접근성 개념은 장애인이 포괄적으로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접근성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현재의 접근성을 하드 접근성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특히 정신적 당사자들이 사회에 포괄되기 위해 필요한 접근성 요소들의 총체인 소프트 접근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이제 한국사회와 온 인류의 발전을 위해 소프트 접근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 나가고자 하는 연구나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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